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전파공학과 출신 뮤지션 이이언

이 세상에 없는 연주법으로 이 세상에 없는 음악 만들어낸다

음악은 수학이자 논리다. 치밀한 계산으로 쌓아올린 정교한 건축이기도 하다. 그룹 못(MOT)의 보컬이자 얼마 전 솔로 앨범을 낸 이이언은 이 명제에 딱 어울리는 뮤지션이다. 그 소리의 조합은 뻔하지 않다. 기존의 화음과 예측가능한 선율의 흐름을 깨뜨리며 낯선 박자와 화성을 만들어낸다. 그가 만든 그룹 못(MOT) 1집 음반 〈비선형〉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모던록 앨범, 한국대중음악 100대 음반에 선정됐다. 그는 음악의 외연을 넓혀 타 장르와 이종교배를 시도했다. 얼마 전엔 미술과 손잡고 ‘서로 다른 꿈, 디자인 소리를 만나다’라는 테마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전시 영상을 보여주었고, 소설과 손잡고 김영하가 자신의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를 낭독한 소리에 음을 입혀 곡을 만들기도 했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 공연 이틀 전, 이이언을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굵고 큰 뿔테 안경, 얼굴을 반쯤 가려버린 덥수룩한 앞머리 때문에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과연 ‘소두(小頭)의 초절정 동안 홍대 아이돌’다웠다. 하지만 그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나이, 38세다. 그에게 첫 솔로앨범이자 못 2집 앨범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길트-프리(Guilt-free)〉에 대한 만족도를 먼저 물었다.

“앨범은 늘 만족스러워요. 만족스러울 때까지 작업해서 내놓으니까요. 그래서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2년 전 열 개의 곡을 완성했는데 이후 2년 이상 추가 작업을 계속했죠. 추가 작업을 하면서 몸무게가 8kg이 빠졌어요.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고민 중이에요.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한 작업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요. 소모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렇게 내놓은 음반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그의 음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대중이 아니다. 익숙한 선율에 싫증난 소수의 마니아이자, 그의 음악적 정교함을 알아본 음악평론가들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그의 이번 음반에 대해 “수식으로 써내려간 소설 같은 앨범이다. 치밀한 계산과 조합으로 만들어진 사운드는 공간을 점령하는 논리다. 분석의 가치와 감상의 기쁨이 이 그릇 안에 유기체가 되어 담겨 있다”고 평했고, 음악평론가 배순탁은 “5년의 기다림을 보상하고도 남을, 2012년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수작이다. 집요한 완벽주의가 작품 전체를 튼튼한 만듦새의 구조물로 완성하는 까닭이다”고 찬사했다.

이이언의 음악은 낯설다. 그의 음악이 주는 첫인상은 아름다움보다 충격에 가깝다.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악기 소리, 접해보지 못한 박자, 그 저변을 관통하는 몽환적인 서정성. 그의 주된 악기는 컴퓨터다. 연세대 전파공학과를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뮤직테크놀로지를 공부한 그는 키보드나 피아노, 기타 같은 악기 대신 컴퓨터로 곡을 쓴다. 어떤 타이밍에 특정 주파수를 강조하거나 깎아내는 식으로 소리의 양각과 음각을 만들어내느라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판이 튀는 듯한 소리, 마이크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는 듯한 소리도 그의 음반에서는 잡음이 아니라 어엿한 주역이 된다. 혹자는 그의 음악이 집중력 향상을 돕는 ‘엠씨 스퀘어’ 기능이 있다고도 한다. 전자음이 내는 차가운 금속성 소리, 묘한 화성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음 탓이다.

솔로 프로젝트에 담긴 열 개의 곡에 사용된 악기는 제각각이다. 많은 악기가 쓰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단 하나의 사운드를 시간과 리듬에 따라 변화시킨 ‘bulletproof’, 기타와 현악기 등 익숙한 악기들을 가지고 기존 주법이 낼 수 없는 연주를 하는 ‘너는 자고’, 디지털 음만 사용해서 만든 ‘drug’, 4박자 안에 다섯 개의 음(4박 5연음)을 사용한 ‘5 in 넷’ 등. 그의 라이브 연주 무대에는 건반・드럼・기타・베이스 등의 밴드 세션과 함께 컴퓨터 세 대가 오른다. 컴퓨터 한 대는 그의 목소리를, 하나는 효과음을, 하나는 건반을 담당한다. 컴퓨터가 어엿한 주역 악기이다보니 예기치 못한 음향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5월에 열린 그린플러그드 뮤직페스티벌에서는 장비 과열과 전류 불안정으로 인한 음향사고 때문에 제대로 공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작업 방식 또한 여느 음악가와 다르다.

“작업실에 악기가 있지만 거의 쓰지 않아요. 곡을 만들 때에는 소설이나 시를 구상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구상하죠. 리듬, 멜로디, 화성은 물론, 소리에 비중을 두고 구상해요.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결정되죠.”

그의 활동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영화음악 제작에도 뛰어들었고,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소설가 김영하의 신작 트레일러를 제작하고, 은희경의 북콘서트에 초대된 적도 있다. 박정현의 새 음반을 함께 만들면서 인지도가 한층 넓어졌는가 하면, 자신의 곡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했다. 현재는 친동생인 화가 이이립과 공동 작업을 준비 중이다.

“기본적으로 문학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있어요. 대학 때에도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죠. 김영하 작가와는 트위터로 알게 됐어요. 예전부터 서로 팬이었죠. 은희경 작가와도 서로 팬이었고요. 박정현씨는 새 음반 작업을 위해 새로운 분위기의 음악가를 모니터링하던 중 저를 알았다며 연락을 주셨어요.”

그는 멘사 회원으로 아이큐가 163이다. “공부를 싫어했지만 시험이 있으면 미루거나 대충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성적이 쓸데없이 좋았다”며 웃었다. 남다른 발상과 튀는 생각이 많았던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만의 세계가 강했고, 그 근원적인 외로움이 음악 전반을 관통하는 기저가 됐다. 그의 음악에는 탈출구 없는 깊은 슬픔과 우울이 흐른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질질 끌고 가는 한 가냘픈 예술가의 혼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의 부모 역시 예술가의 피가 흐른다. 대학교 미술 동아리에서 만난 둘은 모두 졸업 후 교직에 발을 디뎠다. 그는 “동생이 미술을 하는 건 당연한데 나는 돌연변이”라고 했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이이언.
그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음악은 그저 광적으로 좋아하는 취미였다. 논리로 딱 맞아떨어지는 컴퓨터의 세계에 매료된 그는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로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계속 음악작업을 했지만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연세대 전파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전공 공부를 하면서 회의가 들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결과가 정해져 있어요. 누가 하든지 간에 효율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리에이티비티가 없는 작업이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일었어요. 그게 바로 음악이었죠. 음악을 컴퓨터로 하고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네요.”

그는 ‘생활인이자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 작업 스타일 때문에 점점 외로워지고 예민해지는 걸 경계한다. 그래서 그는 일명 ‘쓰레기 놀이’를 자처한다. “작업을 많이 한 후에는 게임이나 미국 드라마 시청, 인터넷 서핑 같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균형을 맞춰요.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이죠.” 골방에서 뛰쳐나와 일상의 열린 공간에서 버무려진 그의 우울과 슬픔의 색채가 궁금하다.

사진 : 이란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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