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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날들〉 주역 강태을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중성의 매력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뮤지컬계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그는 〈그날들〉로 호평받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날카로운 눈빛, 선 굵은 외모는 냉철하고 완벽한 원칙주의자로 설정된 극중 경호부장 역에 ‘딱’이었고, 1992년과 2012년을 오가는 스토리 전개상 신입 경호원인 20대와 40대를 넘나드는 연기도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올 상반기 국내 공연계 최대 화제작을 꼽으라면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그날들〉을 들 수 있다. 지난 6월 진행된 제7회 ‘더 뮤지컬 어워드’에서 작품상·각본상·신인상을 휩쓸었고 유료 객석 점유율 80%를 웃돌며 한국 대형 창작 뮤지컬 초연으로는 드물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세대를 뛰어넘는 감성으로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든 김광석의 명곡과 과감한 편곡,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등을 만든 장유정의 탄탄한 극본과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그중에서도 유준상・오만석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으로 주역인 ‘차정학’ 역을 맡은 뮤지컬배우 강태을은 이 작품으로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뮤지컬계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그는 〈그날들〉로 호평받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날카로운 눈빛, 선 굵은 외모는 냉철하고 완벽한 원칙주의자로 설정된 극중 경호부장 역에 ‘딱’이었고, 1992년과 2012년을 오가는 스토리 전개상 신입 경호원인 20대와 40대를 넘나드는 연기도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대형 극장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연기와 노래로 무대를 압도하는 그를 보며 장유정 연출은 한 인터뷰에서 “물 만난 배우”라는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다. 관객들에게도 가장 “차정학스럽다”는 평을 얻었다.


6월 30일 마지막 공연(서울 기준)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그에게 공연을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쉽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 그는 “이 공연이 얼마나 행복한지, 연출님에게 1년 내내 〈그날들〉만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지방 공연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허전해요. 연습 때부터 따지면 거의 반년을 차정학에 푹 빠져 살았거든요. 차정학은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사랑하는 친구와 여인을 어느 날 갑자기 잃고 그 일로 인해 고문도 당하고 좌천되는 등 여러 가지 고초를 겪어요. 게다가 둘의 생사도 모른 채 20년을 살아오며 내면에 많은 아픔을 품고 있어요. 그런 상처들 때문에 20대 때 보여준 우직하지만 순수한 모습을 잃고 아주 냉철하게 변해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의 미묘한 변화와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도전해볼 만한 인물이죠. 제가 이 배역에 욕심을 낸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대에 서기 전 차정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20대의 정학은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40대의 정학은 장면 장면마다 ‘나라면 어땠을까’ 여러 번 생각하고, 또 공감하려고 노력했죠.”

그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캐릭터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는 관객들에게 그 어떤 감동도 전달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캐릭터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대신 그 안에 녹아든다.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차정학’이 된 이유다.


일본 최대의 뮤지컬극단 시키에서 5년간 활동


올해 서른넷인 그는 뮤지컬 데뷔 10년 차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뮤지컬 전문 극단 ‘시키(사계)’에서 5년간 활동했다. 1953년 창립한 시키는 8개의 전용 극장에서 연간 30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일본 최대의 극단. 2004년 서울예대와 극단 시키의 공동연수 프로그램 참가차 일본에 갔던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시키의 단원이 되었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그곳에서 연기, 안무, 발레, 재즈댄스, 노래 등 뮤지컬의 기초를 탄탄하게 익혔다. “일본어 공부·연습·오디션 경쟁까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던지 식사량이 엄청났는데도 살이 계속 빠졌다”며, “그때의 혹독한 훈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앙상블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주역까지 맡게 됐어요. 제 목표가 <캣츠>의 대장 고양이 ‘멍커스트랩’ 역이었는데 마침내 기회를 얻었죠. 그 후 2006년에 시키가 한국에서 <라이언 킹>을 선보일 때 ‘무파사’ 역을 맡았어요. 하지만 제 연기에 불만이 많았어요. 분명 우리말로 연기했는데 왜 그렇게 어색하던지, 감정은 과장돼 있고. 이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작품을 마치고 나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시키에서의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춤과 노래 등 기술적인 부분이 더 많이 요구되었고, 대사를 한다 해도 남의 언어인 일본어로 그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틀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에 짓눌려 있던 때 <라이언 킹>이 그를 깨웠다. 마침 목표로 삼았던 ‘멍커스트랩’ 역까지 마쳤으니 돌아올 이유는 충분했다.

