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에세이 펴낸 소설가 김형경

21세기는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고 본성을 탐구하는 영성과 치유의 세기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세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성에》 《꽃피는 고래》 등 탁월한 심리 묘사로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소설을 발표해온 소설가 김형경은 심리 에세이 작가로도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스스로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유아기 때의 생존법을 버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가자”고 말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스님이 내리치는 죽비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 2월 새로운 심리 에세이 《만가지 행동》을 펴낸 그는 2006년부터 펴낸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도 재출간해, 서점가에는 그의 심리 에세이 4종이 나란히 꽂혀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형경씨는 뽀얀 얼굴에 연보라색 셔츠가 썩 잘 어울렸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에서 여유와 웃음이 번져 나왔다. 20대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른일곱 살이던 1997년부터 정신분석을 받았다고 한다.

“서른다섯 무렵부터 제 인생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았어요.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심한 우울증이었지요. 그때까지 살아온 내 생존법은 유아기 때 만들어 가진 것이었습니다. 삶의 목표와 관점,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그걸 못 하고 있어서 아팠던 것입니다. 유아기부터 성장기까지의 삶을 이끄는 에너지는 부모의 못다 한 꿈이나 결핍감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으면 부자가 되는 게, 부모가 아팠을 경우 의사가 되는 게 꿈이 되지요.

그런데 중년은 그 꿈이 이미 성취되어 더 이상 꿈을 찾을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지거나, 혹은 그 꿈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때입니다. 제 경우 ‘내가 왜 소설을 이렇게밖에 못 쓰지? 틀림없이 잘 쓸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시달렸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유아기 생존법 때문이었어요.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 끊임없이 내부검열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맘껏 쓰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지요. 그때까지 가져온 미숙한 생존법을 이해하고 난 다음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게 되었어요. 내 생각에는 마흔 살 이후 더 잘 쓰게 된 것 같아요.(웃음)”

그는 “심리치료의 핵심은 유년기에 만들어진 왜곡된 자기 이미지, 미숙한 생존법, 잘못된 현실인식을 바로잡고 과거와 현재, 실제와 환상, 자기와 타인, 내면 세계와 외부 현실, 의식과 무의식 등 모든 영역을 총체적으로 정립해 자기 자신과 생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20대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하고 다른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다 웃는 농담을 들으며 너무 슬펐고, 학교에서도 살짝 말썽꾸러기였죠. 세상의 통념을 나만 다르게 생각했고요. 그 때문에 나에 대해, 인간 전체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학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는데, 글쓰기는 성장기 내내 심리적으로 나를 지켜준 도구로 무의식적으로 자기 치유의 방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심리 에세이를 계속 내게 된 배경이 있습니까?

“처음 펴낸 《사람풍경》은 원래 심리 관련 책을 쓰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어요. 여행기를 쓰면서 다른 책과의 차별화를 위해 심리 이야기를 곁들였는데, 그 후 심리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소설가인데’라는 허위의식이 있어서 이리저리 피했죠. 그러다 ‘한 군데만 쓰면서 그걸 빌미로 거절해야지’라는 속셈으로 한 일간지에서 심리 상담을 연재했어요. 그런데 그걸 책으로 펴내자는 거예요. 계속 거절하다 ‘사람들이 삶의 패러다임, 관점만 바꾸면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책을 내게 됐죠. 그게 《천개의 공감》입니다. 《좋은 이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도를 제대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펴낸 책입니다. 애도이론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별한 정신 상태를 연구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되었죠. 영국의 경우 전쟁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 국가가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습니까? 나라를 잃은 데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 상처투성이인데 아무도 그 심리적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 결과 병리적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고, 가난하고 불행해질까 불안에 떨었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불안해서 못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경험에서 비롯된 불안과 분노, 파괴성, 가난의 경험에서 비롯된 시기심을 못 떠나보내서 이렇게 지금의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냈습니다. 《만가지 행동》을 내게 된 것은 사석에서 만난 후배들이 자꾸 정신분석을 받은 후 어떻게 변해왔는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달라는 거예요. 정신분석으로 통찰을 얻은 후 어떻게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는지 100% 내 이야기를 썼습니다.”


소설과 심리 에세이를 쓸 때 자세가 달라지나요?
독자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지요?


“2001년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낼 때는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후 한 가지씩 주제를 잡아 한 번은 소설로, 한 번은 에세이로 풀어냈죠. 인간의 마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책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과 《사람 풍경》이고,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근간이 되는 성과 사랑, 관계 맺기를 다룬 책이 《성에》와 《천 개의 공감》입니다. 상실과 애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꽃피는 고래》와 《좋은 이별》이고요. 이제는 소설을 쓸 차례지요. 소설이 스토리와 플롯, 언어 등 여러 요소로 둘러싸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반해 심리 에세이는 쉽고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줍니다. 그런데 에세이를 냈을 때 반응이 더 폭발적인 거예요. 처음에는 ‘난 소설가인데’라는 의식이 있었지만, 에세이도 문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심리 에세이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완성되면 한 세트로써 내 문학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심리 에세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왜 그렇게 뜨겁다고 생각합니까?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냈을 때 한 친구가 ‘이 책은 앞으로 100년간 읽힐 것 같다’고 했습니다. 20세기가 전세기적으로 분쟁과 갈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본성을 연구하는 영성과 치유의 세기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 내내 상처를 받았는데 치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제 책들이 계속 읽히는 것 같습니다. 제 책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부터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읽는다 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불안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을 보면 놀랍고 가슴 아픕니다. 부모가 치유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불안과 분노를 그대로 흡수하게 됩니다.

대학입시에 사생결단하는 것도 사실은 부모의 불안 때문이지요. 도토리 속에는 이미 상수리나무가 될 정보가 다 있다 합니다. 환경만 잘 조성해주면 도토리가 잘 발아되어 개성화, 자기실현을 이루는데, 부모의 욕심과 불안이 칼날이 되어 그걸 분재하고 있어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면서 성숙한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에 선택권을 빼앗아버리니 의존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뭔가를 선택하고 자율적으로 해야 할 때 불안해하죠.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취약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과 심리치유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무엇입니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세 문장이 쓰여 있어요. 아전인수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존성, 결핍감, 시기심, 자동강박반복추구에서 벗어난 상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불안, 분노, 공포, 방어기제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 ‘나는 자유다’는 인정받고 지지받고자 하는 욕망이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 내면의 감독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융 학파의 심리학자 매튜 폭스는 자기실현에 이르는 방법으로 ‘신비주의 회복하기’를 제안합니다.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 과학과 신비를 의식 속에서 통합해야만 온전한 건강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사진 : 원동현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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