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예술로 만드는 북아티스트 김명수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북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한국의 북아트 역사는 15년 남짓. 도서관과 미술관, 재단과 컬렉터들의 적극적인 후원, 애호가들의 관심 아래 작업하는 다른 나라의 실정에 비하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을 굳은 의지로 걸어가고 있는 이가 있다. 북아티스트이자 북아트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명수씨를 만났다.
북아티스트 김명수씨(31・페이지스프레스(http://blog.naver.com/pagespress) 대표)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북아티스트다. 2005년부터 미국의 키스 스미스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데, 《CHESS》 등 함께 펴낸 한정본 작품이 미국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간되는 북아트는 유럽과 미국에서 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북아트는 책(book)과 예술(Art)의 만남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미술가의 책(livre d`artiste)’이라고도 부른다. 북아트 작업은 책의 구성에서 완성까지 순전히 손으로 이루어지는데,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유일본이나 한정본으로 나와 더 가치를 지닌다.

그는 이제까지 수작업으로 《내가 나를 죽인다》 《HANDMADEBOOK》 《스쳐 지나가다》 등 아트북을 펴내고, 전시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재건축되기 전 잠실 시영아파트에서 사진 촬영을 한 《내가 나를 죽인다》는 그의 20대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던 시절입니다. 그전의 나를 죽일 때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죠.”

《스쳐 지나가다》는 도쿄에서 가장 복잡한 시부야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로 엮은 책이다. 짧게 쓰는 일본의 전통 시(詩) 하이쿠처럼 시와 같은 느낌의 사진들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사람 사이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연’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남긴 흔적들로 결국 ‘영생’의 꿈을 실현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책은 ‘저 자신의 흔적’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책’이나 집필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책’을 통해 ‘영원’을 꿈꿉니다.”


세계적인 북아티스트 키스 스미스와의 공동 브랜드 - IVARYKETH

세계적인 북아티스트 키스 스미스는 1967년부터 북아티스트로 활동해왔다. 미국의 NEA(National Endownment for the Art), 폴록/크래즈너 재단 등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미국 국회도서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캐나다 국립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도쿄 메트로폴리탄 사진박물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 《키스 스미스 북스(Keith Smith Books)》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완결된 채 변화하지 않는 책은 시체다”고 말했다. 키스 스미스는 그에게 “북아티스트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는 책을 하나의 표현매체로 볼 뿐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꿈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러다 책을 만드는 게 제 성향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지요. 제게는 영화도 두루마리 필름에 담긴 책으로 생각됩니다.”

Tub on Tuesday_ 키스 스미스와의 첫 번째 공동 작업으로 교류에 대해 다룬 이야기책이다.
그가 북아트 작업을 시작한 것은 군 제대 직후인 2004년부터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평생 볼 수 있는 별은 다 본 것 같아요. 그때 별을 보며 생각했던 게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녹아 있기도 해요.”

전업작가로 살기에는 생활이 안 돼 5년여 동안다국적 온라인 게임회사에서 비주얼을 담당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10여 차례 북아트 전시회에 참여했고, 매일 3~4시간만 자면서 ‘책’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작업하다 부족한 게 느껴지면 디자인과 인문학을 공부하며 채워나갔다. 그러다 200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키스 스미스를 처음 만났다.

“키스 스미스의 세미나에 갔었는데, 관중이 엄청 많았어요. 그때는 저와 엄청 먼 거리에 있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도서전 기간 중 제가 다른 북아티스트들과 함께 그룹전을 하고 있는 부스로 오셨기에 제 작업물들을 보여드렸죠.”

kentauros_ 낱장으로 접지된 이 책은 독자가 재편집하며 볼 수 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키스 스미스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취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공동작업’을 제안했고, ‘IVARYKETH’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다. ‘IVARY’는 김명수씨의 또 다른 이름. 두 사람은 뉴욕과 도쿄, 한국을 오가며 함께 작업하고 있다.

“대가인 키스 스미스는 처음부터 저를 대등한 관계로 대해주셨어요. 시각적인 부분은 제가, 텍스트 작업은 키스 스미스가 맡습니다. 화상채팅과 이메일로 회의를 하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Chess_ 2007년 4월 30일 부산의 해변가에서 체스를 두며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이들의 합작품 중 《CHESS》(2009년)는 2007년 부산 해운대의 바닷가에서 두 사람이 실제 체스를 두면서 그가 키스 스미스의 북아트 세계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체스는 전쟁 같은 심리게임인데, 바다와 하늘 등 자연을 통해 그걸 표현했죠.”

그들이 함께 쓰는 엠블럼은 욕조 안에 있는 두 사람이다. 함께 생각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올해 7월 그는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북아티스트 이도 아가시의 개인전을 공동 기획하기도 했다.

“건축 공간을 보듯 책도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도 같았지요. ‘작품으로서의 책’은 이도 아가시 작품의 콘셉트이기도 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다_ 독자가 읽는 반대 반향으로 사진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도 아가시의 작품들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공공 도서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예일대 등 대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외국에서 북아티스트들의 작품은 도서관과 미술관에 소장되거나 컬렉터 등 일반 독자에게 팔리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북아트 시장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아직은 북아트와 아트북, 북바인딩이 혼용되어 쓰이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1년째 두성인더페이퍼갤러리에서 북아트 세미나 <위하여 그리고 관하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북아트Q&A’는 두성종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강좌로, 그가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북아트Q&A는 일종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국내에 북아트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8월 18일부터 29일까지 열릴 예술제본과 복원을 주제로 한 〈Relieur〉(를리위르 : 프랑스어로 제본가라는 뜻) 전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에 예술제본을 소개할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장도 형성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그는 개인 작업뿐 아니라 워크숍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활동도 활발히 이어갈 생각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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