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다음은 계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글 : 최용준 인턴기자(경희대 2)  / 사진 : 김선아 

쿨레인(본명 이찬우)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피규어를 만들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다. 그는 처음 3D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스태프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보다 스스로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었다. 퇴근 후 재미로 만들던 피규어는 그런 목마름을 채워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피규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2004년, 그는 황무지에서 홀로 3년 동안 연습했다. 외국 사이트에서 동영상과 서적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웠다. 처음에는 재료를 모두 외국에서 공수해야 했다. 긴 연마 끝에 나온 그의 실력은 ‘Made by Coolrain’으로 점차 퍼져나갔다.

그는 피규어 아티스트로서 세계 최초로 NBA 토이를 제작했다. NBA 수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피규어를 들며 웃었다. 나이키 CF를 위해 FC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 토이를 만들었다. 그림 한 점에 4000만원을 호가하는 화가 데이브 화이트는 쿨레인의 덩키즈 캐릭터가 좋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자전거 브랜드 치넬리의 디자이너 역시 토이를 갖고 싶다며 자전거를 선물로 보내왔다. 아베마컬쳐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전원의 피규어를 디자인했다. 퓨마,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과 함께한 프로젝트도 여러 번. 올해로 쿨레인은 10년 넘게 피규어를 만들고 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있다. 글쓴이는 방망이를 파는 노인에게 방망이를 한 벌 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이 방망이를 깎으며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며 마냥 늑장이다. 차를 타야 할 시간이 빠듯해 그냥 달라고 하자 노인은 버럭 화를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방망이를 건넨다. 불쾌한 기분으로 집에 왔지만 아내는 방망이가 꼭 알맞고 예쁘다며 연신 감탄한다. 쿨레인은 그 노인과 닮았다. 꼼꼼함을 넘어 완벽주의다.

“토이를 만들 때만 그래요. 다른 건 잘 못 챙겨요. 주변머리가 없거든요. 피규어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만들고 싶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거죠.”

옥구슬을 조탁하는 장인처럼 손톱만 한 신발의 바늘 한 코를 여러 번 들여다본다. 청바지를 6분의 1로 축소해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동대문시장을 휘젓고 다닌다. NBA 선수들의 피규어를 디자인하는 데 1년 반가량 시간을 보냈다. 선수들의 가정환경, 취미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피규어를 만드는 데 그 사람의 백그라운드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면 알수록 더욱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쿨레인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원형과 디자인을 함께하는 아티스트다.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어야 조금 더 자기 생각에 근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촉해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는 것은 방망이를 깎던 노인의 고집과도 닮아 있다. 그의 대표 캐릭터 덩키즈 역시 나이키의 지침과는 상관없이 만들었다.

“나이키에서 못 하게 했는데 만들었어요(웃음). ‘덩크 신발을 신는 사람들’이 콘셉트였는데, 저는 아예 사람이 아닌 원숭이를 만든 거죠.”


덩키즈는 대성공이었다. 그가 만든 피규어는 예술의전당 전시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 의뢰처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키 CF를 만들 때도 <월레스와 그로밋>을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 쪽에서 쿨레인과 합작하기를 원했다.

그에게 ‘쿨레인 피규어 스타일’에 대해 묻자 그는 말을 아꼈다. 오직 작품으로 보여줘야 하며, 그마저도 판단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특징이 있다면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주제를 정한다. 특히 역동적인 사람의 모습에 주목한다. 스포츠 선수, 아티스트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얼굴과 체형은 심플하게 만든다. 그 외 액세서리는 디테일에 신경 쓴다.

“제가 하는 오리지널 디자인(아티스트가 직접 창조한 디자인)은 생소한 이미지를 피규어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현실감을 주기 위해 의상과 신발에 신경 씁니다.”

쿨레인의 피규어 철학은 꾸준함이다.

“피규어는 얼마나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한 번에 반짝하기보다는 지치지 않고 자신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작품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전부예요. 아트토이를 사는 건 그 작가의 히스토리를 사는 거죠.”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꾸준하기 위해서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그렇다면 쿨레인은 피규어를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건 사실 모르죠(웃음). 대학에 다니면서도 잘 몰랐고요. 과거에 좋아했던 것과 지금 좋아하는 건 달라요. 회사에 있다가 우연히 토이를 만들게 된 거죠. 시간이 지나고 3D 프린트 가격이 떨어지며 보급되는 시대가 온 거예요. 오래전 열심히 공부했던 3D 기술이 지금 큰 도움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서 하는 것들이 도움이 돼요. 이게 진짜 좋은지는 알지 못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깊이 보고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껏 맡은 프로젝트는 모두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주요 작품 소재인 농구는 그가 즐겨하는 운동이다. 피규어를 만드는 것이 곧 여가생활이다.

“디자인 책 사는 것이 취미예요. 아이디어가 생기니까요. 피규어 만드는 것도 좋아하니까 취미라고도 할 수 있죠.”

그가 만든 것은 대부분 한정판으로 팔린다.

설사 잘 팔리더라도 대량으로 만들지 않는다. 흥미를 좇아 새로운 것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쿨레인은 여전히 배고프다.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쌓인다. 그는 스토리가 있는 아트 토이 전시회를 구상 중이다. 관람객들이 단순히 피규어를 보며 “귀엽네, 신기하다”고 말하는 전시회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등 다른 예술을 함께 전시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고 싶어 한다. 그는 아직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의 10%도 못 만들었다.
  •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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