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정 영화음악감독

영화에 음악적 색깔을 입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미도의 테마: The Last Waltz’는 지금도 사랑받는 영화음악이다. 이 음악을 만든 영화음악감독 심현정. 그는 〈올드보이〉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받았는데, <아저씨>로 또다시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등 다큐멘터리 음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영화 <늑대소년> 음악작업을 끝낸 그를 홍대 근처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늑대소년>은 밴쿠버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T. S. 엘리엇은 “예술이라는 형태로 감정을 표현하려면 ‘객관적 상관물’, 어떤 특별한 정서를 자아낼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들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음악은 관객에게 특별한 정서를 끌어내며 영화에 대한 공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장치다. 심현정 영화음악감독(41・http://shimhyunjung.com)은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을 끝낸 후 ‘심현정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얀 얼음을 배경으로 흐르는 오케스트라와 민속악기의 소리. 현지에서 촬영해온 필름에는 거의 소리가 없었는데, 여기에 소리를 입히며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북극은 아무 소리도 없이 온통 정적이라고 합니다. 카메라에 담아온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이 감동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입힐까가 제게 주어진 과제였지요. 눈으로 보는 이미지를 소리로 풀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짧은 시간에 끝내야 했지만 정말 행복하게 작업했습니다.”

<북극의 눈물>은 유럽 텔레비전에서 아직 방영하고 있다. 20%가 넘는 평균 시청률로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새로 쓴 〈아마존의 눈물〉 극장판과 MBC LIFE의 화제작 〈페이퍼로드〉도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올드보이> <아저씨> <밀애> 〈H> <잘돼가? 무엇이든> <누구나 비밀은 있다> <사과> <조용한 세상> <황제펭귄-펭이와 솜이> <미안해, 고마워> <늑대소년> 등 여러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고, 2004년(<올드보이>)과 2010년(<아저씨>)에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영상음악과 작곡을 공부한 그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감독으로 우리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올드보이〉의 여주인공 ‘미도’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개미 테마’는 클라리넷으로, 장도리 하나 들고 일당백으로 맞서는 대수의 ‘장도리 테마’는 역동적인 트럼펫을 사용하는 등 악기의 음색과 특질을 적절히 활용한 음악이 돋보인다. 2008년 독일 베를린에서 〈올드보이〉 상영회가 열린 후 토크쇼가 이어 열렸다.

“이 행사를 기획한 기타리스트 마누엘 괴트싱(www.manuelgoettsching.com)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전자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의 기수였던 전설적인 그룹 ‘애쉬 라 팀벨’의 리더예요. 그분이 저에게 ‘네 음악에 바흐가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아저씨>에서는 액션 장면에서 경쾌함과 속도감을 강조했다.

“<올드보이>는 작곡가로 출발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IMF 시절 힘들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처음 겪는 한국 영화판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였어요. 심정적으로 저는 ‘대수’와 매우 가까웠고,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느꼈어요.”

영화에 너무 몰입했던지 작업을 마치고 나서 많이 우울했다. 마침 숙모네 집에 있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입양해 키우면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때 그는 ‘작곡 전공, 유학파, 여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한국 영화판이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던 때라 그의 존재는 특이했다.

현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에서 영화음악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스피리치필름페스티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다섯 살 때부터 오빠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가 음악과 사랑에 빠진 것은 중학교 때였다. 집안 식구가 모두 다니던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자로 연주하면서였다.

“오르간을 전공하고 싶을 정도였죠. 바로크 음악과 바흐 음악에 빠졌고요. 저녁 무렵 작은 불빛이 비치는 성당에 저 혼자 있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약사였던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딸을 데리고 ‘얘가 음악을 해도 되겠느냐?’고 전문가에게 테스트하러 갔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펑펑 울었죠. 그래도 포기가 안 되어 고등학교 내내 피아노를 치면서 위안을 얻었어요. 그때 큰오빠 친구가 음대 작곡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저보고 ‘청음’ 시창을 해보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절대 음감인 것 같다면서 ‘작곡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저는 그때 ‘여자가 작곡가가 되어서 뭐해요?’라고 되물었죠.”

여성 작곡가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그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프랑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음악작업을 하고 있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이 녹아들어간 영화예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베트남을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 하노이・후에 등지를 여행했습니다. 강과 호수가 인상적이었어요.”

그의 영화음악을 들은 사람 중에는 “작곡도 직접 하셨다고요?”라며 놀라는 사람이 많다. 영화음악을 ‘선곡’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예술계가 ‘창의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대학 4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만난 독일 음대생이 “작곡 시간에 셰익스피어 연극도 한다”는 말을 듣고 ‘창의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곡은 그 사람의 경험, 삶, 철학, 성격이 드러나는 창작입니다. 자신의 음악적 언어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지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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