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65) 이선영 〈풋것, 아이 혹은 시인>

아이, 낡은 세계를 새롭게 하는 이 놀라운 존재!

‘왜 마음을 깨뜨리려고 해!’

불쑥,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 아이의 말에 내 말이 막힌다

아직 일상어와 관용어에 눈뜨지 못한, 아니

말의 오래된 질서를 겁내지 않는

너의 무지, 너의 무감각, 너의 저돌, 너의 파격



여기 아이와 시인이 있다. 둘은 엄마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엮여 한집에 산다. “한순간, 엄마라고밖에 나를 알지 못하는/자식이라는 그 몽매한 이름을 가진/너와의 견딜 수 없는 동거!”(〈나, 너 때문에!〉) 아이는 풋것이고, 풋것인 아이는 시인의 아이다. 시인은 엄마고, 아이는 시인의 어린 자식이다. 이 아이가 안개를 보며 “안개다!”라고 했던 바로 그 아이일까? 시인은 그 아이를 두고 “알아듣겠니, 너는 태생이 안개란다/미지로부터 와서 등불나방처럼 미지를 휘저으며 미지를 향해 나아간다”(〈안개〉)고 쓴다. 품 안의 어린 자식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미지의 존재다. 어느 날 겨우 말문을 연 이 아이의 입술에서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왜 마음을 깨뜨리려고 해!’ 시인은 아이의 말에 경이감을 느꼈을 게 틀림없다. 물론 이 말은 어른들의 일상어와 관용어에는 없는 말이다. 아이는 말의 용법에 대해 학습이나 경험이 없기에 “말의 오래된 질서”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아이가 불쑥, 내뱉은 그 말에 엄마이자 시인인 화자는 말문이 막힌다. 말문이 막힌 것은 시인이 그토록 암중모색하는 시를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본질에서 시인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시인으로서의 천부성을 잃는다. 부모의 품을 떠날 때쯤 아이에게는 더 이상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의 가슴에 살던 시인은 죽은 것이다.

시인은 몰입하는 존재다. 어디 시인뿐인가!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는 “나는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그 동물이 됐다”고 말한다. 옥수수를 연구한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 역시 “옥수수를 연구할 때 나는 그것들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그 체계의 일부로 존재했다. 나는 염색체 내부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짐승의 시를 쓸 때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고, 옥수수의 시를 쓸 때는 옥수수의 염색체 내부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시는 사물에 대한 촌철살인의 은유, 한 줄의 명쾌한 직관, 명징한 감각의 현재를 보여준다. 존 키츠(1795~1821)는 좋은 시는 “태양처럼 자연스럽게 와서 비추다 침잠하며 장엄한 황혼의 호사 속에 독자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독자는 그 호사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 호사를 거저 누리는 독자 중에는 시가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미 쓰인 시는 찬란하지만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 그 지난함은 “골방에 자신의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한 짐 부려놓아야만” 비로소 “살갗을 뚫고 돋아” 나온다. 모든 시는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 “검붉은 시”다. 그러므로 시인이란 한 줄의 시를 얻기 위해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시의 봉창을 크윽큭, 할퀴어대는” 사람이다. 시인은 모두 도약에 실패한 호랑이들이다. 그들은 날마다 포효하며 제 존재의 벽을 할퀴어댄다. 그 포효는 좋은 시를 쓰려는 갈망에서가 아니라 나쁜 시밖에 쓸 줄 모르는 자신을 향한 저주일 것이다.

“저이는 누구일까/봄날에도 창을 닫아걸고 방안에만 들어앉아/한구석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이런 날은 창을 열어야 쮸쮸 찌이찌이 동박새 시가/꽃 찾아 날아들어 온다는데,/창을 벽으로 닫고 제 몸을 뒤져서 시를 꺼내려고 하는 거역의, 아/새를 기다릴 줄 모르는, 동백/봄 장님이 되어야만,/사각의 골방에 자신의 거추장스런 육신을 한 짐 부려 놓아야만/열꽃 같고 두드러기 같고 종기 같은/검붉은 시가 살갗을 뚫고 돋아 나오는 이,/어둠의 섬뜩한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시의 봉창을 크윽큭, 할퀴어대는 저이!”(〈아, 이 청승맞은〉)

나이가 들면서 대개는 돈에 쪼들리고 일에 찌든다. 시인의 운명을 사는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 역시 “수십억 광년 무주고혼의 외로움을 1인무(舞)하는”(〈낱별〉) 태양 아래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범백사 속에서 기진하여 허우적인다. 시인은 그런 자신을 가리켜 “40여 년 상하지 말하고 데우고 지피고 또 얼려 온/이젠 맛깔스러울 것도 없어/그저 부엌만 지키고 있는 이 맹근한 음식”(〈쓰레기 버리러 간다〉)이라고 말한다. 시인도 던적스러운 일상에서는 처치곤란한 몸뚱이를 가진 사람이고, 날마다 쓰레기 버리러 가는 사람이다. 그 앞에 나타난 아이는 이 낡고 늙어가는 것들의 세상에서 날마다 세상을 젊게 만드는 풋것이다. 이 풋것에겐 분노나 우울도 없고, 예금잔고나 사유재산도 없다. 하지만 신성한 우연 그 자체인 풋것은 우주를 가졌다. 니체는 이 풋것을 두고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이, 늘 새롭게 시작하는 존재!

그렇다, 풋것의 입에서 뱉어져 나온 말은 시다! 아니다, 시란 항상 풋것의 말이었다! 풋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다. 풋것의 삶은 오로지 현재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如如] 속에서 제 존재를 작열한다. 풋것이란 말랑말랑한 존재의 생동 그 자체다. 풋것은 파릇하고 그 파릇함으로 약동(躍動)한다. 풋것은 자아와 우주를 분별하는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자아와 우주를 무분별한 가운데 감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풋것들이 하는 상상이나 직감, 언어사용에서 인습이나 관습에서 자유롭다. 풋것들은 에두르는 법 없이 사물의 핵심으로 직진한다. 풋것은 무지와 무감각으로, 저돌과 파격으로 낡은 세계를 새롭게 만들고 눌리고 찌든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선영(1964~)은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불운이란 게 뭔지 모른 채 자란 소녀가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생면부지의 한 출판사 대표에게 일하고 싶다는 장문의 편지를 쓴다. 그 편지의 수신인이 바로 나였다. 1986년이었던가. 그 무렵의 일이다. 그의 첫인상은 일탈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듯했다. 존재 자체로 ‘나는 평범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도무지 절망과 불운, 혹은 퇴폐나 광기 따위는 모른 채 평범의 젖을 먹고 자란 존재가 평범과 지루함에 대한 절망적인 불응의 장르인 시의 신전에 자신을 바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의 평범은 숨어 있는 비범의 가장(假裝)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문을 열기 전까지는 동이 트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어쨌든 그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고, 몇 년 뒤에 시 전문지 <현대시학>(1990년)에 시가 추천되어 시인이 되었다. 그 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시집 여섯 권을 펴낸 중견시인 이선영, 그는 여전히 평범의 삶을 불태우면서도 시의 화염(火焰) 속에 꿋꿋하게 서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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