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심윤경

소설로 다양한 실험하는 생물학도 출신 소설가

심윤경은 2008년 열정과 애정을 듬뿍 담은 단편집 《서라벌 사람들》을 출간했다. 하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이 시기에 태어난 책들은 주목받지 못했고, 《서라벌 사람들》 역시 묻혀버렸다. 모진 산통을 겪은 책이 사생아처럼 되자 아픔이 깊었다. 그 후 아주 오랫동안 펜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곡차곡 모아놨던 단편들을 펼쳐보았다. 《이현의 연애》에 수록했던 단편 〈라 캄파넬라〉. 이 단편 속 남매는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은 것 같았다.

《사랑이 달리다》는 4년 만에 나온 그의 장편소설이다. 화수분 같은 아빠 카드로 사치를 누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서른아홉 혜나가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혼을 기점으로 변모해가는 이야기다. 혜나는 지방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산부인과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만난 병원장 욱연과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달리다》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입니다. 몇몇 정형화된 인물을 제외하면 모두가 소설 전반에 걸쳐 성장해나가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 작품에도 ‘인간애’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혜나도, 돈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엄마를 팔아먹는 학원이도 나름대로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들이죠.”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래서 심윤경 작가의 팬 중 일부는 다소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2002년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빛을 본 데뷔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나 KBS TV문학관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두 번째 작품 《달의 제단》이 담고 있던 개인과 사회, 시대의 문제의식을 최근 작품들에선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감성과 이공계적 사고체계를 반반씩 소유한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놀랍다. 소설적 요소를 작위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선을 포착하면서도 논리적 완결성을 기반으로 튼튼한 구성을 갖는다.

심윤경 작가의 작품은 짐작이 불가능하다. 내용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이다. 데뷔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군부독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어린아이의 성장을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두 번째 작품 《달의 제단》은 종갓집의 몰락을 다룬 이야기이며, 2008년에 낸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은 《화랑세기》의 역사관을 기반으로 한 신라시대 이야기다. 작년에는 심지어 동화 시리즈도 냈다. 점점 길어지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한 장르였는데, 그 과정에서 소설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 후 긴 공백을 깨고 로맨틱 코미디 《사랑이 달리다》로 돌아왔다.

“작품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은 제 기질 같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향후 10년 동안은 하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고 자신과 약속했죠. 이제 10년을 꽉 채웠기 때문에 그 약속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심윤경 작가는 같은 전공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과학도였다. 생물학에 보통 애정을 가졌던 것이 아닐 텐데, 그는 어떤 계기로 소설가가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 소설 읽기와 글쓰기는 취미였죠. 제 자신이 ‘소설을 좋아하는 과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알고보니 저는 ‘생물학을 좋아하는 소설가’였던 거죠.(웃음) 생물학이 좋아 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제 스스로 연구자의 기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다원적인 작품들은 모두 ‘유머’를 공유한다. 특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초등학교 3학년인 동구에게 가혹한 일들이 닥치는 다소 어두운 내용인데, 문장 하나하나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트가 스며 있다. 《사랑이 달리다》는 유머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그의 첫 번째 시도이다.

“유머로써 독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마음을 열어젖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TV를 전혀 보지 않는 제가 얼마 전 우연히 〈런닝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접했는데, 재미있는 영상매체가 주는 마음의 위로란 게 분명히 있더군요. 그에 못지않게 소설도 웃음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소설로 〈런닝맨〉과 겨루어보고 싶습니다.(웃음)”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육촌언니 임경선씨를 제외하고는 예술을 업으로 하는 친족은 없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에게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는 기질을 물려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지금도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첨부한 여행기를 이메일로 보내준다.

“아버지의 짤막한 여행기를 보면 무척 놀랍습니다. 70대 후반의 노인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시고, 그것을 위트 있는 문체로 옮기신 것을 보고 제가 놀랍도록 아버지와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2001년에 딸을 낳았다. 이듬해에 작가로 등단했으니 작가로서의 인생과 엄마로서의 인생이 동시에 시작된 셈이다. 딸이라는 존재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항상 작가로서의 자아보다는 모성으로서의 자아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최근 아이가 성장하고 엄마의 손을 덜 타면서 오롯이 작가로서의 자아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딸을 키우면서 주부로서의 역량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여성성과 화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제 프로필 사진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죠.(웃음) 과거엔 제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했어요. 항상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흰 티셔츠에 일자바지만 입었습니다. 행사 때문에 투피스를 입은 날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었죠. 하지만 이젠 화장도 하고 치마도 입습니다. ‘여자로서의 나’를 인정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작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날 팬 미팅을 했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행복해 보였다. 궂은 날씨였음에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다고 했다. 《사랑이 달리다》 이전의 4년은 작가로서의 자존감도 잃고, 자신에게 독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내고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랜 기간 침묵을 지켜온 저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 덕분에 혜나와 함께 30에서 40으로 향하는 고비를 행복하게 넘어왔습니다. 이 에너지를 이제 다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의 다음 작품은 예측할 수 없는 만큼 더 기대가 된다. 현재 퇴고 중인 《사랑이 달리다》의 후편 《사랑이 채우다》의 후속작 계획을 물었더니,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금세 눈을 반짝이며 이런저런 구상을 이야기했다.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보통사람이 신과 만나는 그 순간을 소설 속에서 포착해보고 싶어요. 또 이건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제 과학적 전문지식을 살려 진화학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소설적 미학과 진화학적 개념이 공존하는 소설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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