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김수자

세계를 연결하고 치유하는 도구 바늘, 실, 보자기

김수자
1957년 대구 생.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 회화 전공.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수학. 마이애미 뮤지엄,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리히텐슈타인 쿤스트뮤지엄, 영국 발틱센터, 브뤼셀 BOZAR,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의 크리스털 팰리스,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과 폰다치오네 베비라콰 라 마사, 리옹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뮤지엄 쿤스트 팔라스트, P.S.1 현대미술센터와 MoMA, 쿤스트 할레 베른 등 세계 주요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포츠난비엔날레, 모스크바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대표적인 현대미술전시 단체전에 초빙되었다. 김수자의 작품은 휘트니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스위스의 쿤스트 뮤지엄 베른, 파리 시청과 리옹 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의 K21, 도쿄 현대미술관, 후쿠오카미술관, 시에틀의 빌&메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올해 초 미술 전문기관인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지난 10년간 한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를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1위는 당연히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이었으며, 박수근・이중섭 등이 포함되어 있다. 톱 10에 세 명의 생존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우환・김수자・서도호였다. 한국미술을 대표는 세 명의 작가 모두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국내 관람객은 작품을 제대로 볼 기회가 적었다. 그러나 다행히 올가을에는 김수자가 소격동 국제갤러리(8월 29일~10월 10일)에서 10년 만에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함과 동시에 광주비엔날레(9월 7일~11월 11일)에 참여한다. 두 전시의 설치와 진행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은 모습은 멀리서도 ‘바늘 여인’ 김수자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김수자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작업은 1992년 P.S.1 현대미술센터에서 선보인 보따리 작업이었다. 담고자 하는 물건에 형태가 순응하는 유연하고 단순한 사각형 보따리는 그에게 회화이자 조각이었다. 이후 그녀는 뉴욕으로 옮겨가 그곳을 기반으로 세계 미술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움직이는 도시들, 2727km〉에서는 이 보따리들을 실은 트럭을 타고 의정부・전곡・연천・대구・경주・서울 등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어린 시절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면서 잠깐씩 살던 곳들이다. 이 작품은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후한루의 기획으로 그해 베니스에서 열린 전시 <떠도는 도시들>에 출품되었으며, 세계 미술계의 화두였던 노마디즘과 연관되며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바늘・이불천・보자기・보따리・실 등은 김수자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수자’가 인도어로 ‘바늘’이라니, 그녀는 지구상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연결하는 예술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그녀는 바늘과 관련된 흥미로운 체험을 말한다. “1983년 바느질할 때였어요. 천을 바늘로 찌르는 순간, 우주의 에너지를 느꼈어요. 나중에 제 작품에서 다양하게 발전해나갈 음양의 에너지를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작업들은 명상과 치유의 작업이었죠.”

Bottari Truck Migrateurs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 김수자는 ‘바늘 여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이 퍼포먼스에서 런던・카이로・뉴욕・상하이 등 번잡한 도시 한복판,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바늘 여인은 부동의 자세로 꼿꼿이 서 있다. 30여 분간 진행되는 퍼포먼스의 처음에 그녀는 마주 오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부딪치지만, 후에는 내적인 평온을 찾고 새로운 각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주・세계・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이다. 뒷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신이 매개인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느끼고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0년 서울의 에르메스아틀리에와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상영되었던 작품 〈지-수-화-풍〉은 2009년 스페인 란자로테의 사화산, 과테말라 파카야 활화산에서의 용암 분출과 응고,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와 물안개, 하늘의 구름과 바람, 대지의 움직임과 모래, 그린랜드의 빙하 등 광대한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4가지 원소라고 믿어졌던 지・수・화・풍이 독자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불의 물’ ‘물의 공기’ 식으로 관계 속에서 제시된다는 점이다. 김수자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존재하면 인연으로 인해 변화하고 존재한다는 화엄연기론의 세상이다.

