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권혁웅 〈황금나무 아래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위태로운 현존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사진 : 김선아 

황금나무를 본다
저 나무는 세계수, 하늘을 향해 직립한 채
부채 모양의 금빛 엽편(葉片)들을 쏟아낸다
나무가 이곳에 뿌리내린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저 금빛 환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나무 위에 집을 짓는 족속이었을까

아까부터 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제단에 앉아 있다 저 신성한 이들의 황금시대를
기록할 문자가 나에겐 없다
다만 나는 내 안에 기식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금빛 바람 위에 실어 보낼 뿐이다

내 몸을 온통 물들이는 황금나무를 보며
나도 몇 번의 제의를 거쳐 온 듯하다
마르고 헐벗은 가지가 푸르고 노란빛으로
거듭 생을 치장하는 동안
내게도 두어 편 격절과 비약의 연대기가 있었다
이제 나무에 기대어 나는 내가 꾼 꿈들이
신화의 어느 먼, 지금은 잊혀진
하나의 가계(家系)였다고 생각하며

투두둑 떨어지는 황금의 알들을 줍는다
저것들은 버리면 새들이 날개를 덮거나
미소가 피해가리라 진동하는 냄새는
새로운 탄생의 후경(後景)이었던 셈,
나도 언젠가 난생(卵生)의 꿈을 꿀 것이다



〈황금나무 아래서〉에 나오는 “황금나무”는 가을이면 잎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봄날의 푸른 잎은 가을이 되어 노랗게 물들고, 초록 열매도 노랗게 황금색으로 변한다. 그것들은 황금 잎들은 “금빛 엽편”으로 땅에 지거나 황금 열매들은 속절없이 땅에 떨어진다. “황금나무”라는 큰 모체에서 떨어져 나온 “금빛 엽편”이나 황금 열매들은 작은 부속물들이다. 이 작은 것들은 사물의 축소지향, 즉 분할과 깨어짐의 결과다. 전체에서 분리된 조각의 축소지향 운동은 소멸과 부재를 향해 미끄러져 간다. 이것은 상실과 소멸의 은유를 불러온다. 시인은 “황금나무”에서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이 작은 것들에게서 위태로운 현존을 본다. 떨어져 밟히고 으깨어진다는 점에서 이것들은 미구에 사라질 운명을 내재화하고 있는 인생의 은유로 쓰기에 적당하다.

하늘을 향해 직립한 채 금빛 잎을 대지 위에 뿌리는 “황금나무”라는 이미지는 분명 시인의 자아가 투영된 이미지일 것이다. 천상과 지하계를 잇는 “황금나무”는 우주를 떠받치는 세계의 축(軸), 즉 기둥이다. 나무는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는 자주 숭배의 대상물이었다. 독일에서는 물푸레나무,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자작나무, 이슬람 지역에서는 올리브나무, 일본에서는 대나무가 그렇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게 당나무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고목을 당나무로 정해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떠받들고 그 아래에서 제를 지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신화학자 엘리아데는 나무를 영원성, 풍요, 창조의 표상으로 보았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에 나무는 지혜라는 상징성도 있다. 시인은 제 생을 황금나무 아래에 둠으로써 그것을 은근히 신화화한다. 시인은 저를 세계의 중심에 놓고 사유하는데, 자아가 청춘기를 통과하고, “몇 번의 제의” “두어 편의 격절과 비약의 연대기”를 지나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황금나무 아래서〉의 시적 화자의 삶은 어쩐 일인지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모호함은 이중적이다. 시적 화자의 마음에 드리워진 우울과 그늘, 절망과 환멸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 구체성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수사법에 의해 가려져 있다. 어법의 모호성, 그 모호함을 걷어내고 보면 시적 화자는 상실과 소멸의 현실을 떠안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인 마음의 자국은 크고 넓다. 그들은 환멸을 내면화한다. 다시 한 번 보자. ‘나’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황금나무 아래다. 거기에는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앉아 있다. 시적 화자는 “아까부터 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제단에 앉아 있다 저 신성한 이들의 황금시대를/기록할 문자가 나에겐 없다”고 고백한다.

