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그가 뜨면 대한민국이 앓는다

글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사진제공 : 헤럴드경제 

인터뷰 장소에선 가벼운 홍조 같은 풋풋한 열기가 훅 와 닿는 느낌이다. TV의 CF가 전시하는 완벽한 스타의 이미지보다는 20대 청년다운 설렘과 떨림이 앞선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와 호감이 교차하는 눈빛이 그렇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흠없는 낱말을 잡아내려는 표정 또한 그렇다. 아침저녁 불현듯 엄습하는 한기와 기어이 반소매를 드러내게 하는 때 이른 낮더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서울 삼청동의 계절은 스물다섯 살 배우 김수현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남달리 폭발적인 청춘의 시간과 썩 잘 어울리는 비유가 될 듯하다.
드라마 <드림하이>와 사극 <해를 품은 달> 이후, 김수현은 국내 TV와 스크린에서 가장 젊고 가장 뜨거운 스타가 됐다. 연기력으론 견줄 바 아닌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지만 김수현의 ‘젊음’을 가질 수 없고, 인기를 겨룰 만한 또래나 후배 청춘스타들은 김수현의 ‘재능’을 앞서지 못한다. 팬들뿐 아니라 업계와 전문가들의 평가도 그렇다. 그의 신작영화이자 스크린의 첫 주연작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는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스타 김수현이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완벽한 종합선물세트’이자, 배우 김수현이 가진 모든 가능성에 대한 매우 타당한 증명이다.

“처음에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대단한 웹툰이길래 그럴까 해서 원작을 먼저 봤죠. 앞부분은 편하고 가벼운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빠져들더군요. 마지막엔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로 보고 싶다고 소속사에 전했죠. 그리고는 바로 제안을 받았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필명이 ‘HUN’인 작가의 웹툰(인터넷 만화)으로, 북한에서 최고 훈련을 통과한 정예 요원이 남파공작을 위해 한 달동네에 ‘바보청년’으로 위장잠입해서 겪는 일을 담았다. 원작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팬들이 먼저 주인공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로 김수현을 꼽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렸고, 영화사에서도 이미 ‘캐스팅 영순위’에 올려놓고 있던 터였다.

“주인공에겐 4가지 색깔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사상에 철저한 엘리트 요원의 북한말, 그가 훈련받고 완전히 숙달한 남한의 표준어, 남파 후 위장한 동네바보의 억양, 남에서 사회화된 후 갖게 된 목소리입니다.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듣기도 하고, 주위의 동료 배우에게 모니터링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북한말은 탈북자에게 배웠고, 바보의 말과 몸짓은 <텔레토비>(영국 BBC에서 제작한 유아용 TV 프로그램)에서 가져왔어요.”

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기계’이자 ‘조국의 명령에 헌신하는 위대한 혁명전사’로서 훈련받은 주인공은 남쪽의 한 달동네에 잠입해 좀 모자란 청년으로 살아간다. 뭐가 좋은지 늘 헤벌레 웃고 다니고, 다 컸는데도 어린애처럼 코를 훌쩍이고, 골목 어귀에 다닐 때마다 늘 엎어지고 자빠지니, 동네 아이들에게조차 놀림을 받는 인물이다. 마음속에선 늘 ‘조국’이 부여한 혁명전사로서의 임무를 되새기지만, 매일 마주하는 이들은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수퍼마켓 아주머니와 형 같고 동생 같은 동네의 청년들, 남달리 어여쁘게 보이는 비슷한 또래의 아가씨, 귀엽기만 한 아이들이다.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가족 간의 정을 나누고, 친구와 우애를 다지며, 이성과 사랑을 속삭이는 평범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철옹성 같던 신념과 조국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사명감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을 인간적인 소망이 파고든다. 그 무렵, 한반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됨으로써 남파간첩들은 남북 모두에 ‘애물단지’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다.

북은 ‘자결’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복하는 고정간첩들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단을 급파한다. 바보청년이 빚어내는 희극이 점차 ‘버려진 스파이’의 비극으로 향한다.

소년과 청년, 평범함과 특별함, 소박함과 세련됨, 천진함과 영리함이 교차하는 이미지뿐 아니라 ‘신인답지 않다’는 관용적 찬사를 넘는 잘 조율된 감정표현과 설득력, 호소력을 갖춘 연기력은 김수현을 2010년 이후 ‘핫’ 스타로 떠오르게 했다. 만일 자신을 향한 기대에 응답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증명하겠다는 야심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선택했다면, 김수현의 결단은 매우 타당했다. 코미디와 스릴러, 가족 휴먼드라마에서 스파이 액션과 꽃미남 청춘물까지 젊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장르의 종합선물세트 속에서 김수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척척 말과 몸을 맞춰간다. 특히 ‘살인기계’로 훈련받은 냉혈한과 ‘바보청년’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대조는 분단이 빚어낸 한 젊은이의 아이러니한 삶을 잘 보여준다.

“바보 연기요? 만일 내 옆에 바보가 있다면 어떨까? 신경이 많이 쓰이고 부담스럽기도 할 텐데 주인공 ‘동구’는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편하게 대하고, 꼬마들조차 거리낌 없이 놀릴 수 있는 존재여야 했죠. 그래야 관객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하다가 영국의 ‘위대한’ 4명의 배우들을 생각했죠? 바로 <텔레토비>예요. 하하. ‘안녕’ 하는 특유의 발성과 몸짓을 가져왔어요.”


