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된 한국작가 문경원

기억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향기를 가진 예술가가 되고 싶다

2012년 한국 미술계에서 기대되는 행사 중 하나가 8월 31일부터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되는 〈올해의 작가상 : 2012〉전이다. 지금까지의 형식을 바꾸어 국내외 심사위원의 추천 및 심사를 거친 네 팀의 후보 작가들이 11월 11일까지 전시를 가진 후 최종 수상자를 발표한다. 후보 작가로는 김홍석, 문경원·전준호(공동작업), 이수경, 임민욱이 선정되었다. 형식을 바꾼 뒤 첫 행사인 데다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를 벤치마킹하여 경쟁제도를 도입했으니 보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행사일지 모르지만, 후보로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전시를 준비하는 여름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문경원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미국 칼아츠(Cal Arts)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서울 갤러리현대와 2007년 성곡미술관, 2004년 일본 후쿠오카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0년 도쿄원더사이트에서 Silent Voice와 독일 보쿰미술관, 터키의 이스탄불미술관에서 A Different Similarity, 2008년 난징 트리엔날레와 백남준미술관에 Now Jump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제주도 Genius Loci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한편,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버스 프로젝트 등 여러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은 지난 6월 9일 독일 카셀 도큐멘타의 전시 설치를 마치고 돌아와, 숨 돌릴 틈 없이 전시 준비에 한창이었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적인 미술 행사다. 여기에 1992년 이후 20년 만에 한국작가로는 문경원·전준호, 양혜규가 초빙되었다. 특히 영상물, 출판, 설치작업의 세 가지 형태로 메인 홀에 전시되고 있는 두 작가의 공동작업은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공동작업은 2007년 타이페이비엔날레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두 작가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화두로 삼아 공동 작업을 하게 되었다. 두 작가가 자유롭게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초로 시나리오가 탄생했다. 세계 종말 이후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인 이 시나리오에 맞춰서 이정재・임수정이 노개런티로 연기한 영상물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이 완성되었다. 좀 더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해 그들은 10명의 조언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는 교수이자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크리스토퍼 도브라이언,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영화감독 이창동, 시인 고은, 미산 스님, 싱가포르 영화감독 에릭 쿠 등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포함되었다.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가자 고은 시인은 예술가란 꿈꾸는 사람들인데, 종말을 말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며 아름다움과 시대정신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세상에는 참 고수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MOON KYUNGWON & JEON JOONHO, EL FIN DEL MUNDO_installation view 1, HD Film, 13min 35sec, 2012
각계의 고수들과 나눈 이야기는 《News From Nowhere》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종말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그들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8명의 전문가들과도 협업을 했다.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생필품과 주거환경, 의복 등이 제작되었다. 이것이 〈Voice of Metanoia(공동의 진술)〉라는 설치작업이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부터 집중적으로 작업이 진행되어 전시에 이르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작업이었다.

“작업의 내용, 형식 모두 의미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생각이나 태도에서 진정성이 통하면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이 작업 과정의 최대 수혜자는 우리 자신이었다. 많은 사람과 만나 여러 생각을 나누면서 작가로서 좀 더 성장한 것 같다”고 문경원은 말한다.

Design Engineering_2012. 8. 27_takram, News From Nowhere
이번 작품도 현재의 문제를 미래에 투사하여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보는 상상 다큐멘터리다. 이전에도 문경원은 숭례문, 서울스퀘어, 기무사, 창경궁의 온실 등 역사적 유적이나 공공장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개인적인 시점으로 재조망하는 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과거에 대한 딱딱한 사료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재 예술가가 가진 자유로운 감성과 상상으로 역사적인 장소를 들여다보면서 역사를 재구성해나가는 작업들이었다.

GREENHOUSE I, II_ 1909, 2010. mixed media with moving image, installation view
일제강점기 시절 건립된 창경궁의 대온실을 재해석한 〈그린하우스_1909〉는 완성도 높은 볼거리와 함께 비극적인 민족사를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냈다.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던 2009년 작품 〈Superposition〉은 기무사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에 관한 상상 다큐멘터리였다. 소격서-종친부-규장각-사간원-수도육군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가 1971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가 들어섰던 이곳은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중심무대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그녀는 상상으로 재구성했다. 이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 단죄만이 아니라, 기무사 터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이라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나면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화해의 공간이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SUPERPOSITION, Still cut_ HD Film, 13min. 51sec, 2009


SUPERPOSITION, Installation view
문경원은 우선 역사를 중성화시키고, 거기에 사사로이 개입해 들어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때로는 인간 대신 사물이 바라보는 주체가 된다.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제주도의 피닉스 아일랜드의 미술관이자 명상의 공간인 ‘지니어스 로사이’에는 문경원의 작품 세 점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설치된 작품 〈Sky-Recorded Yesterday〉는 제목 그대로 매일 기록된 ‘어제’의 하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건축물이 어제의 하늘풍경을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방문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제와 건축물이 보여주는 어제는 동일한가? 다른 존재의 기억을 되짚어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사고와 관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PASSAGE_ SUNGNYEMUN III, Media installation, Custom softwar, SSQ installation view, 2010


PASSAGE_ SUNGNYEMUN I, media installation, Custom softwar, 2006


PASSAGE_ SUNGNYEMUN III, Media installation, Custom softwar, 2009
컴퓨터 그래픽, 촬영, 설치 등 최첨단 매체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트 작가지만 그녀는 손으로 작업하는 수공성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그녀는 많은 미디어 작업들을 직접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제작했고, 틈틈이 쉬지 않고 회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런 철저한 장인 정신은 그녀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2006년 제작된 작품 〈Passage: Sungnyemun〉도 역사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높은 장인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 해 숭례문은 90년 만에 대중에 개방되었고, 문경원은 그곳을 방문한다. 그리고 밖에서 숭례문을 바라보는 이전의 경험과 달리 숭례문의 입장이 되어 주변 풍경을 보는 각별한 체험을 한다. 위치의 이동은 관점의 이동이고, 그것은 새로운 풍경의 발견과 역사의 재해석으로 이어진다. “꿈꾸는 예술가는 무언가를 의심하고 궁금해하고 고정되지 않는 의견을 제시한다. 늘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 역할을 보려고 한다. 정답이 있다면 하지 못한다. 추구의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Sky Recorded Today_ Media installation, Custom software, at GeniusLoci, 2008


Now Recording Today_ Media installation, Custom software, at GeniusLoci, 2008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문경원은 “향기를 가진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첨단 미디어 아티스트의 대답치고는 너무나 고풍스러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향기는 형태가 없다. 외관이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지만, 향기는 은은하거나 강하거나 기억될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보충 설명이 이어졌는데, 향기에 대한 생각을 얻게 된 것도 숭례문 때문이었다. 2008년 어이없는 방화로 숭례문이 소실되고나서 이틀 뒤, 아직 사고 수습도 되지 못한 참혹한 현장을 찾아갔다. 자신이 작품에 담았던 때의 위용을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순간에 그녀는 향기를 맡았다. 오래된 나무가 타면서 내뿜은 향기였다. 화학물질의 고약한 탄내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숭례문의 탄 냄새는 그 존재만큼이나 선한 향기를 내뿜었다. 참혹한 현장이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문경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코끝에도 오래된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깊은 향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문경원이라는 예민한 예술가의 감각이 우리 시대의 모습을 기억해주었다. 우리 시대 역시 문경원이라는 깊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작가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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