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정현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이정현 

짙은 색 나무 바닥에 드리운 하얀 망사 커튼. 미풍이라도 불었는지, 바람에 흔들린 커튼의 주름이 리드미컬하다. 얇은 망사 커튼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부드럽다. 창가 커튼을 촬영한 이 사진 작품은 햇살, 바람으로 인해 특별해졌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좇는 우리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햇살이 스며드는 고요한 창가 풍경은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색 이불 위에 누워 있는 아기. 그런데 아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흰 옷을 입은 아기의 팔과 살짝 주먹을 쥔 오동통한 손만 보인다. 하얀 천에 둘러싸인 아기 손. 손만 보이기에, 더욱 통통한 이 아이 손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구름이 뒤덮고 있는 잿빛 하늘과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푸른 바다로 꽉 찬 작품은 미국의 색면 추상을 연상시킨다.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54_ 44×56cm, Inkjetprint, 2011
사진작가 이정현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는 대단한 풍경이나 물건도, 거창한 서사나 주장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장면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의 은사이기도 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정현의 사진들을 보자마자 매혹되었는데도,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진들은 동양의 감성과 서양의 사진미학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결코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시각세계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면서 자신이 본 그대로를 기록한다. 사진에 담기는 내용이 있지만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녀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속을 더 파보도록 한다. 나는 그녀의 사진들이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 아니라 내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서 만나는 장면이라는 것을 안다. 그 사진에는 상징들이 있지만 그걸 단순히 상징으로만 읽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거기에는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굉장히 지적인 감성이 담겨 있다. 이는 형식과 내용이 매끄럽게 결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사진에는 주체와 배경이 따로 있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다. 정현의 사진은 사물을 명징하게 보면서 깊이 받아들일 때 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It also took quite some time for me to understand Jeong Hyun's photographs even though I was attracted to them from the first. They are incredibly beautiful, a balance between an Asian sensibility and subtle use of Western picture-making strategies. She is never an illustrator. She responds to the visual world in a receptive and intuitive manner and simply records what's seen in a straightforward way. The content follows, but is never forced. It requires the viewer to dig for it a little. I find that I meet these pictures somewhere in an inner place in myself, not my daily self that is busy and defended. There are symbols, but to read the pictures as simply symbolic is a mistake. There is emotional content that is not rational but is very intelligent. It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seamless combining of form and content. There is no subject and no background; it's all one thing. Jeong Huyn's photographs are further evidence that seeing something clearly and with deep receptivity can create magic.”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57_ 44×56cm, inkjetprint, 2011
6월 12일에서 24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룩스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만난 이정현씨는 “필립 퍼키스는 제가 계속 사진작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준 분”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그에게 오랫동안 ‘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뭔가 멋진 것을 해보고 싶었던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사진도 그런 꿈 중 하나였다. 부모는 ‘저러다 말겠지’ 했고,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영상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를 전공, 인터넷진흥원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사진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학교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했고, 잡지를 뒤지다가도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현실을 담았는데 현실 같지 않은 장면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밥벌이가 되겠느냐?”며 부모가 반대하고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서 피했던 일. 그는 뒤늦게 사진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큰 혼란이 왔다.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61_ 44×56cm, inkjetprint, 2011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이슈같이 주제가 뚜렷하고 강한 작품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저같이 정적인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1주일 동안 각자 작업한 내용을 가지고 서로 비평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는데, 제 작품을 가지고는 할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나도 이슈가 될 만한 작품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벗고 셀프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나?’ 고민스러웠죠.”

그때 “너, 이렇게 해도 돼. 괜찮아”라고 인정해준 스승이 필립 퍼키스였다.

“그전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이곳까지 왔는데,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남이 하는 대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트렌드를 좇아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혔죠. 그래야 진심으로 몰두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당당할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그게 네 색깔’이라고 주변에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지 몰랐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네 사진 같지?’ 하면서 제 사진을 흉내 내는 친구도 생겼습니다.”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52_ 44×56cm, inkjetprint, 2012
2006년 국제사진전(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s)에서 수상한 이래, 미국과 파리 등 각종 사진전에서 수상한 그는 텍사스, 뉴욕 등지에서 전시회를 가지고 2010년 갤러리룩스의 신진작가로 선정돼 개인전을 가졌다.

“제 작품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나온 것입니다. 촬영을 위해 특별히 어떤 장소를 찾거나 설정을 하지 않아요. 그저 사소하고 시시한 일상의 장면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카메라로 담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만들었을 때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확률은 많지 않아요. 촬영한 사진 중 극히 일부만 작품이 되지요. 제가 원하는 색감과 톤을 내기 위해 잉크젯 프린터를 사용해 매트한 종이에 직접 프린트를 합니다. 카메라가 해석한 장면이 아니라 제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색감과 톤, 질감을 세밀하게 조율합니다.”

그의 작품 사진은 보통 가로세로 44×56cm로, 크지 않다. “제 작품들로 책을 만들어 앨범처럼 넘겨가며 보게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작은 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는 그와 그의 작품이 닮았다.

A Little More or Less than nothing 51_ 44×56cm, inkjetprint, 2011
그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열심히, 그리고 깊이 바라보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하고, 항상 감성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순간은 사실 슬픔, 불안,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의 겹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일상도 사실은 한순간 깨져버릴지도 모를 불안정한 상태 아닙니까? 그렇기에 일상이 더욱 기적 같고, 아름다운 거죠. 사람에게는 누구나 상처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그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 겁니다.”

이정현의 사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먼저 다가온다. 그 역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한다.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말로 하지 왜 사진으로 보여주려 하겠는가? 사진작가의 역할은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아름다운 장면, 순간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한 로버트 애덤스의 말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헝가리 출신의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스는 ‘나는 그냥 찍고 싶어서 찍었다. 그게 다다’라고 했지요. 필립 퍼키스 선생님은 ‘네 작품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너는 그걸 의식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자신의 작품을 정의 내리는 순간 거기에 갇혀버리니까’라고 충고하셨죠.”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내면에 파고들어 보는 사람 각자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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