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사람 속에 있지만 홀로인 인간, 현대인의 내면을 그리는 화가

화가 이효연

“앞모습은 화장도 하고 의도적으로 표정을 만들기도 하지만, 뒷모습은 연출하기 어렵잖아요?
무심코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진짜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처진 어깨만 봐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제공 : 이효연
화가 이효연은 도시 공간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계단을 올라가고, 횡단보도와 도로를 건너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고,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들.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지만 어쩐지 모두가 하나의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 캔버스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그가 그린 거리, 건물, 실내 풍경도 적막하기는 매한가지다. 그 풍경이 묘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홀로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현대인의 심상을 그렸기 때문 아닐까?

서울 방배동 유중아트센터 안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는 사람들의 뒷모습 그리고 천으로 눈을 가린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중아트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린 작품들이라고 한다. 도시풍경 속 사람들을 그리던 그가 인물만 클로즈업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듬성듬성 빠지고 허옇게 센 머리칼과 축 처진 어깨. 뒤통수만으로도 신산한 삶을 이어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냈다. 눈을 가린 인물화는 ‘사람이 볼 수 없게 되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Stairs _ 116.7×91cm, Oil on Canvas, 2007
“친한 친구들을 이곳으로 불러 눈을 가린 채 ‘걸어보라’고 했어요. 눈을 가렸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자유로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팔도 제대로 못 뻗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큼성큼 걷거나 깡충깡충 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도 있지요. 보통 한 사람당 500에서 700컷을 연속해서 촬영하는데, 찍힌 사진 중 한 장면을 골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는 유중아트센터에서의 작업이 새로운 작품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특히 왕가위나 안드레이 타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요. 표정 하나, 포즈 하나로도 모든 것을 함축하는 장면. 피나 바우쉬의 춤을 담은 사진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는데, 저도 그렇게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어요. 이번 작업은 그것을 위한 인간탐구 작업이라 할 수도 있어요.”

그는 홍익대 미대 졸업 후 한동안 미술학원에서 입시지도를 했다. 대학시절 설치, 벽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국제환경미술제에도 참가했던 그는 졸업 후 졸업생들이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미술학원 강사가 되었고, 6년 반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를 채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퍼내주는 생활만 하다 보니 지쳐버렸죠. 이제는 더 이상 꺼낼 게 없는 영양실조 상태가 된 것 같았어요.”

Mindscape 1 _ 72.7×116.8cm, Oil on Linen, 2012
우연히 스웨덴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사람을 알게 됐고, 스웨덴에서 미술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제 인생을 놓고 일종의 실험을 한 거예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내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스웨덴 왕립미술학교에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프로젝트 스튜던트(project student)로 덜컥 뽑혔다. 프로젝트 스튜던트는 학위를 마친 학생들이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 이 과정을 끝낸 후에는 스페셜 스튜던트(special student)로 또 1년을 지냈다. 스페셜 스튜던트는 교수 한 사람당 1명씩만 뽑는 연구생이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 너무 쌓여 있어서 그곳에 있는 동안 ‘뭘 할까?’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한 작업을 하다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가는 식이었으니까요. 겨울이면 태양이 낮아 작업실 안으로 그림자가 길게 들어왔는데, 제 몸을 찍어 작업하기도 하고, 버려진 인형 두 개를 주워 그림자 놀이하듯 작업한 것도 있습니다. 엄마 따라 작업실에 왔다 그려놓고 간 아이의 그림과 거꾸로 매달린 인형 그림자를 함께 찍은 사진 작업이 있는데, 해놓고 보니 여성의 위태로운 상황을 상징하는 페미니즘 작품처럼 읽힐 수도 있겠더라고요.”

사람의 뒷모습, 눈을 가린 모습 등 최근작들이 놓여 있는 작업실에서.
그는 미리 어떤 작업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직관적으로 작업하는데, 해놓고 보면 ‘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싶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 그는 매일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작업실을 나섰다.

“‘전시회를 하겠다’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작업한 게 아니었어요.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해야만 했어요. 하고 싶은 작업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되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새벽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죠.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길이 있었는데, 강가를 따라 걷는 게 너무 좋았어요. 겨울에는 추워서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지만요. 스톡홀름 중심가라 근위병이 지켜주고 있어 위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주로 판화와 사진 작업을 했다. 지금도 그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마음에 와 닿는 장면을 만나면 순식간에 포착한다. 그 사진들이 페인팅의 기초가 된다. “어떤 장면을 찍느냐?”는 물음에 그는 “제 동물(본능)이 하는 일입니다. 머리가 아니고”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배경도 바뀌고 인물 배치도 바뀔 때가 많다. 샹들리에가 매달린 실내에 뿔 달린 사슴이 늠름하게 서서 정면을 보고 있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복에 구두 차림으로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

People looking at Somewhere _ 130.3×193.9cm, Oil on Linen, 2012
계단이 있는 도시풍경 옆에 바다가 있고, 바닷가에 난데없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기도 하다. 사실은 연출된 풍경, 연출된 장면인데, 현실 그대로를 옮긴 줄 깜빡 속을 뻔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몸통은 작가의 것이지만, 갈색 머리칼은 서양인의 것이고, 여기에 여름바다를 합성해 그린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멍하니 상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무언가를 기다린다. 대부분 뒷모습이나 옆모습이어서 표정도 알 수 없다.

현대인의 고독, 상실감, 단절을 보여준 미국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호퍼의 작품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제가 호퍼와 같은 시대에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니 감성이 같을 수가 없지요. 물론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긴 하겠지만요. 호퍼와 관련된 책들도 읽어봤는데, 저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Close encounter _ 112×145.5cm, Oil on Canvas, 2010
그의 첫 개인전은 2005년 스톡홀름의 갤러리에서 열렸다. 학교에서 그의 작품을 본 큐레이터가 초청한 것. 2007년 귀국해서 작업실을 얻은 후에도 프라이어스갤러리, 닥터박갤러리, 갤러리담 등에서 개인전을 하고, 수많은 단체전, 그룹전, 아트페어에 초청받았다. 빠른 행보다. 이번 가을에도 전시 계획이 줄줄이 잡혀 있다. 9월 12일부터 10월 11일까지 대구 스페이스K에서 송은영 작가와 2인전, 9월 12일부터 10월 20일까지 키미아트에서 그룹전, 10월에는 아트페어인 KIAF에 참여하고,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는 유중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계획되어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6개월간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제 작업에 대해 ‘너무 마음에만 맡겨놓은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지요.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 걸까? 이걸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뭘까’ 저한테 질문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렸다 찢고를 반복했습니다. 요즘은 제 감각에 자극을 주는 낯선 음악들을 일부러 찾아 들어요. 그렇게 더듬더듬 방향을 찾아가면서 세포들을 깨워나갈 때 ‘아, 내가 이런 작품을 하려고 했구나’ 문득 깨닫게 됩니다.”
  • 2013년 09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