귀국 후 한동안 일이 없었지만 그는 시키에서의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다. 매일 집 근처 아차산에 올라 노래를 연습하고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다. 2009년 공연을 위해 2008년 진행된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돈 주앙〉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돈 주앙의 넘버를 완벽하게 연습해온 그를 보며 외국인 스태프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던 그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돈 주앙’ 역을 따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돈 주앙’으로 더뮤지컬어워드 신인상을 받은 그는 〈렌트〉 〈헤드윅〉 <몬테 크리스토> <햄릿> 〈모차르트, 오페라 락〉 등 쉼 없이 작품을 이어가며 다양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러나 〈그날들〉로 돌아오기까지,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었다.

“‘이대로 좋은가?’라는 고민을 했어요. 어느 순간 무대에서 기계적으로 노래하고, 약속된 대로만 움직이는 제 모습을 돌아본 거죠.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좀 쉬면서 답을 찾고 싶었어요. 모든 작품을 고사하고 그냥 놀았어요.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비디오를 보고, 답답하면 농구를 하거나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여행도 했고요. 순간순간 유혹도 있었지만 무대가 미치게 그리워질 때까지, 열정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1년쯤 쉬고 나니 그런 마음이 간절하더라고요. 그때 만난 작품이 〈그날들〉이었어요. 공연을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아끼지 말고 발산해보자는 각오로 연습했죠. 또 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주인공 정학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가수를 꿈꾸다 연기로 전환, 서울예대 연극과 수석 입학


고등학교 시절, 그의 꿈은 가수였다. 노래는 독학으로 익혔다. 고음이 잘 나지 않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수 김경호의 노래를 열심히 듣고 따라 했다. 매일 연습하니 어느 순간 목청이 트였다. 그러나 미성인 자신의 목소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수 임재범의 노래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단순한 모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살짝 허스키하면서 감미로운 목소리, 고음 부분에서는 시원하게 터지는 ‘강태을식 창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창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그에게 ‘연기’를 권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공연계에 비언어극 장르를 처음 도입하는 등 실험적인 무대로 유명한 강만홍 교수(서울예대 연기과)다. “연기를 먼저 배운 뒤에 가수를 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입시 준비에 매진한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에 수석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가수의 꿈은 놓지 않고 있었어요. 작은 가요제에 나가 상을 타면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도 몇 번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가 ‘일단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대하고 복학해보니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뜨고 있더라고요. 마침 학교에서 〈페임〉 오디션이 있었는데, 합격해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됐어요. 한 작품 안에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수 있어 좋았죠.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어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가 뮤지컬배우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 첫 공연을 하는 날이면 예외 없이 객석을 찾는다. 공연 전문가의 눈으로 작품 전체에 대한 꼼꼼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물론 그의 연기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지적을 한꺼번에 고치지는 못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그때 말씀하신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2009년 뮤지컬어워드에서 신인상을 받던 날, 단상에서 내려온 그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던 아버지에게서 전해오던 그 따뜻함을 그는 잊지 못한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아버지의 손길이 ‘고생했다’ ‘잘했다’ 같은 말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다가온 까닭이다.


머물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


미소년처럼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는 무대 위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작은 얼굴, 곱상해 보이는 외모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차정학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며 웃었다.

“차갑고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세심한 편이에요. 외로움도 잘 타고요. 특히 외동으로 자라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쉬는 날에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러 나가죠. 어린이대공원에 동물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해요.”

모델을 해도 좋을 만큼 훤칠한 키와 몸매, 외모로는 누가 봐도 ‘상남자’ 스타일인 그의 입에서 나온 ‘동물원’ 이야기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팬클럽에서 생일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을 때도 카페 같은 데서 밥 먹지 말고 어린이대공원에서 놀자고 했어요. 게임도 하고, 동물 구경도 하고, 도시락도 먹으면서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어요.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대공원이 제 놀이터예요(웃음).”

그러고 보니 그는 〈그날들〉의 20대 정학과 닮았다. 자신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책임감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동시에 지닌 남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매력은 여러 모습의 삶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장점일 터. 그 역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았다는 생각에 항상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에게 무대는 일터라기보다 쉼터이자 힘을 얻는 곳이다. 요즘에는 배우로서의 외연을 확대해나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연극, 영화, 방송 등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를 위해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가능한 소속사에 들어가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 배우로서의 성장통을 또 한 번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고자 하는, 스스로 만드는 성장통이기에 그의 모습을 더 기대하게 된다. 그 과정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큰 배우로 키울 것임을 알기에.
  • 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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