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김동유

구도적인 반복 행위로 탄생하는 이중그림

김동유
1965년 공주 출생.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1989년 데뷔 이래 갤러리현대, 스티드 크라우틀러(뉴욕), 성곡미술관, 이화익갤러리, 브라운베렌스갤러리(뮌헨) 등에서 17회 개인전을 가졌다. 포스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내셔널뮤지움(아일랜드),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런던), 로열아카데미(에든버러), 얼스터뮤지움(아일랜드), 웁살라미술관(스톡홀름), KOREAN EYE(런던/싱가포르), 갤러리현대, 이화익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갤러리사비나, 성곡미술관의 중요한 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성곡미술관, 삼성미술관, 뉴올리언스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인물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림미술관, 금호미술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목원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중 얼굴〉 그림으로 김동유는 분명 스타작가가 되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옥션에서 그의 작품 거래 동향은 늘 미술면의 주요 기사였다.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마를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당시 추정가의 25배인 3억2000여만원에 낙찰되면서 지방의 무명작가가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다.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2012년에는 런던에서 있었던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 전시회’ 에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아 전시에 참여했다. 그러나 김동유의 경우는 시장의 떠들썩한 반응과 연이은 화젯거리 때문에 사람의 진실이 가려진 경우이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상황이 진정되어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시간을 기다렸다. 2012년 11월 30일 까지 이어진 갤러리현대(강남)에서의 그의 17번째 개인전이 끝날 무렵 비로소 그를 만났다. 스타작가라고 불리는 기분을 먼저 물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계속 관심을 받게 되고 모든 것이 짐스러웠어요. 외형적으로 무언가는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속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의 저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의 소극적인 성향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나친 유명세가 하나도 반갑지 않단다. 말이 없던 소년 김동유가 유일하게 좋아한 일은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어렸을 때 꿈이 이루어져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그 길은 쉽지 않았다. 4년 장학금을 받고 목원대에 입학했지만, 미대 입학이 전부는 아니었다. 2006년 그날이 올 때까지 마흔 살의 가장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의 책임도 미루었다. 축사를 개조한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면서 오직 그림에만 매달리던 힘든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 아무도 하지 않았을 때 끝까지 밀고 가는 힘, 내적인 힘”을 강조하는 그의 말에 강한 힘이 실리는 이유는 어려운 시간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Audrey Hepburn(Audrey Hepburn)_ Oil on Canvas, 227.3×181.8cm, 2008
이번 17번째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도 그의 저력과 뚝심을 보여주었다. 멀리서 보면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성모상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보다 분명한 윤곽을 드러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갈라진 자국들이다. 작은 단위들이 모여서 큰 화면을 이루는 이중화를 다른 차원에 적용한 그림이다.

“제 작품은 원래 주변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키치적인 요소가 많죠. 명화와 관련해서도 주제 같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크랙 같은 주변적인 것을 끌어들인 겁니다. 전에 그린 얼굴 시리즈도 특정인이기도 하지만 미술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던 주변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해서 그린 거죠.”

아이러니컬하게 그의 그림 덕분에 그 이전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이미지들은 유명해졌고, 유명한 이미지들은 더 유명해졌다. 그의 대표작인〈이중 얼굴〉 시리즈에는 마를린 먼로, 케네디, 마오쩌둥, 박정희 대통령, 김일성,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다이애너비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 얼굴들을 들여다보면, 케네디 얼굴은 마를린 먼로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고, 다이애너비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다. 두 인물간의 관계를 연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케네디와 먼로의 염문 같은 것을 연관시키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부분보다는 형태의 독특성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케네디의 형태와 먼로의 형태가 합해지면 어떻게 되겠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Audrey Hepburn(Gregory Peck)_ Oil on Canvas, 227.3×181.8cm, 2009
그의 전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중화’다. 멀리서 보는 이미지와 가까이서 보는 이미지가 다른 두 개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화면이라는 뜻이다. 84학번인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많은 동기들은 회화를 접고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입체・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내 성향을 남에게 맞추는 거죠. 남에게 맞추는 것보다 내가 가진 성향을 끌어내는 게 더 중요해요. 흥미가 없는 것은 요만큼도 그릴 수 없어요. 흥미로운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회화가 평면이지만 평면 안에서 입체, 조각, 움직임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평면 작품이라도 공간 안에 놓이고 거리가 생기고, 멀리서 보았을 때와 가까이서 보는 이미지가 다른, 시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작품들을 그리게 되었죠. 일종의 스테레오적인 회화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각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하죠.”

Grace Kelly(Clark Gable)_ Oil on Canvas, 194×155cm, 2010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중화’다. 아름다운 꽃으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꽃과 여인〉(1999)이라는 작품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중화는 그의 오랜 예술적 탐구의 첫 번째 종착점이자 새로운 작품을 향한 시발점이 되었다. 같은 해에 〈얼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등장한다. 마를린 먼로의 큰 이미지에 박정희의 작은 이미지가 함께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그릴 때는 4개월이 꼬박 걸렸다. 이번 신작인 〈피에타(180×180cm)〉를 완성하는 데에는 꼬박 1년이 넘는 시간이 들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의 고단함 때문에 전시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심한 어깨 통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인내력을 요하는 작업, 그리고 가까이 들여다보는 화면에서 꿈틀거리는 손 맛 때문에 성곡미술관 박천남 학예실장은 그의 작품에 관해서 “지독한 그리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Flower and Woman_ Acrylic on canvas, 162.2×130.3cm, 2000
그릴 때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 무수히 비슷한 흔적들을 화면에 쌓아가는 김동유의 작업방식은 김홍주・박서보 등 여러 한국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구도적인 반복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말에 대해서 그는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반복을 의도했다기보다는 흰개미가 몸에 밴 습성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공통적인 한국인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옛날에 줄을 치고 일일이 손으로 모내기를 하던 기억, 낫으로 벼를 일일이 베는 일, 뜨개질이나 돗자리를 짜는 일 같은 일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죠. 그림 속에 또 그림이 들어 있는 저의 이중화는 음식문화와 비교해보면 발효음식과 통합니다. 이미 발효된 젓갈로 다시 김치라는 발효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죠. 그런 의미에서 제 작업 방식은 한국적이죠.”

Pieta_ Oil on Canvas, 180×180cm, 2011
고도(古都) 공주 출신답게 그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초등학생 김동유는 산들에 널려 있는 깨진 기왓장을 주우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들은 쓸모없는 것들을 쌓아놓는다고 역정을 내셨지만, 혼자 소중하게 보관하곤 했었다. 그의 사소한 수집벽은 지금의 작품들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때는 기왓장이지만 지금은 이미지다. 우표, 성냥갑의 이미지, 유명인의 얼굴, 잘 알려진 명화 등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언제든지 그의 그림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그린 이미지가 서양 유명인들이고 서양명화이기 때문에 더러 오해를 받는다고도 한다.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치가 한국음식의 상징이지만,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금의 김치가 만들어진 것이 얼마나 되었겠어요? 화가 이동기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어쩌면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섞여 있는 부대찌개야말로 지금 시대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일 수도 있지요.”

반도국가로서 문화적인 혼성은 한국문화에서의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백남준이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이해했다면, 김동유가 이해한 한민족은 농경민족이다. 그리고 어떤 규정이건 거부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김동유가 한때의 인기작가가 아니라 한국의 대표작가로 계속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심도 있는 이해 덕분일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