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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편혜영

질문을 남기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순간의 공포를 포착해내는 소설가 편혜영. 그가 최근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를 냈다. 2000년 등단한 그는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1년 동인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와 장편소설 《재와 빨강》을 썼다.
광화문의 한 골목에서 편혜영을 만났다. 앙상한 다리로 비탈을 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몸이 약해 보여서 사람들한테 괜한 걱정을 자꾸 끼쳐요. 알고 보면 저 되게 튼튼한데” 하며 배시시 웃는 그와 카페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뒷모습

그가 쓴 소설은 그의 뒷모습 같다.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러하듯 소설 표지를 펼칠 때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소설 표지사진 속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소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단단한 막을 뚫는 그의 묘사는 거침없다.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에는 피, 내장, 시체와 같은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며 잔혹극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후 발표한 소설에서는 좀더 정제된 언어로 일상에 잠재된 위험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 어그러지는 과정은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서쪽 숲에 갔다》는 숲 근처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출입이 금지된 미지의 숲. 어느 날 숲을 지키던 관리인 이경인이 사라진다. 소설은 그의 동생 이하인이 형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던 이하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이경인의 후임 관리인 박인수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하며 묵묵히 살아간다. 내면을 간파해내는 작가의 글쓰기는 그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두려움을 찾아내 그 실체를 파헤친다.

독자들을 만나면 “저 위험하지 않아요” 하고 먼저 말을 건다는 그는 스릴러물을 즐겨 보는지 묻자 고개를 젓는다. “즐긴다기보다 오히려 무서워하는 쪽이에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제가 무서워하는 상황을 떠올리죠. ‘내가 무서우니 분명 이 인물도 무서워할 거야’라고 상상하면서 써요.”

《서쪽 숲에 갔다》의 배경이 되는 공간으로 숲을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위로를 주는 대상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급변하는 숲의 이미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정해진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 숲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산책로를 벗어나는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미로가 되죠.”


안개 속에서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안개 낀 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소설 속 인물도, 그들이 벌이는 사건도, 소설의 결말도 모두 조금씩 흐려져 있다. 《재와 빨강》에서 주인공은 아내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추격을 받지만, 정작 스스로도 자신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 《서쪽 숲에 갔다》에서도 이경인이 실종된 원인 중 일부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내가 독자들을 답답하게 하는구나.”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그의 소설에는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한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실종이라는 상태의 모호함이 제 마음을 끄는 것 같아요. 분명히 살아 있던 인물이 살아 있다고도,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가 되는 거죠.”

모호한 상태를 즐겨 표현하는 이유는 인간사가 하나의 사실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원인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건을 하나의 이유로 해명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소설을 써내려가기 때문에 모든 게 명확하지 못한 게 아닐까요.”

소설가는 사건의 원인 중 일부를 생각하고,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질문 하나가 남은 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은 매번 읽는 이의 기대를 빗나가지만, 읽고 난 후의 여운이 길다. 예상을 벗어났던 대목을 자꾸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기분이 크게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정서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대신 제 소설을 읽은 후에 사람들이 주변을 한번쯤 두리번거렸으면 좋겠어요. 옆 사람도 힐끔 쳐다보고, 자신의 모습도 들여다보고요.”


겨우겨우 하나씩

그는 말할 때 부사를 즐겨 쓴다. 요즘 많이 쓰는 부사는 ‘겨우’다. 힘들지만 해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소설가로서 그의 여정을 함축해놓은 말 같다.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에 2년간의 짧은 습작기를 거쳐 등단한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하지만 등단 후 몇 년 동안 그는 소설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어떤 소설을 써야 즐거운지를 몰랐던 것 같아요. 등단 초기에는 전통적인 구조의 소설을 많이 썼는데, 그런 소설을 쓸 때는 순간적인 희열을 느낄 수 없었어요.”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에 수록된 〈맨홀〉은 그에게 맞는 소설을 찾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맨홀〉을 쓰면서 구체적인 시공간을 벗어난 작품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작품을 쓰면서 제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소설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맨홀〉은 도시의 맨홀 뚜껑 아래, 하수구에 사는 아이들을 그린 소설이다. 과학잡지에서 본 몽골 아이들의 하수구 생활 이야기를 토대로 썼지만, 작품 속 공간은 어떤 도시의 이야기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추상적이다. 〈아오이가든〉 속 공간인 아오이가든도 중국에서 사스 환자가 가장 처음 발생한 아파트인 ‘아모이가든’을 변형시켰지만,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는 소설 창작을 집짓기에 비유한다. “처음에 소설이 어떤 식으로 지어질지를 상상하는 단계는 굉장히 재밌어요. 그런데 소설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지어나가는 단계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그 단계에서는 제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죠.”

이미지와 언어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빈틈을 메우는 일이 작가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다. 그 역시 언어가 생각했던 이미지를 따라가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 “소설을 쓸 때 생각대로 잘 써지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장면이 있어요. 그럴 땐 그냥 쓰는 걸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요. 그러다가 이전에 막혔던 장면을 자연스럽게 다시 떠올렸을 때 그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죠. 저는 글을 쓸 때 자주 쉬어요. 그런 순간이 자주 오거든요.(웃음)”

반면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옮겨갈 때는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그는 이 감정을 “행복”이라 표현한다. 그가 매번 글 앞에서 망설이면서도 다시 글 앞에 서게 되는 이유다.

사진 : 하지영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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