《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한 인문학자의 섭치 정탐기》
펴낸 한문학자 장유승씨

쓰레기라고요? 옛 사람들의 베스트셀러에서 우리를 봅니다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젊은 한문학자 장유승씨는 쓰레기 취급을 당하던, 짧게는 100여 년, 길게는 200여 년 된 고서들에 얽힌 이야기로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을 펴냈다.
‘초서’에 관련된 강의를 마치고 나온 그를 성균관대 명륜당 앞에서 만났다.
장유승(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씨가 쓴 책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한 인문학자의 섭치 정탐기》는 그야말로 ‘섭치’들의 이야기다. 섭치는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변변하지 아니하고 너절한 것’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TV쇼 진품명품〉에 들고 가면 방송관계자가 입구에서 돌려보낼 만큼 흔하고 싼 티 나는 고서들이고, 누구의 손에 들어가든 ‘쓰레기 취급’ 당해서 버려지는 운명을 지닌 것들이다.

‘섭치는 세월이 지나도 섭치’라는 말을 듣고, 지공예(紙工藝) 하는 분들의 재료로나 활용되던 책. 연대가 올라가봤자 고작 100년에서 200년이고, 독자적인 문헌적 가치도 없어 도서관·박물관, 심지어 고서점에도 진열되지 못하는 처지의 고서적 뭉치들이었죠.”


그 ‘섭치 뭉치’를 우연히 받은 그는 처치곤란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정황을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고백하고 있다.

“저는 옛사람들이 남긴 글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고서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서에 대한 저의 지식은 몹시 부족합니다. 고서를 접할 기회야 많지요. 서울대 규장각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처럼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고서 소장 기관에서 소중히 보관하는 고서의 내용을 연구하는 것도 제가 하는 일입니다. 임금님이나 보던 책을 만지고 읽어본 덕택에 아는 것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졌지요.”


고서에서 발견하는 그 시대의 이야기

과체시 선집.
그는 현재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고, 대학에서 한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매일 아침 교통방송 라디오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에서 고전에 대한 짧은 코너인 ‘길에서 만난 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그에겐 고전을 어떻게 되살리는가가 화두 중 하나다.

“정통 연구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고전을 콘텐츠로 재창조하는 연구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역사소설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도 있고,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는 사람도 연구자들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업이 한문학자인 데다 ‘고서(古書)’ 속에 파묻혀 사니 그 책들이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책들을 분석하고 연구해낸 그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연구할 것들, 중요한 고서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고서들은 당시 대중이 많이 봤던 책입니다.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 ‘평범한 것들의 가치’에 관해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방각본 사서오경. 방각본은 민간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라 품질은 조악하지만, 조선 후기 서적 보급에 크게 기여한 판본이라고 한다.
《백미고사(白眉故事)》는 조선시대 유통되던 유서(類書)류를 누군가가 간추려 엮은 책이고, 《옥룡자답산가(玉龍子踏山歌)》는 풍수책으로, “저자는 신라의 도선국사(道詵國師)인데, 서문에 이 책의 주인이 금강산을 유람할 때 홀연히 나타난 노인이 이 책을 주었노라”고 적혀 있다. 그는 책의 가치를 높이고 주장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과거시험에 나오는 시들의 기출문제집인 《과시(科詩)》, 편지 작성법을 모아놓은 실용서인 《척독요람(尺牘要覽)》, 연애소설인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가정용 의학백과사전인 《의학입문(醫學入門)》 등 대중서 외에도 고전인 《통감절요(通鑑節要)》 《대학(大學)》 《사서오경(四書五經)》, ‘서경’ 해설사인 《서전대전(書傳大全)》 등도 있다.

그의 친구가 고서 경매장에서 구한 책인 《소화아집(小華雅集)》(시와 문인들의 역사적 일화를 모은 책)은 한 국문학자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한다. 이 책의 소장자는 월북하다 실종된 당시 서울대 교수 이명선씨다.

“고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합니다. 우리가 고서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저 과거의 유물로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 이야기해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도 현재의 우리와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보는 것이지요.”

고서는 책장 오른쪽 아래를 잡고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라 이 부분이 많이 닳아 있다.
책 사이에서 우연히 찾은 메모는 덤이었다. 여백이 많은 책은 ‘여백의 미’를 중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청이 출판을 주도했기 때문에 비용을 아낄 필요가 없었던 반면, 상업출판으로 만든 책은 대개 여백이 적었다. 상단과 하단의 여백은 물론 각 장 말미에 남은 빈칸마저 잘라내어 아껴보려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량으로 찍어낸 《논어》는 활자본을 복각한 목판본으로 서지적 가치는 거의 없었는데, 흔한 판본일수록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고급 종이에 인쇄한 책이 아니라 싸구려 종이에 인쇄했는데, 종이를 재활용한 것도 많고요. 실제로 보면 지저분한데 책에 실린 사진은 고급스럽습니다. 사진작가 김춘호씨 덕분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필독서였던 《명심보감 (明心寶鑑)》이나 《통감절요(通鑑節要)》 등은 중국에서는 어떤 책인지조차 모르던 책이었다 한다.

“중국에서 들어온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눈여겨봤습니다. 책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와 만난 명륜당 앞에는 1602년부터 명륜당을 지켜온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400여 년의 시간을 지나온 이 나무는 그 자체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이곳에서 글을 읽었다. 젊은 인문학자의 고서탐방에서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고전은 그래서 과거이자 현재고, 미래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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