왜 문자가 없겠는가? 시인은 다른 시에서 “내 몸은 헐거운 문자”(〈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라고 말한다. “내가 그이에게로 번져 가면/그이는 물의 얼굴, 물의 입술로 다가와/천 개의 손으로 내 가슴을 더듬지”라는 구절이 이어진다. 자, 이쯤 되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문자가 되어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의 생 전체로. 그것이 바로 “물무늬로 씌어진 편지”이며, “천 개의 손”으로 몸을 더듬으며 읽는 편지다. 한쪽이 떠나버렸다. 그러니 ‘나’에겐 문자가 없다. 황금나무 아래서 손을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연인들은 시적 화자의 잃어버린 과거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늘” “흔적” “파문”들이다.

시적 화자의 마음은 “다만 나는 내 안에서 기식하는 너무 많은 것들을/금빛 바람 위에 실어 보낼 뿐이다”. 이렇듯 빠져나가고, 실어 보내고, 마음에 넓게 파인 것은 상실과 부재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고요의 무늬라고 말한다. 시인은 고요의 무늬를 열심히 읽는다. 고요의 무늬에 들어앉는 것은 행복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황금나무 아래에 손을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연인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들은 분명 황금시대였을 것이다. 지금은 없는 현실, 즉 손으로 붙잡을 길 없는 환(幻)이다. 비는 세상의 모든 길을 지우고, 달은 붉은 숲 너머로 진다. 길도 없고, 달빛도 없다. 이 어둠 속에서 환멸에 침윤된 “황금나무”가 꾸는 것이 “난생의 꿈”이다. 둥근 알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이 왜 작고 둥근 것에 자주 매혹되는지는 분명하다. 이를테면 “난생(卵生)의 꿈” “황금의 알” “원형의 감옥”(〈원형의 감옥〉), “내 몸 안에서 피로 가득한 만월”(〈나무들의 기억〉) 따위는 모두 둥근 것의 계열에 속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생명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난생의 꿈은 곧 생명의 꿈이었던 것이다. 〈황금나무 아래서〉의 시적 화자는 발밑에서 연신 빗방울들이 그려내는 동그라미를 바라본다. 빗방울들은 고인 물 위로 떨어지면서 둥근 원을 그려낸다. 그것은 고요의 무늬이며, 황금의 알이고, 난생이다. “나”는 둥근 것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절망과 환멸로 밀봉된 생을 열기 위해서.


권혁웅(1967~ )은 충청북도 충주 사람이다. 충주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라 고려대학교 국문과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1996년에 평론가로 먼저 이름을 알리고, 한 해 뒤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2001년 첫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를 펴내며 그는 “이제야 세상과 사람과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울 준비가 되었다”고 적었다. ‘미래파’ 논쟁을 이끌며 비평가로 더 알려졌던 그가 2012년 〈봄밤〉이라는 시로 제12회 미당(未堂)문학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시인으로서 크게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시집 《마징가 계보학》은 시로 쓴 1980년대 약사(略史)다. 그의 섬세한 감성의 섬모들은 1980년대의 가난하고 일그러지고 슬픈 기억들을 찬찬히 더듬는다. 《마징가 계보학》의 ‘후일담’으로 그는 이렇게 적었다.

“80년대는 박철순과 아버지의 전성기였다 90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선데이 서울〉이 폐간했고(1991) 아버지가 외계로 날아가셨다(1993) 같은 해에 비행접시가 사라졌고 좀 더 있다가 박철순이 은퇴했다(1996) 모두가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때다”.

그는 이렇듯 기억의 지층들을 탐색하며 쓰러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말들을 찾아낸다. 식물이 빛을 향하여 하염없이 줄기를 뻗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도 희망을 향하여 가지를 뻗는다. 둘 다 향일성(向日性)으로 닮아 있다. 위에 언급한 시집 두 권 외에도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따위의 시집을 펴냈다. 지금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 201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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