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송명진

어떤 트렌드도 따르지 않고, 항상 나만의 도전’을 준비하죠

송명진
1973년 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1년부터 현재까지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 갤러리 아트사이드(북경), Ctrl 갤러리(휴스턴), 인갤러리 등에서 1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N.45 포항시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토탈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PKM Gallery북경,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의전당 등의 여러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5년 미술세계대상전 특선, 1999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서울현대미술제에서 특선, 2004년 송은미술대상전 미술상(우수상), 2005년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선정, 2008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선정, 2010년 The Sam and Adele Golden Foundation Award(USA) 등의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 수 물리다.”

화가 송명진이 10번째 개인전을 맞이하여 직접 쓴 글의 제목이다.

“이때까지 열심히 그리던 것을 한 걸음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작업을 하려고요. 나다운 것을 좀 더 수면 위로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11월 21일부터 삼청동의 인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준비로 그녀는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색의 이름을 언급하기 어려운 미묘한 색의 작품이어서 도록의 색깔 교정 보는 일이 유난히 까다로웠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전시는 2009년 성곡미술관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개인전이라서 반가운 마음이 더욱 컸다. 그사이 베이징 아트사이드 갤러리 전시와 휴스턴의 Ctrl 갤러리 전시, 뉴욕・파리 등지에서의 다양한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청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해외 관람객의 반응은 어땠을까.

“외국 사람들은 자기네들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 해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제 작업은 어디서나 튀더라고요. 한국에서도 트렌드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거기서도 트렌드는 아니었지요. 트렌드를 따라가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제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죠.”

그녀의 그림이 ‘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에게 ‘초록작가’라는 별명을 가져다 준 강렬한 초록색 화면이다. “사실 색을 쓰고 싶지 않아서 한 가지 색을 주야장천 쓴 것이 초록색”이었다. 그러나 초록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워낙 제가 식물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림의 소재를 주변에서 찾는 편이죠. 주변의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이 작품의 시작이 아닐까 해요. 집 주변에 불광천이 있어요. 그곳에 다양한 식물이 있어요. 시인 이상은 식물이 초록색 일색인 것을 보고 ‘조물주의 몰취미’라는 표현을 했지만, 저는 초록에만 눈이 가요.”

풍경의장
그녀는 10년 넘게 작업실 근처의 불광천를 산책하며 자연을 관찰해왔다. 식물들이 온순할 것 같지만 한여름에 빨리 생장하는 것을 보면 동물처럼 그악스럽게 느껴졌단다.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초록의 다양한 뉘앙스를 살리지 않고 ‘Opaque oxide of chromium’이라는 이름의 밀도 높은 초록색 물감을 골랐다. 자연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초록색인데, 이 초록은 발라놓으면 가장 인공적인 느낌이 나는 역설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2005년도 작품들은 그냥 이 물감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송명진은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다니던 1995년 미술세계대상전에서 특선을 했고, 199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서울현대미술제에서 특선을 했다. 2004년에는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2005년 금호미술관의 ‘금호 영 아티스트’로 선정되었고, 2008년에는 성곡미술관의 ‘내일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두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주요 담론과 연관이 되면서 송명진이라는 개성 있는 화가의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켰다.

a foolish step 4
캔버스의 평면성에 대한 의식이 개입되면서 그녀가 그린 불광천의 단조로운 풍경은 흥미진진한 회화가 되었다. 196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함께 진행된 회화의 평면성 논의를 그녀는 재치 있게 표현했다. 회화의 평면성론은 회화의 본질을 ‘이야기의 전달’이라고 보는 견해에 반대해서 평평한 캔버스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비입체적인 회화를 선호하는 이론이었다. 일견 어려워 보이는 이 전문가용 주장을 그녀는 쉽게 표현했다. 그녀가 그린 풀은 풀이지만 머리카락 같기도 하고, 때로는 캔버스를 긁어내서 결이 일어선 것처럼 보인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이러한 회화에 대한 사유는 그녀의 작품에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그녀는 파로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고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당시, 근처에 파밭이 많이 있었다. 그녀가 본 파밭은 마치 종이처럼 펀칭 자국이 있고, 잘린 파의 붉은색은 선연한 핏자국을 떠올리게 한다. 식물적인 요소와 동물적인 요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들어간 장면이다. 정원수에 핀 화려한 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피딱지 같은 것이다.

“자연을 가져와서 곁에 두는 방식의 정원은 인간 위주의 생각인 것 같아요. 유년기의 인류는 낫으로 벼를 베면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그만큼 자연과 교감했다는 말인데, 요즘은 자연을 자연으로 보지 않고 사물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Opaque oxide of chromium 2
2007년, 검지와 중지 두 개의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손가락 인간’이라는 어눌한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그림 속에 이야기가 생겼다. 어눌한 손가락 인간들은 자기들처럼 어눌한 풍경을 만들기도 하고, 어리석은 상황을 자초하기도 한다. 〈A Foolish Step 4〉에서 낙하산을 끌고 다니는 손가락 인간은 자기가 애써 만든 포스트잇 산을 올라가면서 다시 망쳐버린다. 만들고 무화시키는 시지프스 신화를 반복하는 중이다. 잔뜩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그린 이유는 그것이 상단의 평면과 하단의 입체적인 곡선이 함께 있는 사물로서 평면 위에 3차원의 입체공간을 그리려고 하는 회화와 닮았다고 느꼈단다. 그러니까 저 낙하산을 끌고 다니는 손가락 인간은 예술이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무수히 행하고 실천하는 예술가의 노고를 떠올리게 한다. 송명진의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이해와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두 개의 요소가 통합되면서 한계를 짓는 이론적 틀을 스스로 넘어서기 시작한다. 회화에 관한 어떤 이론보다 예술가의 실천은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것이고, 비평가의 입보다 화가의 손이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2001년 첫 개인전 이후 11년의 시간이 지난 10번째 개인전에서 그녀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초록색도 손가락 인간도 화면에서 사라졌다. 화면의 이미지들은 전체적으로 단순해졌으며, 마치 “흙의 색 또는 몸의 살색과 같이 도처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색으로, 정색하지 않으면 미처 인식되지 못하는 그런 색감들”로 그린 그림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는 그림에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하지 않았단다.

“휴지를 만질 때의 느낌 같은, 촉각적으로 사소한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작품들이지요. 일상의 흔한 것도 정색하고 낯설게 하면서 예술로 들이밀면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Objects 2
이번 전시에서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각적으로 경험되는 ‘촉각성’이다. 일상에서 경험한 촉각적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어떤 사물에서 경험한 촉각적인 기억을 그림에서 발견하면 과거의 경험이 유추되리라는 생각이다. 신작 〈Objects 2〉의 원기둥들은 액체로 채워져 있는데, 갖가지 방식으로 밖으로 흘러나와 결국은 구멍으로 다시 들어간다. 송명진이 이번에 그린 사물들은 모두 원점 회귀적이거나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위태로운 사물들이다. 어디서 본 듯하지만, 뭐라고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은 객관적인 어떤 것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 그녀가 자신의 지금까지의 작업 전체에 대해서, 그리고 회화 전체에 대한 사유를 풀어내는 과정처럼 보인다. 온갖 미디어가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녀는 화가임을 고집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인 단조로운 삶, 그러나 그 삶에는 늘 커다란 도전이 숨어 있다.

“회화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겠지요. 소설보다 시가 어려운 것처럼 회화도 좁은 영역에서 제한된 언어로 말해야 하지만 그것을 돌파해냈을 때 그 성취감이 아주 큽니다.”

아마도 우리는 겨울이 온 불광천에서 다음 그림에 대한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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