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현악 앙상블 거문고팩토리

일렉거문고가 내뿜는 강렬한 선율, 들어보셨나요?

2012년 10월 그리스 테살로니키, 800여 명의 외국인 청중은 동아시아에서 날아온 거문고와 가야금의 신비로운 선율에 숨을 죽였다. 3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월드뮤직 박람회 ‘WOMEX’에 아시아 국적의 팀으로는 유일하게 출전한 ‘거문고팩토리’의 쇼케이스 현장이었다. 이들은 2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WOMEX’ 무대에 자신들의 음악을 올려놓았다. 젊은 청중은 난생처음 보는 현악기가 익숙한 전자음을 내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유미영, 정인령, 김선아, 이정석(왼쪽부터).
“저희가 개량해서 만든 ‘일렉거문고’의 전자음이 연주되자 외국인 관객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외국에는 어릴 때부터 일렉트로닉 기타 같은 전자악기 소리를 듣고 자란 분이 많은데, 처음 보는 동양의 악기가 자신들의 귀에 익숙한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했나 봐요.”

2006년 결성된 거문고팩토리는 거문고 연주자 세 명(유미영・이정석・정인령)과 가야금 연주자 한 명(김선아)으로 이루어진 국악 현악기 앙상블 그룹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시절 만난 이들은 졸업 후에도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를 맡고 있는 유미영씨를 비롯해 정인령・김선아씨는 부모님의 권유로 국악을 시작했고, 이정석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전공하다가 싫증을 느끼던 중 우연히 거문고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거문고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쉬운 국악’ ‘행복하고 즐거운 음악’을 추구하는 그들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악기 개량에도 직접 나섰다. 기타처럼 어깨에 둘러메고 연주할 수 있는 거문고인 담현금(擔玄琴)을 비롯해 활로 켜는 첼로거문고, 감각적인 음색을 가진 실로폰거문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저희는 처음부터 소리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고민 끝에 ‘이런 소리를 내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악기 장인들을 찾아갔고, 수많은 실험을 해가면서 악기를 고쳤습니다. 전자 장치를 장착하기도 했고, 악기를 3분의 2 길이로 잘라버리기도 했죠. 악기를 함부로 다룬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많은 분이 응원하며 도움을 주셨습니다.”


가야금 멤버의 영입과 악기의 개량으로 그들은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소리의 종류가 다양해지자 이들의 음악은 풍성해졌다. 실제로 일렉거문고 소리가 가미된 〈Fly to the sky〉 같은 곡에는 기존 국악에선 전혀 느낄 수 없던 ‘록 스피릿’이 충만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같이 서정적 노랫말을 입힌 감성 충만한 곡은 비 오는 날 카페 창가에 앉아 듣기에 제격이다. 또 탱고 장르가 접목된 〈거문고 & 탱고〉에서는 거문고 소리로 연주되는 탱고의 강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컨템포러리 퓨전 국악’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통 음악교육을 철저히 받아온 멤버들이기 때문에 퓨전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 보면 멤버 모두 어느새 정통 국악 연주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저희는 한정된 종류의 음악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합니다. 2012년에는 퓨전 분야 작업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정통을 좇는 작업을 주로 할 예정입니다. 멤버 모두 정통 국악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고, 음반에 정통 국악곡들을 담는 작업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1월 중순에는 정통 곡만 모은 유미영씨의 거문고 솔로 앨범도 나올 예정입니다.”

거문고팩토리는 현재 공연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덴마크・폴란드・그리스・콜롬비아 등 세계 각국을 투어하며 우리 음악을 연주했다. 해외에서의 입지가 이렇게나 단단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이들은 “아직 시작 단계”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희 말고도 많은 팀이 국악의 세계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 팀이 지금 많은 나라를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시기예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청중이 저희 음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무래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추구하는 저희 스타일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특수한 한국의 전통악기로 자꾸 듣고 싶어지는 보편적인 음악을 만드는 거죠. ‘전통’만 고집하거나 ‘개량’만 고집했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브라질 공연에서 이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전자거문고가 가미된 퓨전 곡을 연주할 때에는 열광적으로 호응하던 관객들이 우리의 전통 선율인 ‘산조’를 연주하자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보편적이고 익숙한 음악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전통 선율로 감동까지 전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배우이자 힙합가수인 양동근씨와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고, 얼마 전 KBS 〈불후의 명곡〉에서는 차지연씨와 함께 판소리 무대를 펼쳤다. 비교적 크기도 작고 어깨에 멜 수도 있는 개량 악기를 쓰는 만큼, 그들의 무대는 기존 국악 공연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의 콜라보레이션(합동 작업)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브라질에 있을 때 라틴음악을 하는 현지 아티스트와의 협연이 기억에 많이 남아서 지금도 라틴계열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어요. 대중음악을 하는 분들과의 협연도 신나는 일이죠. 양동근씨와의 합동 공연도 무척 즐거웠고요. 빅뱅의 권지용씨나 ‘강남스타일’의 싸이씨와도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거문고팩토리의 2013년 스케줄은 빽빽하다. 상반기에는 3년 만에 정규 음반 발매를 위한 작업을 할 예정이고, 하반기에는 다시 유럽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국내외에서 ‘국악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들의 최종 목표가 궁금했다.

“별거 없어요. 지금 저희 멤버들이 모두 서른 즈음인데, 더 나이가 들고 늙어서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웃음)”

‘더욱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음악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겠다’ 같이, 사명감을 담은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지만, 결국 이들의 대답이 정답이었다. 이들이 언제까지나 즐겁고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그들의 음악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사진 : 김선아
  • 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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