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김상혁 〈싸움〉

강함이라는 것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사진 : 김선아 

강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비좁은 보행로를 걸어가는 권투 선수의
펼쳐진 왼손처럼, 건널목에 서게 되면 건널목만을 생각하는 머릿속처럼
무심하고 고양되지 않는다.
눈빛이 마주칠 때 무서운 건 무엇인가.
실제로 아무런 싸움도 나지 않는데

이렇게 등을 돌리고 누우면 강함은 너의 침묵 속에 있다.
고요함은 나에게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눈빛이 마주치지 않는데 깜깜한데
내일의 너는 멀고 무더운 나라
낯선 이웃들이 자꾸 인사하는 어떤 문밖에 서서
우리의 침대를 태우고 있거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모든 문밖에 계속 서 있을 것만 같은.
실제로 아무런 눈물도 흘리지 않는데
앞으로는 너의 교외가 슬퍼질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너에게 나는 웃는 사람인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나는 너에게 강한가.
내가 주먹을 내지른 공간이 건너편 방의 침묵 속에 쓰러져 있다면
그것의 인내는 언제까지인가.
등을 돌리고 강해지는 우리들.

두려워도 상대의 눈에서 눈을 떼지 마라. 어쩌면 다음을 위한
이런 규칙을 깨야 할 때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할 때 나는
고요한 나에게 대해 얼마나 강한가.



김상혁의 첫 시집을 ‘역사적’인 시집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시집이기는 할 것이다. 이 시집에서 시의 화자는 웅크리거나 엎드려 있는데, 이 자세는 갈망과 현실이 어긋나 있는 상황 속에서 자기 견딤을 보여주는 자세다. 시인은 “내 엎드린 자세 뒤에서 밤이 야행성을 단련”(〈누가〉)하고, “엎드리는 건 오직 은밀한 조립을 위한 자세일 것”(〈조립의 방〉)이라고 쓴다. 조립은 도구-사물이 용도를 다한 뒤 해체해버릴 수 있는 임시적 결합이라는 뜻을 품는다. 이 젊은 시인의 시에서는 밤도, 애인도, 삶도 조립식인데, 이것들이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시의 화자는 엎드린 자세에서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명령을 들으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누가〉)라고 묻는다. 이 구절은, 이 첫 시집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 찾기라는 큰 기획의 틀 안에 있음을 암시한다. 자, 구체적으로 시 한 편을 골라 읽어보자.

내가 고른 것은 〈싸움〉이라는 시다.


〈싸움〉은 ‘너’와 ‘나’의 싸움에 대해 말한다. 권투 선수를 언급하고 주먹을 내지르지만, 이 시에서는 어떤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는 싸움이 아니라, 다만 어떤 이유로 눈빛을 마주치지 않고 등을 돌리는 것, 침묵과 고요 속에 웅크리는 일의 괴로움, 그리고 그 괴로움을 견디는 것의 강함에 대해 말한다. 그 시적 어조는 매우 암시적이다. “이렇게 등을 돌리고 누우면 강함은 너의 침묵 속에 있다./고요함은 나에게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와 같은 구절이 그렇다. 우선 ‘너’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이 시는 해결하지 않고 모호한 채로 놔둔다. ‘너’는 ‘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너’는 ‘나’에게 등을 돌린다. ‘너’는 ‘나’를 떠날 셈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일의 너는 멀고 무더운 나라”가 그 사실을 암시한다. ‘나’는 ‘너’의 등 돌림으로, 혼자, ‘너’라는 존재가 만든 고요 속에 팽개쳐져 있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네가 울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만큼 ‘나’는 자신의 처지에 앞서 ‘너’의 기분과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

