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62) 김경후 〈동물원 데이트〉

사랑에 대한 차갑고 투명한 통찰

파충류관엔
자기 머리보다 큰 짐승을 삼키는 뱀이 있다
비늘같이 어깨를 붙이고 손을 맞잡은 너와 내가 있다
유리판 너머
울컥 청록빛 목 비늘 속으로
울컥 쥐 몸뚱이가 다 드러난다
징그럽지?
뱀들의 복도를 서성이는 사람들
비늘의 밤 너머
우리는 서로의 목구멍을 타들어가는 서로를 알아본다
자정마다 울리는 뼈의 종소리
머릿속으로 납물이 부어진다
마르지 않는 납물에 자신의 지문을 찍어두는 연인들
징그럽지?
응, 징그러워
우리는 서로 꼬옥 껴안는다
토요일 동물원엔
납 비늘보다 단단한 사랑이 있다



여기 동물원에서 주말 데이트를 하는 한 쌍의 연인이 있다. 제법 낭만적인 그림이다. 하필이면 그들은 마침 파충류관 앞에서 “자기 머리보다 큰 짐승을 삼키는 뱀”을 본다. 뱀은 쥐를 삼키고 소화를 하는 중이다. 뱀의 “청록빛 목 비늘 속으로” 소화되지 않은 쥐가 다 드러난다. 살아 있는 뭔가가 살아 있는 뭔가를 삼켜 먹는 그 풍경 앞에서 그들은 “징그럽지?”라고 묻고, “응, 징그러워”라고 대답한다. 〈동물원 데이트〉는 주말을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을, 연인들의 다정한 동물원 데이트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이 담담함 속에 무시무시한 사랑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뱀과 쥐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에 있다.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서로를 향해 삼키는 자와 삼켜지는 자다. 연인들은 “서로의 목구멍을 타들어가는 서로를 알아본다”고 적는다. 연인들은 상대를 삼킴으로써 사랑한다는 사실을 육체의 실감으로 새긴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애무는 피부와 피부의 접촉이 아니다. 애무는 나의 육체에 너의 육체를 더하는 일이고, 접촉이 아니라 ‘가공’이며, 나의 욕망함 안에 너를 두고자 하는 ‘전략’이다. 한 철학자의 표현에 따르면 애무할 때 나의 손가락[포식자] 밑에서 너의 육체[피식자]가 탄생한다. 나의 욕망함에 먹히기 위하여 너의 육체는 자발적으로 수동화한다. 그리하여 애무는 “타자를 육체화하는 의식들의 총체”(사르트르)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통찰은 더할 수 없이 차갑고 투명하다. “개흙에/흑꿀처럼/엉켜/눌어/붙은”(〈목탄 소묘, 연인〉) 사이일지라도 연인은 먹거나 먹히는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상처가 나고, 흔적은 오래 남는다. 다른 시편에서 사랑은 “바다표범의 살 속 깊이/톱이빨이 으스러지도록 잇몸 뿌리가 박히도록/단 한 번/그렇게 물어뜯고 그렇게 물러서기”(〈상어와 한 컷〉)라는 은유를 낳는다. 백상아리는 바다표범을 물어뜯는다. 그런 백상아리조차도 “상처 입은 바다표범에게 상처 입지 않으려”고 달아난다. 사랑은 포식과 피식 사이에서 상대를 물어뜯고 물러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있는 게다/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있다”는 구절은 그것이 사랑의 불가피성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를 믿는 사람은 믿기 어렵겠지만, 이렇듯 사랑은 달콤한 폭력이고,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다. 시인은 사랑에 대한 제 경험을 깊이 통찰한 뒤 사랑하는 자들은 “자정마다 울리는 뼈의 종소리”를 듣고, “머릿속으로 납물이 부어”진다고 적는다. 파충류관 앞에서 나는 너에게 “징그럽지?”라고 묻고, 너는 나에게 “응, 징그러워”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쥐를 삼키는 뱀이라는 포식자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포식자와 피식자가 되어야 하는 연인 관계의 진상에 대한 무심한 폭로다. 사랑은 “마르지 않는 납물에 자신의 지문을 찍어두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지나고 난 뒤 그 기억은 “끓는 기름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지글대는 기억”이고, 그 아픈 기억 속에서 사랑의 날들은 “터지지도 울부짖지도 않는/곪은 일식의/나날들”(〈달궈진 프라이팬 위의 자정〉)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탈취해간다. 사랑을 잃은 자에게 남은 것은 텅 빈 신체, 상처, 어둠뿐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헤어진 연인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를 열심히 지운다. 그러나 “모든 기억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지웠다는 기억”(〈지우개〉)은 남는다.

