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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속에 담긴 이야기 들어보세요

화가 최영욱

유백색(乳白色)의 둥근 형태가 달을 연상시킨다 해서 ‘달항아리’라 이름 붙은 조선백자.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면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찬탄했다. 화가 김환기는 커다란 달항아리를 마당 초석 위에 올려놓고 ‘달 떴다’고 좋아하면서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고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창조하는데,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싸늘한 사기(砂器)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라고 적었다.

스스로 ‘달항아리 귀신’이라 칭했던 김환기 외에도 달항아리는 도상봉·고영훈·강익중·이이남·신미경 등 세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작가들을 매혹하고 있다. 그중 화가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은 달항아리의 또 다른 해석으로 관심을 모은다. 그의 달항아리 작품을 보면 자잘하게 빙렬(잔금)이 생긴 것이나 음영이나 오랫동안 손때를 탄 달항아리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실제 달항아리를 정밀하게 묘사한 극사실화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가로 세로 180×150cm 캔버스에 꽉 들어찬 달항아리는 실제보다 훨씬 큰데다, 어디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흰색이나 연회색 배경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작품 제목이 〈연(緣), 카르마〉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나를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로 안다. 하지만 나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 안에 내 삶의 이야기를 풀었고,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았고 찾았다. 내 그림의 제목은 ‘카르마’다. 내가 그린 ‘카르마’는 선에 그 의미를 담았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도자기의 빙렬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끊겼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선처럼 우리의 인생도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 꾸밈없이 단순한 형태와 색감은 우리 마음 밑바닥의 측은지심 같다. 우리의 마음을 홀리는 화려한 색깔이 많지만 달항아리처럼 나 또한 자제하며 색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달항아리_ 145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3
도자기 표면에 자잘하게 갈라진 유약의 균열을 묘사한 것 같은데, 사실은 이게 실제의 묘사가 아니라 ‘카르마’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수행하듯 그려 넣은 선이라고 한다. 실제 달항아리처럼 보이게 하는 도자기의 음영 역시 객관적 묘사가 아니다. 도자기 아랫부분에는 음영처럼 희미하게 산수가 그려져 있다.

“제 그림을 보면서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떠오른다는 분들도 있어요. 소박하고 푸근한 시골 동네, 고향, 시골길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거든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의 풍경, 이야기를 끄집어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달항아리_ detail
그의 그림은 빌 게이츠가 새로 지은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건물에 설치하기 위해 구입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빌 게이츠가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출품한 그의 작품을 보고 큐레이터를 통해 구입한 것. 그는 가족들과 함께 재단 건물 오픈식에 참석, 빌 게이츠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저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작가 20명의 작품을 복도에 설치해놓았더라고요. 한국 작가로는 저와 김수자씨의 작품이 있었지요.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조선 달항아리를 소장하고 계셔서 빌 게이츠도 ‘도자기를 실제로도 봤다’고 하더라고요. 재단 건물은 7년 걸려 완공됐는데, 빌 게이츠 아버지가 인부들과 함께 헬멧을 쓰고 일했다 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달항아리가 그에게 온 것은 전업 작가로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였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개인전도 열었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작품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작품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하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생활했다. 그때 달항아리가 “나를 그리면 어때?”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서울 시내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골동품점을 기웃거리며 항아리를 많이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런던 대영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한국관에 놓인 달항아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요. 달항아리의 잔금들, 얼룩이나 흔적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푸근하고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게 속으로 내공을 감추고 있는 듯했습니다. 달항아리의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다른데 밑면에서 위로 올라가는 선이 수더분하면서도 세련됐고, 어느 방향에서 봐도 자신감 있고 당당해 보입니다. 작품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을 때였는데, 달항아리가 ‘나를 그리지 그래?’라고 말을 걸어온 것이지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달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요즘도 하나씩 달항아리를 사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달항아리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그가 그리는 달항아리는 실존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있는 달항아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캔버스에 달항아리를 그려 넣는 과정은 도공이 항아리를 빚는 것과도 비슷하다. 목탄으로 스케치해 달항아리의 형태를 잡고, 과슈 물감과 아크릴 물감, 동양화 물감과 돌가루 분말, 젯소를 섞어서 수십 번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얇게 칠하기를 50번, 60번씩 반복하면서 사포질로 표면을 갈아내기도 한다. 돌가루가 섞인 데다 사포질을 해서인지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도자기와 재질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유백색 항아리를 연회색이나 연한 옥색, 하늘색 바탕에 올리는데, 바탕색 역시 은은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다. 그는 “천연 염색한 천으로 지은 한복처럼 은은한 맛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배경이 구체적이지 않아 우주 속에 둥실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유백색 항아리 위에 가는 실선을 끝없이 그리면서 “선을 긋다보면 끊어졌다 이어지고 만나는 게 우리 인생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자극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작품들로 가득한 뉴욕에서 그는 2008년 항아리 그림을 가지고 개인전을 열었는데, “내용을 설명해주면 신기해하면서 호감을 갖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뉴욕·마이애미·싱가포르·쾰른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그의 작품은 빌 게이츠뿐 아니라 알자지라방송 사장 등 세계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구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최영욱으로 인해 우리 달항아리에 담긴 한국적인 깊이, 멋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최영욱
1991년 홍익대 회화과 졸업, 2000년 홍익대 미술대학원 졸업. 후쿠오카 아트페어, LA 아트페어, 쾰른 아트페어, 마이애미 아트페어, 싱가포르 아트페어, 홍콩 컨템퍼러리, 이탈리아 쿤스트 아트페어, 뉴욕 KIAF 등 참여. 빌게이츠재단, 필라델피아뮤지엄, 국립현대미술관, 수원대학교, 대한항공 등 작품 소장
  •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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