아마도 ‘나’와 ‘너’는 사랑하는 사이인데, 이제 헤어져야만 하는가 보다. “내가 주먹을 내지른 공간이 건너편 방의 침묵 속에 쓰러져 있다면/그것의 인내는 언제까지인가”라는 구절은 ‘너’의 상실에 대한 ‘나’의 반응을 드러낸다. 그것은 분노와 두려움이 뭉쳐서 만든 반응이다. ‘나’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빈 방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나’는 ‘너’를 떠나보낸 뒤 그 빈자리를 견뎌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잃은 자가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할 고독과 불모성, 그리고 사랑 없음의 황막함에 대한 인내가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나’는 견뎌야 한다. 시의 화자는 ‘강함’에 매달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강한 것은 무엇인가? 권투 선수와 같이 싸워서 상대를 때려눕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나는 너에게 강한가”라는 물음에 따르자면, 강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과 사랑, 모든 연대의 인류애를 넘어선, 그것마저 없을 때조차 삶을 꿋꿋하게 견디는 형식으로만 드러난다. 낯선 것을 낯선 것 그대로 견디는 것, 그것이 강함이다. 개들은 낯선 것, 잘 알 수 없는 것이 다가올 때 맹렬하게 짖는다. 개는 그 잘 알 수 없는 것들이 일으키는 불안과 의심에서 요동치는 것인데, 그 불안과 의심 중심에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결국 개가 짖는 것은 제 안의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잘 알지 못하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등을 돌리고 강해지는 우리들.”이라는 구절이 만들어진다.

김상혁의 시에서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매일 일을 나갔다.”(〈학생의 꽃〉)는 구절이 그것을 암시한다.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그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의 마음에 빚과 그늘이 자라난다. 편모슬하라는 슬픔이 드리워진 이 젊은 시인의 시세계에서 엄마는 자주 대타자,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등장한다. 엄마는 “후레자식은 어쩔 수 없다며 왼손으로 내 머릴 후려”(〈정체〉)친다. 엄마의 모든 말은 법이고 규범이고 최종심급이다. 엄마는 다정할 때 “바다를 건너면 여자를 몰래 사랑하고 꼭 양말을 신거라”(〈당부〉)고 하지만, 강함을 독려할 때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사육제로 향하는 밤〉)고 일체의 슬픔을 금지하고, “두려워도 상대의 눈에서 눈을 떼지 마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엄마의 명령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손발이 완전히 자라고 독립된 주체로서 제 삶을 스스로의 규범으로 꾸리는 일이다. 가족과 어린 자신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김상혁 시의 화자는 엄마의 규칙을 깨고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할 때”로 나아간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은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애비 없는 자식으로 살기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 후레자식 되기를 부정함으로써 강함을 증명해야 한다. 강해야만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강해야만 스스로 애비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강한 ‘나’는 고요한 ‘나’다. 그래서 ‘나’는 “고요한 나에 대해 얼마나 강한가”라고 묻는다.


김상혁(1979~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계간지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첫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를 펴낸다. 이 젊은 시인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이게 전부다. 나는 이 시인을 만난 적이 없다.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는 짧은 머리를 하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젊은이다. 우리가 서른네 살의 젊은 시인에 대해 좀 더 알려면 그 시를 보고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죽도록 훔쳐보고 싶은 건 바로 나예요”(〈정체〉)라는 구절에 얼핏 드러나는 자기애, “똑같아지려고 교회를 다닙니다”(〈홍조〉)가 말하는 교회 소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돌이킬 수 없는〉)가 보여주는 내향주의적인 소심함, “여자들만 남은 가정에서는 흔히 작은 슬픔 같은 건 금지되곤 한다”(〈학생의 꽃〉)가 암시하는 부성 부재가 또렷한 가정 따위. 그러나 이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의 화자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귀신은 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만 자기 정체를 안대./사육장과 게양대 사이에 앉아서 나는 이 이야기를 지어냈다.”(〈유전〉) 시를 빌려 고백하는 그의 비밀들은 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낸 가공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그려내는 상상 세계는 괴이하고 야릇하다. 그것은 부어오른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게우는 짓무른 뱀들, 꼬리를 갖고 싶은 아이들, 여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 욕구를 오로지 제 침대에게 털어놓는 남학생의 도착적 욕망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 2013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