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피쉬: 끝없는 여정〉 만든 송웅달 PD

물고기잡이를 통해 인간의 수렵 본능 보여주고 싶었어요

글 : 최용준 인턴기자(경희대 2)  / 사진 : 김선아 

지중해 산 피에트로 섬. 바다에는 긴 그물이 늘어져 있다. 그물은 참치 떼를 기다리고 있다. 어부들의 손에는 갈고리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지중해 참치잡이 방식 ‘마탄자’를 앞두고 어부의 눈길은 떨림으로 가득하다. 한편 참치의 눈동자 역시 혼란스럽다. 산란을 위해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가는 수천km의 여정을 그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3m에 가까운 참치 우두머리를 선두로 수백 마리의 참치 떼는 그물 끝에 있는 ‘죽음의 방’에 들어간다. 이때 어부 우두머리의 신호와 함께 바다 밑에 잠겨 있던 그물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올라온다. 참치들이 그물 위에서 펄떡인다. 짙은 푸른색 몸뚱이들이 하얀색 물보라를 일으킨다. 뻐끔거리는 입과 헐떡이는 아가미에 어부들은 갈고리를 꽂아 넣는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참치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온다. 송웅달 PD는 헬리콥터에서 마탄자를 바라보았다. 섬광 같은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피바다를 봤어요(웃음). 지중해 에메랄드빛 바다가 붉게 물드는 건 순식간이더군요. 물고기가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참치들은 그물 위에서 죽음을 예감했는지 정액과 난자를 배출합니다. 푸른 바다, 붉은 피, 정액과 난자와 몸부림이 만들어내는 거품.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마탄자 장면에서 참치와 어부의 눈이 교차 편집된다.

“물고기는 눈을 감을 수 없으니 얼마나 무서울까요. 모든 것을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 테니까요. 주변 동료들이 피를 흘리고 그 자리에서 토막 나니 두려움이 가득할 것 같아요. 더욱이 물고기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요. 신은 물고기에게 다산의 복을 주고 소리 지를 수 없는 벌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고기가 만약 개・돼지처럼 소리를 지른다면 지금처럼 많이 못 잡았을 것 같아요.”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가는 참치가 불쌍했지만 물고기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선사시대부터 물고기는 인간에게 야생짐승보다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비교적 간편하게 물고기를 잡아 저장하는 법을 터득하면서부터 인류의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역사는 물고기와 인간이 서로의 욕망을 발휘하기 위한 결투였다. 살아남으려는 물고기와 살기 위한 어부로 시작하는 〈슈퍼피쉬〉는 지난 7월 극장판으로 개봉했다. 지난해 8월 KBS 1TV의 5부작 다큐멘터리 <슈퍼피쉬>에 3D 기술을 접목시켰다. 2년에 달하는 기간과 20억원의 제작비로 24개국의 물고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13.8%에 달하는 시청률을 냈다. 국내외에서 10개가 넘는 상을 독식했고, 올 4월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부문 대상을 받았다.


<슈퍼피쉬>를 기획한 송PD는 처음부터 물고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사람의 보편적인 행동과 감정을 고민하다 물고기를 떠올렸다. 물고기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먹는데, 물고기잡이는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수렵활동으로 보였다. 가축은 공장식으로 사육되지만, 물고기는 여전히 바다에서 직접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고기잡이를 통해 인간의 세포에 녹아 있는 수렵 본능과 감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시 내 고향〉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 물고기가 나오면 시청률이 높았던 경험도 떠올랐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탄자의 참치 떼, 아프리카 도곤족의 메기잡이, 알래스카 연어 모두 1년에 단 한 번 촬영할 수 있었다.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는 관습적인 물고기 촬영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켰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어부는 한 마리의 물고기라도 더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물고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펄떡입니다. 그 둘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죠. 현장에서 느낀 강렬함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항공과 수면 위아래 등에서 동시에 여러 각도로 촬영하고, 수중 초고속 촬영을 통해 순간의 절박한 감정을 잡아냈다. 여러 대의 스틸카메라를 이용해 동시에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후 편집해서 붙이는 타임슬라이스 기법도 이용했다. 수중 초고속 촬영도, 타임슬라이스 기법도 국내 다큐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것이었다.

극장판 〈슈퍼피쉬〉에는 물고기가 많이 나오지만 주인공은 참치다. 거대한 몸집 때문에 극적인 연출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호주 포트링컨은 참치잡이로 부를 쌓은 도시로, 호주에서 인구당 백만장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레이더를 이용해 참치를 그물에 가둔 채 바다 한가운데서 양식한다. 참치들의 몸집이 불어나면 몸에 흠집이 나지 않게끔 손으로 잡는다. 송PD가 그들에게 물었다.

“참치가 당신에게 뭐냐고 묻자 바로 머니!라고 답해요. 호주의 참치는 현대적 의미고 상품인 거예요. 반면 지중해 사람에게 참치에 대해 물으면 인생이라고 합니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에게는 선조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자신들의 삶을 가능하게끔 하는 생명체로 인식되는 거죠.”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지중해 살육의 축제, 마탄자를 기록한 사람은 송PD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2011년 촬영 이후 마탄자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참치 값이 오르면서 갈고리로 상처를 내며 잡는 방식을 피하기 때문이다. 송PD는 물고기에 대한 이런 인식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는 물고기를 생선으로만 알고 있어요.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마트에 가면 물고기들이 머리가 잘린 채 그냥 누워 있잖아요. 마치 통조림처럼. 물속을 누비는 물고기가 아닌 거대한 공장에서 차칵차칵 만들어지는 컨베이어 벨트를 떠올리죠. 물고기가 대자연의 생명체라는 것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슈퍼피쉬>는 마지막까지 물고기와 사람이 녹아 있다. 엔딩 신. 세계 최대의 급류인 캄보디아 메콩강 지역. 어부는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고 있다.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7명의 자식이 있다. 질풍처럼 달리는 말과 닮은 급류는 사람을 우습게 휩쓸고 가버린다. 투박한 암석 위에 선 어부. 망설임 없이 투망을 던진다. 삶을 살아야 하는 어부와 그런 삶을 지탱해주는 물고기. <슈퍼피쉬>는 인간과 물고기의 굴레를 다루는 한 편의 대서사시인 것이다.
  • 201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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