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연 ‘닻프레스’ 대표

수제 책공방 만든 사진작가

예술은 우리에게 친절할까. 자연의 빛이 우리에게 조건을 내걸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듯이 예술 역시 우리에게 ‘무작위적인 친절’을 베푼다고 믿는 이가 있다. 사진작가이자 수제 책공방 ‘닻프레스’의 대표인 주상연씨다.
닻프레스(www.datzpress.com)는 스스로 종이를 선택해 제본과 커버링까지, 책을 만드는 전 과정을 모두 할 수 있는 수제 책공방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형태의 책 만드는 공방을 찾기란 어렵다. 주상연씨는 수제 책공방인 닻프레스뿐 아니라 닻미술관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에서 사진디자인 석사를 마친 그는 <물 위를 걷는 것(Walks on Water)>(한미사진미술관) 등 개인전을 통해 대중에게도 알려진 사진작가다. 10여 년간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7년 전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가 공부한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FAI, San Francisco Art Institute)는 160년 전통의 예술학교로, 사진학과가 최초로 개설된 학교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캠퍼스에 들어섰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스패니시 스타일의 중정을 넋을 읽고 쳐다봤죠. 그곳에서 영감과 확신을 얻었고, 재충전을 했어요. 린다 코너(Linda Connor)라는 훌륭한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70대 할머니이신데 그 열정에 정말 감동받았어요. 거기서 인생을 바꿀 만한 많은 경험을 했어요.”

닻프레스의 롤 모델은 샌프란시스코 센터 포 더 북(San Francisco Center for the Book)이다. 그곳에서는 북 메이킹, 페이퍼 메이킹, 프린팅, 바인딩 등의 커리큘럼을 통해 수제 책 만들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그 역시 그곳에서 책 만들기를 배웠다. 4년 만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10년 닻프레스를 열었다.

“캘리포니아로 가기 전에는 제 작업의 특성상 영상, 비디오 쪽에 관심을 갖게 될 줄 알았어요. 학교도 뉴 장르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사진과 프린트, 책 등 오래된 양식과 공예의 가치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고, 기획에서 프린트, 바인딩까지 손으로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배웠습니다.”

그의 활동영역은 다각도다. 사진을 찍고, 워크숍을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닻프레스에서는 수제 책을 만들고, 닻미술관도 운영한다. 닻프레스에서는 한 권에서 100권까지 소규모로 책을 만들 수 있다.

“소규모 출판에 맞는 콘텐츠는 따로 있어요. 사진이나 판화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전문작가에게만 열려 있는 공간은 아니다. 자신만의 기억을 책으로 직접 엮어보고 싶은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닻프레스 공간의 정체성’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각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무작위적인 예술적 친절(Random Acts of Art Kindness)’을 나누며,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예술 본연의 순기능을 삶 속에서 회복하고자 함께 모였습니다”라고. ‘무작위적인 예술적 친절’은 주상연 작가의 철학이기도 하다.

“제가 받은 많은 예술적 친절을, 저 역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아요. ‘닻’은 뿌리와 중심을, ‘깃’은 공기지향적인 특성이 있는 것처럼 영감과 역할을 의미합니다. 책이 우리 인생에서 닻 역할을 하듯, 항해에서 닻도 그런 역할을 하니까요.”


닻프레스를 열기까지 가장 큰 영향과 힘이 되어준 이는 그의 스승이자 멘토, 친구이기도 한 사진작가 린다 코너다. 닻미술관의 첫 전시를 그에게 바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린다 코너 선생님이 집을 비우실 때 열흘 동안 봐드린 적이 있어요. 도서관처럼 빼곡하게 책이 들어찬 서재와 정성 들여 가꾼 정원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집 자체가 박물관이었어요. 나무와 물고기, 새들을 바라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고,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 후 저도 정원을 가꾸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자연을 소재로 한 최근 작품은 그때의 결과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손으로 만든 아티스트북에 담고, SFAI의 중정에서 받았던 영감은 닻미술관에 표현했다.

“미국에서는 사진작가의 초판본이 뮤지엄에 소장되기도 합니다. ‘사진집’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티스트북을 컬렉션하는 소장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수제 책공방을 낸 데는 파인아트(Fine Art)를 하는 전업작가로서,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다. 수제 책공방은 일반인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을 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예술적 친절’을 다 함께 누리는 게 그의 꿈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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