고등학교 때 내성적인 성격 고치려 연기 공부 시작


연기라면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20대 중반의 스타답지 않은 ‘집요함’은 10대 중반 시절부터 드나들며 연기의 꿈을 키웠던 연세대 연극 동아리에서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김수현을 보다 못한 부모님이 “웅변할래, 연기할래?” 물었고, 김수현은 연기학원을 택했다. 그렇게 연기의 첫 출발은 성격 교정을 위한 것이었다. 고1 때의 일이다. 그 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찾아간 연세대 연극 동아리를 들락거리며 대학생 형들과 어울렸다. 고교 시절 내내 동아리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연극의 재미에 빠졌다. 그는 그때 배운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카메라 앞에 선다.

“‘감정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내는 것’이라는 배움을 얻었죠. 그러다 보니 감정을 잘 기억해내려면 평소에도 모든 상황을 잘 관찰해야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죠. 늘 주위를 잘 살피려고 하고, 그때 제 자신의 감정과 표정, 몸짓을 기억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슬픈 영화를 보고 울 때,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몸의 중심을 못 잡는 때가 있구나, 울면서 가슴을 치는 행동을 하네, 나도 모르게 입을 가리는구나, 이런 자잘한 기억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죠.”

말이 나왔으니, 그는 유난히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고백을 많이 했다. 스물다섯의 사내에겐 흔치 않은 토로다. 연세대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배역을 얻어 공연하게 됐을 때도 울었다고 했고, 원작 웹툰을 보면서도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정서와 감정이 풍부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주 우는 건 아니지만, 우는 것을 좋아해요. 울고 나면 시원하잖아요? 등골을 타고 무엇인가가 ‘쎄’ 하고 흘러나가는 느낌도, 얼굴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느낌도 좋아해요.”

김수현은 고교 재학 중이던 지난 2007년 TV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의 오디션에 응해 합격함으로써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연대 더부살이’를 청산하고 2008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스타성으로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것은 스타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드림하이〉(2011년)였다. 이명에 시달리면서도 가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젊은이에게 팬들은 즉각적인 환호를 보냈다. 이른바 여성 팬들 사이에 당시 극중 인물의 이름에 빗댄 ‘송삼동앓이’가 유행했다. 이어 김수현을 스타덤의 꼭대기에 앉힌 것은 사극 〈해를 품은 달〉이었다. 김수현은 사극 속 변화된 군주의 위상을 명확히 보여줬다. 이제 드라마 속 조선의 왕은 ‘만인지상’의 지엄한 통치자가 아니라 뭇 여성에게 사랑받는 ‘만인의 연인’이었고, 낡은 신분과 제도의 사슬을 벗어난 ‘파격의 인물’이었으며, 백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패한 관료들과 대결하는 ‘개혁의 상징’이 됐다. 〈드림하이〉보다 더 넓고 더 뜨거운 반응이 잇따랐고, 언론과 팬들은 이를 ‘훤앓이’라 칭했다. 극중 김수현의 이름이 ‘이훤’이었다. 〈해를 품은 달〉의 거대한 성공은 김수현에게 또 다른 과제와 변화를 알리는 계기였다.

“지난해 드라마가 끝나고 갑작스럽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됐는데, 어깨가 무거워졌죠. 책임감도 커지고요. 부담스럽기도 했고, 겁이 많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조심해야 해’라고 되뇌었죠. 그랬더니 사람이 점점 작아지더군요. 집 밖에도 못 나가고. 그러다 보니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알고 보면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저 혼자 모자 눌러쓰고 숨어서 다니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과잉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태도를 바꿨어요. 나를 방어하려던 자세에서 지금은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가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녀요. 거리나 카페를 다니며 사진 찍혀도 신경 안 쓰고요. 다만 저와 함께 있는 친구들이 저 때문에 괜히 사진 찍히고 노출되는 것이 걱정될 뿐이죠.”

언젠가 김수현이 동네 할아버지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서 인터넷에서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은 바빠서 그렇게는 못하고, 학교 친구들과 가끔 친다”는 게 김수현의 말이다. 젊은 나이에 스타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만의 ‘성채’ 안에 갇힐 뻔한 시간을 잘 지나간 셈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홍보와 인터뷰로 바빴던 5월 말~6월 초, 김수현이 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기말고사다. 드라마와 영화 〈도둑들〉에 이어 〈은밀하게 위대하게〉까지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딱 한 학기를 휴학하고 3학기째에 임하고 있다.

“이번 학기엔 즉흥연기 수업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번 기말고사는 각자 조를 짜고 연기할 인물을 분배해서 발표하는 실기 과제예요.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 하는데 팀원들에게 미안하죠. 문득 친구들한테 전화가 와서 ‘연습해야지 너 뭐 하냐?’고 물으면 ‘나 오늘 시사회야’,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으니. 그래도 잘하고 있어요. 이번 학기에는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아요!”

이번 학기 성적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장담 끝에 걸리는 웃음이 밝다. 차기작 계획과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전날 시사회 뒤풀이에서 만났던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로 대신한다. 김수현의 영화 데뷔작이자 전작이 바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었다.

“최동훈 감독님이 뒤풀이 자리에 오셔서 ‘영화 잘 봤다’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더군요. 그래서 ‘다음 작품 뭐 준비하세요? 저도 같이해요’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어! 수현, 일단 서른 살을 넘자’고 하시더군요. 하하. 그리고 ‘앞으로 영화를 찍어도 30편 이상 찍을 테니까, 출발이라고 생각하라’며 ‘지금처럼만 잘해주면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앞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관객과 시청자에게 신뢰받는 배우가 됐으면 합니다. 김수현이 나온다면 작품 정보 없이도 관객들이 ‘그럼 한번 보자’고 할 수 있는 배우요.”
  •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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