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에세이 펴낸 번역가 김남주

프랑스 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도균 

번역가 김남주씨는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 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현대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해왔다. 현존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 가즈오 이시구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도 그다. 번역가로 정평이 나 있는 그가 번역 에세이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섰다.
《나의 프랑스식 서재》, 그의 서재가 궁금하지 않은가.

촬영협조 : 부암동 북카페 b612
2001년 가을, 번역가 김남주는 프랑스 아를 번역자회관에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스스로를 ‘번역자’가 아니라 ‘번역가’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1988년부터 번역 일을 시작한 그. 문학을 꿈꿨던 그는 번역가로서의 시간을 그저 ‘내 작품을 쓰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각국의 번역가들을 만나면서 번역가의 사회적 역할에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번역이란 저울의 한쪽에 원문, 다른 한쪽에 옮겨놓을 말을 올려놓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엄정하게 무게를 다는 일이다.”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겨 충실한 추녀로 만들 것인가, 확대해석으로 부정한 미녀를 만들 것이냐.” “중요한 것은 직역이냐, 의역이냐가 아니라 역자의 관점 아니냐” 같은 진지한 논의와 뼈 있는 농담이 오가면서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때까지 저는 ‘텍스트를 넘어설 수 없는 게 번역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번역의 자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올봄에도 그는 아를을 찾아 전 세계 번역가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아를시의 협력으로 지은 번역자 회관에는 각국의 번역가, 문인, 출판인들이 모여든다.

“순전히 번역가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회관 안에 도서관이 있고, 고정석까지 있어요. 이제 우리도 이런 번역자회관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양문화의 번역은 일본 근대화의 주축이 된 힘이 되었지 않습니까? 번역은 그저 다른 문화를 옮기는 것만이 아니에요. 우리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지요.”

반 고흐가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아를에서는 작품 낭독회, 봄에 열리는 패션 페스티벌, 사진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그는 요즘 아를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책도 준비 중이다. 아를의 수도원 뜰, 목욕탕, 다양한 장소에서 열리는 ‘작가들의 낭독회’도 특히 인상 깊었다.

“100석도 채 되지 않은 규모에, 의자와 책상 몇 개, 생수 정도가 놓여 있는 소박한 행사예요. 작가뿐 아니라 그 작가를 좋아하는 배우, 성우들이 낭독하는데 굉장히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새들한테는 조용하라고 할 수 없지만, 여러분은 휴대폰을 꺼주세요’라고 유머러스하게 말하기도 하지요. 아침마다 론 강변을 산책하면서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해준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도 얼마 전 서강대 도서관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정원이 40여 명이었는데 신청자가 많아서 100명 넘게 들어가는 강의실로 옮겼어요. 그때 독자들과 호흡하는 즐거움을 느꼈지요.”

그는 독자들이 문학을 친구처럼 대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20대부터 저는 번역을 줄곧 밥벌이로 생각했지요. 그러다 아를에서 열린 마음을 지닌 번역가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소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고.

그는 “번역을 한다는 것은 내가 풀어내야 할 문장과의 대결이에요”라고 말한다.

그의 그런 마음은 《나의 프랑스식 서재》에서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식 서재’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제가 주로 프랑스 책을 번역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식’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프랑스를 찾을 때면 수퍼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와인과 치즈, 차가 있어요. 어떤 취향이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프랑스식인 것 같아요.”

이 책에는 프랑스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베로니크 오발데의 《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프레드 바르가스의 《4의 비밀》, 피에르 덱스의 《창조자 피카소》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등을 번역한 후 쓴 ‘옮긴이의 말’도 담겨 있는데, 사랑・문학・자아・예술에 대한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문학책을 주로 번역하다 미술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는 2001년 파리에 체류하면서였다고 한다.

“파리에 미술사를 전공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집에 워낙 화집이 많아 그때는 눈만 뜨면 미술관으로 달려갔죠.”

책에는 번역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1990년대 후반 개인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번역의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번역을 하는가. 그러면서 ‘지금 여기’에 정말 필요한 책들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스스로 문학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다는 그에게 알베르 카뮈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웅이었다. 그의 서재에 놓인 카뮈 사진도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카뮈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은 “내게 종교적인 제의와도 같았다”고 고백한다.

“요즘 사람들이 문학이나 철학보다 패션에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아요. 물론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데 저는 철학자 슬라예보 지젝이 어떤 패션디자이너보다 주목받는 때가 왔으면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곧 파리에서 오래 머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곳곳에 번역가 친구들이 있어 더 풍요롭게 머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지금 서가를 둘러보라. 번역가 이름에 김남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tip] 김남주가 권하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거리예요. 특히 자기 자신과 거리를 갖는 거예요. 세상을 객관화하는 데 사강이 도움이 될 거예요.”

프레드 바르가스
“SF도 재미있어요.” 《4의 비밀》엔 4000광년 떨어진 고치 성운에서 쏘아 보내는 빛이 영원히 ‘현재’인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드 바르가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단다. “장자크 루소는 내 첫사랑이었다. (…) 나는 아직도 아무리 좋은 이야기일지라도 문장에서 음악을 느낄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고 있다.”(가디언 2008) 그렇다면 프레드 바르가스 자신은 어떨까?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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