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곡예술마을·나음홀 운영자 장은훈·이종례 부부

클래식 무료 음악회,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위한 노력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국악고등학교 인근에는 ‘나음홀’이라는 120석 규모의 소극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저녁마다 음악회가 열린다. 유명 연주자에서부터 무대 경험이 필요한 신인 음악가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연주의 수준은 높지만 대부분의 공연이 무료여서 누구나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 한국가곡예술마을 장은훈 대표와 부인 이종례씨는 ‘클래식을 통한 문화 보급’이라는 사명감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
성악가인 장은훈 대표는 스스로를 ‘문화운동가’라 부른다. 우리 가곡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그는 나음홀을 내기 전인 2003년, 고향인 전남 순천 문유산 자락에 6만6120㎡(2만여 평)의 부지를 구입해 한국가곡예술마을을 세웠다. 낙후된 지역에 생태와 문화를 접목한 시설을 만듦으로써 마을을 발전시키고 점점 잊혀가는 우리 가곡을 되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해발 400m의 고지대라 늘 쾌적한 바람이 들고 나는 땅에 그는 연주 공간을 만들고, 황토로 집을 지어 연주자들의 숙식 장소로 제공했다. 서쪽으로는 선암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매화꽃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주말이면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와 청중이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만나 산중 음악회를 열었다.

가곡예술마을에서 음악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과 순수 예술이 정신문화를 고양시키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깨달은 그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마침 그가 지휘를 맡고 있던 강남여성합창단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나음홀’이다. 그래서 장 대표는 1주일에 4일은 서울의 나음홀에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은 순천에서 보낸다. 원래 나음홀은 강남구 대치동에 있었다. 음악인들을 위한 무대이자 신진 미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겸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출발했다. 나음홀 설립 이야기가 나오자 부인 이종례 실장이 장 대표의 말을 거들었다.

“순천에 가곡예술마을을 낼 때만 해도 이해는 안 됐지만 그러려니 했어요. 당시 남편은 실력을 인정받아 큰 오페라 무대에 자주 섰고, 순복음교회 합창단 지휘, 대학원 강의, 개인 레슨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성악가로서도 순탄한 길을 걸었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곡예술마을을 짓겠다며 그 모든 일을 다 접은 거예요. 부지는 넓어도 워낙 오지라 땅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월세가 나가지 않으니 말리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어요. 대치동이라고 하니, 월세 생각에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아내의 걱정대로, ‘좋은 문화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무료 공연을 하다 보니 운영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남편의 꿈을 위해 아내는 팔을 걷어붙였다. 대치동이 학부모 모임이 많은 지역인 데 착안해 공연이 없는 낮 시간에 조용히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했다. 질 좋은 경산 대추를 하루 종일 달인 대추차와 이 실장이 솜씨를 발휘해 만든 연잎밥은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늘 예약이 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나음홀이 음악보다 대추차와 연잎밥으로 더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마침, 지난해 7월 공연장 전체가 물에 잠기는 수해를 입어 문을 닫았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나음홀은 음악 전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경제적으로는 큰 손실을 입었지만 부부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민을 덜었다”며 즐거워했다. 음악인은 아니지만 나음홀을 운영하며 어느새 남편과 같은 꿈을 꾸게 된 아내. 그가 온라인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대 뒤 예술가’가 무척 잘 어울렸다.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나음홀은 이제 음악인들 사이에서 제법 입소문이 났다. 명망 있는 연주자도 흔쾌히 무대에 서고 싶어 하고, 클래식 음악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부담 없이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특히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 같은 큰 무대에서의 연주가 예약된 음악인들이 그 프로그램 그대로 리허설을 겸해 청중과 만나는 ‘미리 듣는 음악회’는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다.

순천 문유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한국가곡예술마을.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 연주에는 또 다른 감흥이 있어요. 처음에는 긴장하던 연주자들도 ‘미리 하는 음악회’를 거치면 예습의 효과가 있어 본 연주회 때 훨씬 컨디션이 좋다고 합니다. 일정 문제 등으로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음악가 중에는 오래 준비한 연주를 큰 무대에서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쉽다며 앙코르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클래식 음악이라면 큰 공연장에 정장 입고 가서 반듯한 자세로 앉아 감상해야 할 것 같아 거부감을 갖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기서는 수준 높은 공연을 부담 없이 편안하게 접할 수 있어 관객들이 무척 좋아해요. 힘들어도 관객이나 연주자 양쪽에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장은훈 대표)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장 대표는 이탈리아로 유학, 베네치아 국립음악원을 최우수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뛰어난 실력으로 여러 오페라 무대에 섰지만 그는 우리 가곡이 잊혀가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 특히 인성교육을 위해 청소년들이 가곡을 많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의 정서에 맞는 가사와 곡, 창법을 만들었다. 이른바 청소년 가곡인, 청가(靑歌)다. 또한 우리의 구강 구조에 맞게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창법인 본이가(本吏歌, 근본을 다스리는 노래)와 젊은이들이 즐겨 부를 수 있도록 ‘한국가곡발라드’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오페라는 제가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지만 가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많이 불러야 발전하지요. 그러려면 부르도록 만들어야 하고요. 저는 아름다운 노랫말, 아름다운 선율의 가곡을 많이 부른 청소년들이 좋은 인성을 가진 인재로 성장해야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나음홀 같은 무대가 전국 곳곳에 생겨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토양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문화적으로 한층 성숙해지겠지요. 그것이 제가 음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후원자도 회원도 없이, 대관료나 가끔 입장료를 받는 몇몇 공연과 장 대표가 레슨을 통해 얻는 수입 등으로 어렵게 꾸려가고 있지만 부부는 음악 속에서 마냥 행복하다. 두 사람이 굳게 맞잡은 손은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음악인들에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