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이형구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육체를 탐구하다

이형구
1969년 포항 출생.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다. 성곡미술관(2004), 아라리오갤러리(2006, 2008), 스위스 바젤 자연사박물관(2008) 개인전 및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2007)에서 한국관 최초로 단독전시를 가졌다. Pinacoteca Agnelli(토리노), Welcome Collection(런던), CU ART MUSEUM(콜로라도), 갤러리 스케이프(서울), Institut Valencia d'Art Modern(발렌시아), La Maison Rouge(파리), Haunch of Venison(런던), 로열 아카데미(런던), 에스파스루이비통(파리), 중국 국립미술관(베이징), Fondazione Sandretto Rebaudengo(토리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의 주요 단체전과 미국・영국・프랑스・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전시에 참가했으며, 2009년 두산레지던시 1기 작가로 참여했다. 2007년 제39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미술부문’을 수상했으며, 2002년 뉴욕에서 조안미첼상을 수상했다.
2008년 5월 30일 스위스 바젤 자연사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 세계적인 익룡의 권위자가 지금까지 학계에서 발표된 적이 없는 신종 공룡의 뼈가 발견되었음을 발표한다. 모두 다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권위자를 난감하게 만든 이 종은 바로 조각가 이형구의 작품 카니스 라트란스 아니마투스(Canis Latrans Animatus)였다. 즉, 만화 주인공 도널드 덕의 뼈였던 것이다. 좌중에는 웃음이 터졌고, 작가 이형구 전시의 오프닝 파티는 즐겁게 진행되었다. 자연사 박물관의 진짜 동물의 뼈와 함께 이형구 작품의 상상의 뼈들이 함께 전시된 유쾌한 현장이었다. 여기에 출품되었던 이형구의 아니마투스는 우리가 잘 아는 벅스 버니, 톰과 제리, 도널드 덕, 로드러너, 코요테(Coyote) 같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의 골격을 역추적해서 만든 작품들이다. 평상시 아무렇지도 않게 만화를 보지만, 해부학적으로 보면 도널드 덕은 머리가 지나치게 커서 직립보행이 가능할까 싶다. 이빨과 눈이 지나치게 큰 벅스 버니 등 귀엽고 사랑스러운 만화 캐릭터들 대부분은 해부학적으로는 어불성설이긴 마찬가지다. 다소 코믹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들로 이형구는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끌었으며, 200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로 참여했었다.

10월 11일부터 11월 23일까지 한남동 스케이프 갤러리에서 7번째 개인전을 여는 이형구는 추석연휴 기간에도 개인전 준비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Face Trace〉. 과연 이형구다운 전시 주제고, 신작에 대한 기대가 큰 전시다. 말 그대로 얼굴이 주제다.

“이번 작품들은 실제 제 얼굴을 캐스팅해서 만든 것들입니다. 영화배우, 뮤지션 등 관심 있는 인물들의 작업을 하기 이전에 제 얼굴을 먼저 시험용으로 해본 것이죠.”

Face Trace_ 2012, drawing
본을 뜬 작가 자신의 얼굴을 실제 해골을 캐스팅한 것 위에 맞추어서 줄이고 늘여서 완성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백인 여성의 골격 위에 이형구의 얼굴이, 때로는 흑인 남성의 골격 위에 이형구의 얼굴이 레진으로 만들어져 합성된다. 거기에 귀나 눈썹 등은 표정과 골상에 따라 관상학 책에서 본 여러 가지 유형을 적용한다. 세상에 한 번도 없었던 실험적인 얼굴들이 이형구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1995년부터 관상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작년 추석 무렵 고향에 내려가서 관상학과 성형학에 대한 공부를 총정리했습니다. 그리고 1년간 작업실에서 처박혀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람의 얼굴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심의 시작은 타고난 운명, 팔자 그런 것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생긴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면 좀 억울하지 않겠어요? 저는 관상학을 믿지 않지는 않아요. 운명은 자신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Face Trace 007


Face Trace 001


Face Trace 012, 34.5×20.6×22.9cm resin, artificial teeth, stainless steel wire, acrylic, aluminium plate, bolt 2012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성형 제1위 국가이고, 성형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외모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외모와 더불어 자신의 운명도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관상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이 교차하는 장소가 바로 우리의 얼굴이다. 모교인 홍대 근처의 한 건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조각가의 작업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다. 차라리 과학실험실이라 할 만하다. 갖가지 종류의 귀의 샘플, 코의 샘플, 치아의 샘플들이 있다. 얼굴을 이렇게 나누고 재조립하면서 그는 “과학적 접근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이해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넘버링이 있다. 모델 넘버로 시작하는데, 예컨대 01은 이형구 자신이고, 07은 영화배우 박해일의 얼굴이다. 인종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아니라 개인을 기준으로 하는 예술적인 분류법이다. 이 얼굴들은 다른 인종과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의 골격을 만나면서 다양하게 변해간다. 관상학 책을 참조한다지만 이형구는 관상학을 가장 비관상학적이고 반관상학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같지 않은 사람의 얼굴은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면서 무한한 개별성의 세계, 새로운 창조와 실험의 세계가 열린다.


인간의 얼굴, 인간의 신체는 오래전부터 그가 몰두해온 과제다. 미국 유학 시절에 시작한 작업 〈디 오브젝추얼스(The objectuals)〉 시리즈도 즉각적으로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개념에서 시작했다. 용어 자체에 얼굴을 신성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변화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는 다양한 렌즈가 부착된 투명한 헬멧을 직접 착용하여 눈・코・입을 부분별로 확장, 혹은 축소시켜 변형시킨 후 사진으로 찍었다. 이 작업들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외부세계와의 단절감과 어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기구들은 보여지는 신체를 확대, 왜곡시킬 뿐 본질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이런 작품은 가장 비본질적인 외모가 인종에 대한 편견 등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인간의 얼굴과 육체는 숭고한 것이었다. 바로 영혼의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작가들에게 몸은 그저 실존의 공간을 표현하는 몸일 뿐이다. 인간 육체의 한정성에 대해 그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을 했다. 〈Eye Trace〉 역시 이런 흥미로운 실험 중 하나다. 예일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 거울 두 개를 장착하고 2주간 뒤로 걸어 다니는 실험도 해보았다. 양쪽에 눈이 달린 물고기처럼 걸어 다니기도 했다. 두 눈으로 한꺼번에 보지 못해 한쪽 눈으로 보고 움직이고, 다음에 또 다른 눈으로 보고 움직이고를 하니 몸의 움직임이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듯이 유선형을 그렸다. 이런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그는 소중한 깨달음들을 얻는다.

Mirror Canopy_ 2010, Convex mirrors, chair, aluminium, leather straps, swiss army backpack part, pulley, clear plastic hose, vodka, clamps, rivets, screws, bolts, nuts, stainless steel wires, 158×150×100cm
“기어가는 곤충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겹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내가 보는 이것이 맞는 형태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내 눈을,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의심하고 반성해야겠죠. 시선이 문제가 된다면 타인의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시점이 달라서 싸우는 것 아닌가요? 상대방의 시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신의 육체의 한계에 갇혀 있다.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덮어놓고 찬양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육체적 조건의 규정성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사소하지만 진실된 휴머니즘이다. 그에게 궁극적인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요. 동양에서는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죠. 내 몸도 모르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도달하고 싶은 인간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그의 작업 방법은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그는 만족할 때까지 반복해서 손으로 만들어보는 소위 ‘노가다형’ 작업을 선호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들이 손으로 만들어지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죠.”

디지털 세계의 간접성을 비웃듯 조각가 이형구는 손으로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더듬어내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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