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원>으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

아동 성폭행, 아이와 가족이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회복 과정을 그렸다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지난 9월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은 자주 웃었다. 기자와 처음 인사를 나눌 때도 웃었고, 인터뷰 중간에도, 말미에도 ‘허허’ 웃었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너털웃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두루뭉술 눙치고 넘어가는 법이 없이 핵심을 짚어냈다. 삶의 관록으로 다져진 내공이었다. (인터뷰는 이준익 감독의 어투를 살려 반말체로 실었다. 실제로 그는 기자와 인사를 나누곤 금세 말을 놓았다. 덕분에 인터뷰는 한층 편안해졌다.)
“지난 2년 반 동안 원 없이 놀았어. 영화도 안 보고 텔레비전도 안 봤어. 작품 욕심도 안 났지. 왜냐면 그동안 너무 많이 했거든. 성과도 많았지만 그만큼 과오도 많았지. 잃은 것에 대한 회복? 그렇게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사실 무언가를 조작한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모든 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건 다 폭력이고 자작된 자기 논리다’라는. 그 덕에 반성을 많이 했지. 현대인들은 워낙 바쁘게 사니까 사실 반성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어. 그러다가 이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바람에 느닷없이 찍어버린 거야. 러브콜도 많이 받았는데 무엇보다 내 마음이 동해야 되잖아. 이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이 확 동해버린 거지(웃음).”


영화 〈평양성〉 이후 상업영화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던 그다. 갑작스러운 그의 은퇴 선언에 당시 충무로는 혼란에 빠졌다. 더러는 절대 안 된다고 결사반대했고, 더러는 경솔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다수는 그가 결국에는 돌아올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동 성폭행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 뉴스에 관련 내용이 나오면 너무 끔찍해서 보지도 않고 돌려버리기 일쑤였지. 처음 〈소원〉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그랬어. 가슴이 아파서 못 읽겠더라고. 근데 찬찬히 보니까 이 영화는 종래의 아동 성폭행을 다룬 영화와는 가치관이 좀 다른 거야. 그걸 가슴에 담고 있으니까 왜 안에서 무언가가 부추기는 듯한 그런 느낌 있잖아. 이 영화마저 거부해버리면 비겁자가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처음엔 통속적으로 ‘돈이 될까’라는 분석을 했던 것도 사실이야. 근데 나중에 가서는 ‘아니다. 이 영화는 돈이 안 되더라도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할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명분을 찾기 시작한 거지, 내가 움직이려고(웃음).”

연출을 시작하면서 이 감독이 염두에 뒀던 것은 ‘절대 불순한 태도를 가지고 영화를 찍지 말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소원〉에는 불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이후 피해 아동의 삶과 행복’에 철저하게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상영 등급이 12세 관람가로 정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소재가 워낙 민감하니까 불순하지 않은 태도로 겸손하게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것만 생각하자,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다짐했지. 잔재주 피우지 말고 정직하게 찍자고. 이걸 잘못 그렸다가는 우리가 장사하는 걸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 성폭력 관련 영화는 대부분 가해자의 처벌이나 복수 같은 것을 중점적으로 그리거든. 자극의 강도를 끊임없이 올리면서 흥미를 유발시키는 거지.

그런데 과연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이 진정한 솔루션인가를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잖아. 〈소원〉은 달라. 우리는 피해자의 내일을 보자고 이야기하거든.”

이 감독은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속 장면을 이야기하다가도, 연출 당시를 회상하다가도 눈물을 글썽였다. 감독도 이런데, 힘든 감정을 직접 연기해야 했던 배우들은 오죽했을까. 배우들은 “최대한 화면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자”는 이 감독의 디렉션을 충실히 따랐다.

“설경구나 엄지원은 항상 눈이 충혈돼 있었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아도 참으라고 했거든.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오는데 무조건 참는 거야. 그러다가 ‘컷’ 하면 막 쏟아내는 거지. 그러고나면 얼음으로 눈을 가라앉혀. 다음 컷을 또 찍어야 하니까. 설경구는 대본도 마음이 아파서 겨우겨우 읽었다는데 오죽 힘들었겠어. 화면에서 눈물을 절제했던 이유는 하나야. 정작 상처 입은 사람은 주인공 소원이인데, 우리가 아무리 아파도 소원이보다 더 아프겠냐는 거지. 소원이의 가장 큰 바람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자꾸 사건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 안돼. 아, 그런데 아직도 이야기하다보면 울컥해. 올 1월 1일에 이 작품을 시작했으니 9개월을 이 감정을 물고 있는 거 아냐. 연출할 때도 엄청 울었어(웃음).”

영화가 개봉한 이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주인공 이레(7) 양이었다. 이레는 설경구와 엄지원 사이에서 주인공다운 존재감을 드러내며, 경상도 사투리마저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런데 이레는 연기 경력이 전무한 초보 연기자다. 심지어 연기학원도 안 다녔다.


“연기학원 다니려고 접수한 애가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캐스팅된 거야. 놀랍게도 집이 광주광역시야. 경상도 사투리를 이번에 처음 배운 건데 완벽하게 소화했지. 아이가 영화를 찍는 데 행여 불상사가 생길까봐 신경을 많이 썼어. 심리적인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서 항상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했고, 현장에서도 이레 어머니, 이레 담당 연출부 스태프, 연기 선생님이 늘 같이 움직였지. 한마디로 밀착 방어한 셈이야.”

이준익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신고되는 것만 하루에 3명인데,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 아동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가족, 친척, 친구들 같은 관련자들까지 합하면 사건당 피해자는 수십 명이 넘어. 이 영화 때문에 3차 피해가 발생해선 안 돼. 우리 영화 제목이 ‘소원’이잖아. 일상이 파괴된 사람의 가장 큰 소원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영화 시작할 때 야구 보고 투덜거리던 동훈(설경구 분)이가 영화 끝날 때 또 야구 재방송을 보고 투덜거리는 것, 그렇게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회복하는 것. 이 영화의 진정성은 거기에 있는 거야.”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기 전, 이 감독에게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이것도 준비 없다가 느닷없이 받은 거거든.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으면 그 때도 느닷없이 할 거야. Life is sudden(웃음).”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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