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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세상을 바꾼 요리사 제랄다

글 : 이상희 

그림책이라고 하면 어린아이용 알록달록 다정다감 말랑달콤한 책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토미 웅게러 그림책을 보여주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시뻘건 도끼를 든 시커먼 강도 셋이 등장하는가 하면(<세 강도>), 잉크 얼룩진 곰인형이 주인 꼬마들과 헤어져 전쟁과 학살의 아수라장을 전전하고(<곰인형 오토>), 할머니 선생님 뤼즈 보도가 아들이 아프리카에서 생일 선물로 보내온 보아뱀과 함께 살면서 놀라운 일을 겪는다.(<크릭터>) 서글픈 신세의 외다리 상이군인이 공작부인과 결혼을 하기도 한다.(<모자>)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그림책 60여 종은 물론 0세부터 100세의 전 세대 독자를 위한 것이지만, 대체로 우리가 기피하거나 말 붙이고 싶지 않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아이들과 나누기 꺼림칙한 주제를 대담하게 거론한다.

그중에서도 <제랄다와 거인>은 토미 웅게러 그림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사람 잡아먹는 거인, 특히 어린아이로 아침 식사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식인 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처음 볼 때엔 얼핏 가슴이 철렁해지는 이 그림책 첫 장면은, 뾰족한 이를 드러낸 채 피 묻은 식칼을 든 거인이 핏발 선 눈으로 어린아이를 가둔 나무상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다. 곰곰 들여다보면 잔혹하다거나 난폭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기발하다거나 익살스럽게 여겨지는 이런 그림이 바로 토미 웅게러 식 블랙 유머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게 만드는 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식인 거인이 날마다 마을 아이들을 잡아가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 비밀 장소를 만들어 자식들을 숨기기 바쁘고, 그 탓에 학교는 텅 비어 교사들은 낙담해 있다. 그러나 소녀 제랄다는 흉악한 거인이 날뛰는 마을 이야기는 까맣게 모른 채, 멀리 떨어진 숲 속에서 요리 취미를 즐기며 아버지와 단둘이 평화롭게 지낸다. 하루는 아버지가 점심이 맛나서 너무 많이 먹고 배탈이 났다며 침상에 누운 채 제랄다를 불러서는 1년에 한 번 수확물을 내다 파는 내일 장날을 놓칠 수 없으니 혼자서라도 다녀오란다.

다음 날 아침 제랄다는 홀로 당나귀 수레에 짐을 싣고 길을 나선다. 산길 어디쯤 가다 보니 커다란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제랄다는 그가 오래 굶주린 흉포한 식인 거인이며 자기 냄새를 맡고 허둥대다가 발목이 삐고 코피를 흘린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그저 불쌍한 마음에 물을 길어다 얼굴을 닦아주고, 배고프다고 끙끙거리자 불을 피워 냄비를 걸고 요리를 해 먹인다. 장에 내다 팔 식료품을 절반이나 써가면서!

온갖 맛난 요리를 먹고 기운을 차린 거인은 제랄다를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 감탄한다. 세상에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어린아이를 먹고 싶은 마음마저 다 사라졌다고, 날마다 이런 요리를 먹고 싶다고! 거인은 제랄다에게 자기 성에 금이 잔뜩 쌓였는데, 날마다 요리를 해준다면 바로 그 금을 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제랄다는 승낙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성으로 모셔와 온 나라에서 제일 좋은 식료품을 사들이는 일을 맡긴다. 그리고 자신은 온갖 조리 도구가 갖춰진 멋진 주방에서 마음껏 요리를 한다. 식인 거인은 친구들을 불러 제랄다의 요리로 잔치를 벌이고, 친구 거인들 또한 훌륭한 음식 맛을 알게 되어 입맛이 바뀐다.


거인의 입맛이 바뀌는 바람에 세상이 바뀐다. 거인은 아이를 먹을 마음이 없어졌을뿐더러, 그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토미 웅게러 그림책 결말이 늘 그렇듯, 마뜩치 않은 존재들은 사랑스러운 주인공이 되고 모두와 함께 행복해진 것이다. 마을은 평화로워지고, 제랄다의 훌륭한 요리를 먹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바뀐 거인은 이제 다 자라 처녀가 된 제랄다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다.

첫 장면에서 거칠고 끔찍한 모습으로 칼을 들고 어린아이를 겨누었던 거인은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아들 셋의 아버지가 되어 새 아기를 안은 제랄다 부인과 나란히 미소 짓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곰곰 들여다보면, 작가가 첫 장면에서와 다름없이 블랙 유머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토미 웅게러가 그저 평화롭고 온건한 결말을 구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 아기 동생을 올려다보느라 등을 보이고 있는 아이가 뒤로 감추고 있는 포크와 식칼을 보라.
  • 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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