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60) 김태형 〈어제는 지나가지 않았다〉

심중에 남은 말 한마디

갓 태어난 짐승의 비린내가 났다
젖은 혓바닥이 내 마른 얼굴을 핥고 갔다
속엣말을 나도 모르게 꺼낼 뻔했다
한마디로 딱 잘라버릴 수 있는
그런 말이 아니었다
진흙구덩이 속에서 참으로 느리게 머뭇머뭇
기어 나올 말이었다
그러나 배를 딴 죽은 생선의 내장같이
울컥 쏟아져 나올 그런 말이었으리라
부끄러운 말이었으리라
먼 눈빛 속에서 별들은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제 속으로 단단히 박혀 있었다
오래된 벽이 하나 있었다
남은 힘을 다해 붉은 녹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제는 지나가지 않았다〉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모호하다. 그 모호함은 ‘나’와 ‘당신’ 사이에 있는 “갓 태어난 짐승의 비린내”와 “젖은 혓바닥”과 “속엣말”을 잇는 맥락의 모호함에서 생겨난다. 그것을 더 축약하면 짐승-혀-말이 될 텐데, 이것들의 맥락은 서로 이어지기는 이어지되 그 사이는 아득하다. 갓 태어난 망아지나 강아지 같은 짐승 새끼의 비린내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아직 눈도 못 뜬 채 벌거숭이 작은 몸뚱이로 세상에 내던져진 그것들은 작은 몸뚱이로 더운 김을 뿜어내면서 비린내를 풍기는데, 이때 비린내는 생명 됨의 시작을 세상에 선포하는 나팔 소리다. 갓 태어난 짐승은 혀를 가졌고, 그 짐승의 입 속에 숨은 젖은 혀는 먹고 사랑하고 말을 하는 혀일 테다. 허나 그것은 짐승의 혀이므로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한다.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내일 만났으면 한다고, 하지 못한 말들은 속에 남은 말이 될 테다. 사랑은 말 이전에 있는 것이지만, 사랑은 말을 통해서 비로소 몸을 얻고 세상에 제 존재를 드러낸다. 말이 채 되지 못한 사랑은 부화에 실패한 알들이다. 끝내 새가 되지 못한 알들은 하늘에 제 날갯짓을 보여줄 수도 없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다. 말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내부들, 그 안에서 들끓는 느낌과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생겨났다. 말은 ‘나’의 가슴에 고인 ‘당신’을 향한 사랑을 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나’와 ‘당신’을 잇는 것은 말길이다. 그래서 말은 ‘나’와 ‘당신’을 이으면서 사랑의 엄격하고 외로운 과업들을 수행한다. 말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욕망을 가졌으며, 궁극적으로 ‘나’의 존재를 세계에 현시하는 도구다. 말이 사람 몸-영혼의 확장이라면, 사람은 말 그 자체다. 말이 곧 사람이니 말이 없다면 ‘나’와 ‘당신’의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는 것은 그 말이 누군가의 숨결이고 누군가에서 전해지는 사랑의 전언(傳言)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귀를 대고 있다. 심지어 빗소리마저 내 얘기를 듣기 위해 귀를 댄다. 보라, “마치 내 얘기를 들으려는 것처럼/오히려 가만히 내게로 귀를 대고 있는 빗소리”(〈당신이라는 이유〉).