〈동물원 데이트〉는 범속한 주말 데이트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런데 이 범속함 속에 날선 통찰이 숨어 있다. 사랑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그것이 징그러운 것임을 말한다. 왜 아닐까. 연인들은 동물원 파충류관 앞에서 “서로 꼭 껴안”으며 쥐를 삼킨 뱀의 청록빛 목 비늘 속으로 드러난 쥐의 몸통, 이 적나라한 포식의 풍경 앞에 자신들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징그러운 것은 쥐를 삼킨 뱀이 아니라 내 욕망함의 선점(先占)이고, 내 욕망함을 가로질러 가는 너를 독점(獨占)하려는 욕망함의 적나라함이다.

김경후의 시집 《열두 겹의 자정》은 사랑이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 때로는 살과 뼈를 태우는 연옥(煉獄)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매우 인상적인 시집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는 자꾸 너와 세계를, 그것들이 남긴 흔적인 기억들을 지운다. 지움은 상실과 부재를 제 나름으로 견디는 방식이다. 그런데 모든 기억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지웠다는 기억’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지움과 지웠다는 기억 사이에서 발화하는데, 이때 상상력은 8할은 그믐의 어둠, 열두 겹 자정의 어둠이다. 시집을 덮고 나서도 자꾸 어둠과 핏물 젖은 악몽의 영상들이 떠오른다. 사랑이 지나간 뒤 “아직 난 주홍색 천막 안에서/종이 계단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천막 교실〉)라고 적는다. 종이 계단을 삼키다니! 권태의 고통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니! 사랑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있어서 안 되는 건 이미 모두/없다/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그것뿐/벌건 할로겐 램프아래/벌거벗은/토르소”(〈토르소〉)가 된다. 사지가 잘려나가고서도 더 잃을 게 무엇이 있겠는가. 시인은 단호하게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믐의/마지막/빛/테두리”(〈자라나는 제로〉)같이 또렷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실과 부재의 기억에 예민해지고, 그 반응이 과격한지도 모른다. 물론 상실의 정조는 사랑이 떠나고 난 뒤 감당해야 할 사태이지만, 시의 화자가 그 흔적과 기억들을 버리고 지움으로써 초래된 현실이다. 이미 불의 심장이 식었을 때, 소극적으로 “텅 빈 어항을 껴안고 홀로 서 있”거나(〈붕대〉), 적극적으로 “네 곁에 있기 위해/나는 내가 없다”(〈곁〉)고 자기 부정을 할 수밖에!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 쥐고 서로 지운다”(〈커플벙어리장갑〉).


김경후(1971~ )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독문학 과를 졸업하고,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으로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를 내고, 올해 두 번째 시집 《열두 겹의 자정》을 냈다. 그의 시는 어둡다. 온통 칠흑 어둠이다. 그의 시들은 “열두 겹의 자정”들에서 탄생한다. 상실의 체험이 시인을 뚫고 지나갔나보다. 남은 것은 “내 안엔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그믐〉)이거나 “내가 어떤 하늘을 날아다녔든 어떤 밤을 질러 왔든/나는 어둠이 달고 가는 찢어진 날개일 뿐”(〈아름다운 책〉)이라는 쓰디쓴 자각뿐이다. 이 열두 개의 자정과 찢어진 날개는 어떤 상실의 기억에 대한 등가물이다. 무엇을 잃었을까. 불의 심장을 주었던 것, 즉 사랑이다. “몽유병 걸린 시체처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불의 심장은 이미 식었다”(〈아름다운 책〉). 불의 심장에 식었다니, 사랑은 이미 가고 없다. 걸어 다니는 것은 몽유병에 걸린 시체다. 몽유병에 걸린 시체는 자신에게 걸린 나쁜 마술을 풀기 위해 사랑의 기억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열두 겹의 자정》은 그 기억하기와 망각하기 사이에 걸쳐 있는 아주 길고 지루한 싸움을 그려내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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