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상상력 다룬 책 《똑똑한 식스팩》 펴낸 외화번역가 이미도

창의력,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아이처럼 살아보세요

글 : 최용준 인턴기자(경희대 2)  / 사진 : 김선아 

기자의 유년시절, 한 잡지에 이미도는 ‘외화번역 달인’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했다. 15년 전 잡지 속에 갈색으로 물들였던 머리는 어느덧 은빛 실타래가 되었다. 주름 또한 깊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천진난만한 미소. 그런 그가 왼손에 큼지막한 은반지를 끼고 있다. 반지에는 음각으로 ‘M’이 새겨져 있었다. 1997년 번역한 영화 〈맨인블랙〉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손가락에 늘 끼고 있는 반지처럼 영화는 이미도와 뗄 수 없다. 톱스타들이 친구 따라 오디션을 봤다 덜컥 연예인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 역시 아는 형의 번역 작업을 돕다 이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외대 스웨덴어학과를 졸업하고 공군장교로 영어교육을 담당했던 그로서는 흥미로운 분야였다. 그렇게 ‘번역: 이미도’가 시작되었다.

그는 지난 20년간 500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식스 센스〉 〈진주만〉 〈킬빌〉 〈글래디에이터〉 〈반지의 제왕 3부작〉 등 화제작의 엔딩 크레딧에는 어김없이 ‘번역: 이미도’가 올라갔다.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작품은 거의 빠짐없이 참여해왔다. 그는 자막을 만들며 언어를 조탁하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했다. 외화자막은 14글자라는 한정된 글자 수 안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는 심정이다. 그러나 그의 직업병은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된다. VIP 같은 단어를 원뜻인 ‘very important person’으로 해석하지 않고 ‘very imaginative person’ 같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의 일은 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도는 소설가적 기질이 있다, 간단한 말도 굉장히 멋있게 만든다’는 평가도 받았다. 최근 그는 아홉 번째 책 《똑똑한 식스팩》을 펴내며 창조적 상상력의 복근에 대해 말한다. 21세기가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인물들을 조명해서만은 아니다. 창의력은 사람이 갖고 있는 원초적 갈망이다.

“우리는 늘 변화를 꿈꿉니다. 우리가 본 수많은 영화들, 그 영화들이 가진 공통된 주제를 뽑아내면 바로 ‘Change’라고 할 수 있지요. 주인공은 갈등, 투쟁, 발견, 성찰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 사회, 국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나부터 변화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그는 이번 책을 조심스럽게 “자기 발견서”라고 했다. 자기발견을 해야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amusement), 잘하는지(ability), 그것을 위해서 어떤 재능을 키워나가야 할지(accumulation)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미, 능력, 축적된 경험 세 가지 A를 발견하면 창의력을 발휘할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다.

그는 일찌감치 자기발견을 할 수 있었다. ‘창의적인 선택’ 덕분이었다. 그 선택은 홀로서기였다. 아픈 가정사를 갖고 있다는 그는 미군부대에서 통역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유달리 감수성이 풍부해 아버지의 엄격한 면이 힘겨웠다.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 무렵, 그는 떠날 결심을 했다. 아버지의 간섭보다 자신의 생각과 행복을 찾아 독립한 것이다.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때가 가장 창의적인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고등학생 때 집을 나왔어요. 혼자 살기 시작한 거죠. 어릴 때 간섭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공부, 일, 삶을 살아올 수 있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남을 의식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해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Don’t live your life to please(남을 기쁘게 하려고 너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창의력을 뿜어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이건 무척이나 위대하고 중요한 과제예요.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 수많은 위인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재밌잖아요. 재밌게 살려고 해야 해요. 그래야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죠. 그게 뷰티예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엄청난 진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의 재미(amusement), 언어적 능력(ability)을 바탕으로 20년간 꾸준히 번역 경험을 쌓았다. 경험(accumulation)을 단단하게 만든 것은 책이다.

“창의력을 북BOOK돋우고 싶다면 많이 읽어야 해요(웃음). 번역 의뢰를 받으면 영상을 보지 않고 먼저 대본을 보면서 번역해요. 그 후 영상을 보면서 고쳐나가지요. 책을 읽을 때는 영상이 없어도 흥미진진하잖아요. 대본만으로 자막을 만드는 재미가 굉장히 커요. 영상 없이 상상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깊이가 더 풍부해요. 영상을 먼저 보고 번역을 하면 오히려 표현에 제약을 받아요. 시각적 의미만 반영하려고 하니까요.”


그는 인터뷰 중간 자주 웃었다. 반짝거리는 눈과 눈가의 주름살에도 웃음이 배어 있다. 쉰 살이 넘은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책 첫 장에 “제제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제제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어린이입니다. 순수한 영혼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죠. 우리 마음에는 모두 어린이가 숨어 있어요. 피카소, 아인슈타인도 그걸 잃지 말라고 했죠. 최고의 창작집단인 픽사의 모토가 ‘Dream like a child’. 아이처럼 꿈을 꾸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꿈에 대해 말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번역한 것은 제게 행운이었어요. 쑥스럽지만 나이가 들어도 천진난만한 상상을 하게끔 늘 자극제가 되거든요. 어른과 다르게 생각하도록 연습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글을 존댓말로 쓴다. 좀 더 친밀하게 마음을 건드리기 위해서다. 지금껏 그는 비판적인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좋은 내용을 추천하는 글, 소소한 감동을 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창의력을 통해 밝고 따뜻한 아름다움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모든 스펙을 이기는 스펙은 존중(respect)이라고.

“나를 존중한다 함은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려고 해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보려는 거예요. 뷰티는 도덕, 정의, 사랑에 담겨 있는 것을 보려고 하는 creativity라고 할 수 있죠.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삶을 통해 남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요.”

그의 이름 미도(美道)는 ‘아름다운 길’이라는 뜻이다. 최근 재미 삼아 아호를 지어보았다. ‘아름다운 길다운’에서 첫 글자와 끝 글자를 조합해 ‘아운’. 뜻은 아리따울 아(婀)와 구름 운(雲)이다. 여기저기 떠다니는 호기심 가득한 구름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까지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거처를 바다가 보이는 해운대로 옮겼다. 노동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서울을 떠난 것이다. 그는 이를 “자발적인 유배”라고 했다. 기존의 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홀로서기. 이미도의 창의적인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 201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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