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61) 허연 〈후회에 대해 적다〉

사랑하라, 마시고 춤춰라!

“혼자 아프니까 서럽다”는 낡은 문자를 받고, 남은 술을 벌컥이다가 덜 자란 개들의 주검이 널려 있는 추적추적한 거리를 걸었다. 위성도시 5일장은 비릿했다.

떠올려보면 세월은 더디게 갔다. 지금은 사라진 하숙촌에서 나비 떼 같은 사랑을 했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자동차 앞 유리창에 가득할 때도 그게 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아득해지지 않았으니 세월은 너무 더디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아득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나를 울린 건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은하열차처럼 환한 전철 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서 있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남은 술을 혼자 벌컥이고, “지금은 사라진 하숙촌에서 나비 떼 같은 사랑”을 회고하며, 비에 추적추적 젖어 개 비린내를 풍기는 위성도시 오일장 거리를 걷고,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지리멸렬〉)고 중얼거리고, 다들 전철 속으로 성급하게 뛰어들 때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망연히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더 이상 젊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연의 시집에 등장하는 화자(話者)들은 시인 자신의 나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40대 중반인 그들은 희망보다는 허망함이, 생에의 파릇한 욕구보다는 견뎌야 할 날들의 지리멸렬함이 더 많은 중년의 난감함에 직면한다.

그들은 몽골 초원도 아니고, 사하라 사막도 아니고, 아마존의 원시림도 아니고, 히말라야 산중도 아닌, 거대도시 서울을 삶의 자리로 삼은 자들이다. 사람은 다르게 태어나서 결국에는 닮는다. “인간은 문화적 공간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생물학적 존재”(움베르트로 R. 마투라나, 게르다 베르덴-촐러, 《사랑과 놀이》)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각자의 유전자이고, 내면적 형질의 유사화를 꾀한 것은 메가폴리스라는 인공적 환경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규범과 제약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무한경쟁을 치른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의 전리품에 승리의 기쁨은 어디에도 없다. “먹어야 사는 저주는 생의 어느 순간에서든 균일하다”(〈역류성 식도염〉)는 건조한 깨달음만 있다. 그들은 “밥을 먹고 나서 문득 밥이 객관화될 때, 사랑이 몇 번의 호르몬 변화와 싸움질로 객관화될 때, 욕망이 남긴 책임이 나를 불러 세우는 순간”(〈화자(話者)〉)과 마주친다. 그들에게 “위대한 세기”는 없었고, “생은 늘 허망”했고,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억은 말라가”는 중이다(〈미이라 2〉). 그들에게 “미래는 서툰 권력”(〈어떤 방의 전설〉)이고, “지금 이 생이 무덤이다. 생은 우리들의 무덤이다. 생무덤이다”(〈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허연의 시적 화자들은 어젯밤 술 냄새에 진저리를 치고, “숨죽이며 발목을 잡는 건 자책”(〈덧칠〉)뿐인 중년이라는 생의 중간지대에서 난감함과 싸운다. 그 난감함이 내면에서 비벼지면서 입술에서 탄식과 같이 한마디가 뱉어진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그들은 마치 길을 잃어버린 자와 같이 중얼거린다. 삶은 스스로 꾀하는 자기최적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가끔 속도방지턱을 넘는 자동차와 같이 삶이 요동치는 난감한 순간도 있다. 그 난감함의 결과물로 제출되는 게 후회다. 그래서 “후회한다. 돌아가고 싶다. 내가 짓고 내가 허물었던 것들에게.”(〈무념무상 2〉)라고 적었을 것이다.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서 후회할 일도 덩달아 많아진다. 후회란 과거사가 되어버린 경험의 반추에서 나온다. 과거사란 미래의 가능성을 잠식해버리고 화석화된 삶이다.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키려고 해서는 안 되는 시간들. 오늘의 나를 규정하는 시간들.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를 이루고 어떤 존재가 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어떤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칠 때 우리 안에 축적된 많은 후회의 경험들은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나 동기가 된다. 이제 미래를 감지하는 촉수는 닳아 사라지고, 그와 함께 의연함과 창의성, 그리고 영성도 사라진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뭔가에 열광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전설 속에 나오는 아이들을 꾀어 어딘가로 데려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열광하지 않게 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경이에 감탄하고, 발견과 창조의 기쁨에 예민한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호기심을 잃고 더 자주 통제하는 뇌에 지배당한다. 우리는 점점 더 관습과 규범에 종속된 채 밥벌이에 매달리는 나이 먹은 영장류의 둔중함에 빠져버린다.

대개는 잊고 사는데, 우리는 누구나 종(種), 가계(家系), 족(族)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살아 있음으로 종, 가계, 족의 승리를 증언하는 존재란 뜻이다. 허나 중년이란 진화가 멈춰버린 종의 다른 이름이고, 대개는 실패한 호르몬의 집적체다. 그들의 “호르몬은 늘 과거를 향한다./내일은 죽었고 과거는 자유롭다.”(〈P는 내일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중년이란 던져주는 먹이를 붙잡고 전투적으로 배를 불린 동물원의 사자와 닮는다. 허망한 눈빛을 하고 “혼자 아프니까 서럽다”든가 “불행하다”고 되뇌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자의 공연한 울적함과 체념감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것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공활동(vacuum activity)”에 해당한다. 진공활동이란 필요나 자극 없이 일어나는 행동이다. 결국 진공활동은 좌절과 체념 상태로 이어진다. 뇌 안에서 도파민 분비가 적어지면서 뭔가를 이루려는 추구 및 추진 시스템과 보상 시스템도 시들시들해진다.

호라티우스는 “인생은 짧다. 희망을 크게 가지지 말라”고 썼다. 희망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다. 희망을 적게 품으라는 말이다. 호라티우스의 격언은 도시적 멜랑콜리가 짙게 스며든 허연의 우울하고 쓸쓸한 시들의 전언과 상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봐야 한다. 나날의 삶이 희망을 배신한다 해도, 이 도시에 낭패를 당한 천사,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만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살아봐야 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살아야 할 가장 숭고한 이유다. 우리는 삶이라는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면,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는 게 사랑”(〈신전에 날이 저문다〉)이라 하더라도 지치지 말고 사랑하라! 마시고 춤추고 사랑하는 동안 인생의 우기(雨期)는 지나가고 말 테니까!


허연(1966~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놓쳐버린 막차의 뒤태를 바라보는 일”(〈사선의 빛〉)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철은 통제의 최소 단위다”(〈아침 산파〉)라는 인식, “철제 계단을 감당하면 그 다음 골목들과 간판들과 주택들.”(〈어떤 방의 전설〉), 혹은 “버스 노선을 외우고 밤마다 모텔들에 불이 훤하고 계급은 잠들지 않는다”(〈계급의 목적〉)와 같은 경험들로 유추해보건대 그의 시적 상상력에 도시적 멜랑콜리가 스며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는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와서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다. 시인으로서 평탄한 출발이다.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를 펴냈다. 그의 오랜 생업은 경제신문의 기자다. 지금도 매일경제신문의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며 밥벌이를 하는 중이다. 그의 친구 중에는 부처를 알고 시를 떠났거나, 잠든 딸아이를 보다가 더 이상 황폐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를 버린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꿋꿋하게 시를 쓴다. 그도 별자리 이름을 많이 알았거나 목청이 좋았다면 시를 버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의 경험은 서울에서 주거지를 둔 40대 중년남자의 평균적 삶에 귀속한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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