Mumbai-A Laundry Field
작품을 위해 그녀는 부지런히 세상을 돌아다닌다. 1년의 반은 가족과 떨어져서 늘 여행 중이다. 작품 〈뭄바이: 빨래터〉는 인도 빈민가 뭄바이의 빨래터, 새벽 거리, 슬럼가 골목, 사람들이 기차 문에 짐짝처럼 매달려 가는 출퇴근길 풍경을 담은 4개의 영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2007년 시작된 작품입니다. 빨래터의 알록달록한 옷들이 시각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빈민가의 피폐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죠. 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자전적인 요소와도 관련이 있고요.”

To Breathe
이번 한국에서 그 일부가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 〈실의 궤적〉을 위해서 그녀는 페루・크로아티아・이탈리아・벨기에・체코・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 등 전 세계의 실과 관련된 문화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2002년 레이스로 유명한 벨기에의 중세도시 브루쥬에서의 행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시작된 작품으로 8년 만에 제1부가 제작되어 지난 6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서 공개되었고, 이번에 제2부를 새로 선보인다. 이 작품에서 김수자는 자연과 인간세계, 세상의 삼라만상은 서로서로 인연의 씨실과 날실로 직조되어 있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찌르고 꿰매는’ 바느질이 ‘보듬어 싸는’ 보따리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지요. 실 작업은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구체적인 삶, 몸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작품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을 잣고, 직물을 짜는 페루 여인들의 모습, 축제 장면 등과 페루 코스코의 성스러운 계곡, 마추픽추, 타길레 섬 등의 자연풍광을 교차시키면서 보여준다. 자연 지형 - 건축 구조물 - 실의 문화가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페루 여인들의 알록달록한 원색의 직물들이 페루의 자연과 건축을 닮았듯이, 유럽 여인들이 짜는 레이스는 유럽의 자연과 건축을 닮았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녀들이 짜는 레이스는 마음의 성소를 짓는 구도행위의 연장이다.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 궁전 중정 분수의 맑은 물소리를 병치시킴으로써 궁전은 거대하고 투명한 레이스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직물을 짜거나 레이스를 뜨는 행위는 상호 영향을 주는 요소들의 씨실과 날실이 무수히 교차하면서 일종의 삶의 피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임을 작품은 보여준다.

Thread Routes_Chapter 1
“자연 지형 - 건축 구조물 - 실의 문화가 서로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몸도 구멍이 있는 레이스 같잖아요. 자연과 문화의 구조는 우리 몸의 구조와 닮아 있죠.”

삶이 직조되는 다양한 양상과 더불어 여행에서도 김수자는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를 퍼올린다. 작품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은 예술과 죽음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던진다. 관람객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화면의 색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고 당황할 무렵, 작가의 숨소리가 들린다. 숨소리 퍼포먼스 〈방직공장〉이라는 작품이다.

“우리 몸은 하나의 방직공장과 같은 것입니다. 작품 자체가 나의 몸이 되어 호흡하는 것이고, 결국 관람객과 하나가 되어 호흡하게 되죠. 숨・호흡에 의해 우리 삶은 계속 직조되는 게 아닐까요?”

Thread Routes_Chapter 2
삶과 죽음이 한 호흡 차이인 것이다. 예술에 대한 사유와 함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체험을 설정함으로써 예술은 더 진지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음양의 조화, 천지인 같은 몸에 밴 동양철학과 서구 미술 담론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동양철학은 자연스레 내 피에 들어 있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주의(ism)로 규정되는 것은 달갑지 않아요.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엮어나가서 어떤 종합성(totality) 같은 것에 도달하는 것을 원하죠.”

김수자 하면 떠오르는 바늘・이불천・보자기・보따리・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도구지만 그것들은 김수자라는 이름과 함께하면 분열되고 나뉜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고, 보듬는 연결의 매개체이며 치유의 도구들이 된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는 이 물건들과 함께하는 그녀의 예술여정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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