말 중에서도 “속엣말”이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울컥 쏟아져 나올 뻔했던 속엣말은 무엇이었을까. 속엣말은 발화되지 않은 말, 그래서 침묵으로 남은 말이다. 시인은 그것이 끝내 해서는 안 되는 말, “진흙구덩이 속에서 참으로 느리게 머뭇머뭇 기어 나올 말”이고, “배를 딴 죽은 생선의 내장” 같은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이라는 맥락에서 얼른 김소월의 〈초혼〉이 떠오른다.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초혼〉에서 들어줄 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들어줄 이가 이승에 없는 사람이니 그 말은 끝내 심중에 남은 말이 되고 말았다. 〈초혼〉에서 그의 이름을 그토록 부르는 것은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 때문이다. 사랑은 말의 춤판이다. 그 말의 춤판이 불발되었기에 그게 끝내 한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어제는 지나가지 않았다〉에서의 그 말은 발화되지 않은 속엣말이고, 아울러 “부끄러운” 말이다. 그 말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말이다. 왜 부끄러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는 탓에 다른 시편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시인은 제 말이 “진흙구덩이 속에서 참으로 느리게 머뭇머뭇/기어 나올 말이었다”고 썼다. 시인의 무의식에서 말은 뱀으로 변주된다. 시인은 〈진흙구렁이〉에서 말은 “내 혀를 씹어서 뱉어낸 것처럼/한 마리 진흙덩이 뱀이 되어 있어요”라고 적는다! 뱀은 “알몸으로 이 흉측한 벌거벗은 몸”이고, “이렇게 더러운 몸이 되어/내 몸을 자꾸만 씹어 삼키고만” 있는 뱀이다. 말은 뱀이라는 부끄러운 현존을 입고 자꾸 자기를 씹어 삼킨다. 자기를 삼켜 고갈에 이르고 만다. 끝내 못다 한 말은 진흙구렁이가 되어 “길바닥에 한줌 흰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속엣말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들을 수 없는 말을 수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시인은 몸으로써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들을 수 없는 말들은 먼저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몸으로 울리는 누군가의 떨림을/내 몸으로서만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코끼리주파수〉)고 적는다. 애초에 ‘나’는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이고,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이며, “밤바람을 깨워서라도/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고(〈당신 생각〉). 그 말은 ‘당신’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없었다면 할 말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다. 위의 시에서 짐승-혀-말은 ‘나’와 ‘당신’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다. 그러나 그런 다리는 애초에 있지 않았다. 그 말은 발화되지 않은 채 가슴에 묻어버렸으니까! 그러므로 ‘나’와 ‘당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부재한다. 다만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름없다. 오늘이 어제와 다름없으므로 오늘은 어제의 이어짐이고, 어제는 지나가지 않은 것이다. 사랑의 말들이 발화되지 않은 채 지나가버린 어제는 오늘에 와서 반복한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잠시도 잊을 수 없는 ‘당신’과의 관계가 부재하는 현실을 견디는 일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오래된 벽이 하나 있었다/남은 힘을 다해 붉은 녹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구절이 그것을 암시한다. ‘나’는 생명의 말랑말랑함을 잃어버리고 오래된 벽으로 굳는다. 벽은 딱딱하게 굳은 채 서서 붉은 녹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곧 ‘나’의 눈물이다. 그 색깔이 붉은 것을 보니, 그것은 피눈물이다!



김태형(1970~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시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고, 끝내 시인이 되었다. 그와 나는 여러 인연으로 닿아 있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인 그가 보낸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청년시절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사나운 눈발 속으로 발자국도 없이/검은 늑대가 달리는 계절”(〈내가 살아온 것처럼 한 문장을 쓰다〉)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몇 년 뒤 그는 내가 주관하는 시 전문잡지 <현대시세계>에 작품을 투고해 등단한다. 그는 군복을 입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 뒤로 그는 간간이 지면에 시를 발표했는데, 나는 그 시들에서 그가 어떤 부재와 결핍과 싸우면서 힘겹게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내면에는 “더러운 굶주림”(〈들개〉)이 있었다. 그가 안고 있는 부재와 결핍은 존재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더러움이다. 그의 시는 그 더러움이라는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넘어서려는 도약의 장대다. 더러는 주먹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눈물이 되기도 하는 시가 없었다면 그는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시인 아닌 그 무엇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이제 그는 한 집의 가장이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도 꿋꿋하게 시를 쓴다. “제 몸을 사각사각 먹어치우는 눈먼 애벌레”거나 “진흙 먹은 울음소리로 자기를 뚫고 가는 지렁이”(〈내가 살아온 것처럼 한 문장을 쓰다〉)와 같이.

사진 : 김선아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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