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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집〉 낸 피아니스트 임현정

제가 유투브로 뜬 클래식 스타라고요? 베토벤에 미친 피아니스트랍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는 강렬했다. 피아노를 집어삼킬 듯한 폭발적인 에너지, 작품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열정, 작품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이에게서 뿜어 나오는 자신만만함…. 지난 5월 말,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데뷔 쇼케이스에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8번 ‘비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아직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익숙지 않은 이름이지만 전 세계가 지금 이 피아니스트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에서 ‘왕벌의 비행’을 가장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데뷔 앨범으로 낸 용감한 피아니스트”인 그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음반을 내놓은 지 한 달도 안 돼 애플 아이튠즈 클래식 음반 1위,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 1위를 기록 중이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기록들이다. 그는 1988년 정경화, 1991년 사라 장, 1993년 장한나, 2002년 임동혁에 이어 EMI와 10년 만에 계약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한국에 잠시 들른 임현정을 만났다. 그의 옆에는 어머니 이계남씨도 있었다. 베토벤 음반 발매 후 임씨는 어머니를 꼭 모시고 다닌다고 했다.

“2년 반 만에 한국에 왔어요. 그 기간 동안 엄청난 일들이 많이 터졌죠. 연주도 부쩍 많아지고 베토벤 음반을 발매하고 라벨과 스크랴빈 음반 녹음까지 했으니까요. 5월 한 달만 해도 스위스, 뉴욕, 런던, 한국, 일본에서 일정이 있어요. 시차가 뒤죽박죽이어서 밤낮 없는 생활을 하고 있네요. 하하하하.”

그의 말투는 연주 스타일을 꼭 빼닮았다. 빠르고 거침없었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르르 답을 내놨고, 툭하면 하이톤으로 “하하하하” 웃어댔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데뷔 음반으로 선택한 이유를 먼저 물었다.

“최연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곡가에게 열정적으로 미칠 듯 빠지는 건 예술인의 삶에서 몇 번 오지 않아요. 베토벤의 인생에 너무너무 열정적으로 빠져서 인간 베토벤, 음악가 베토벤에 대한 흥미가 많았어요. 베토벤의 일기장, 베토벤이 쓴 편지, 베토벤에게 온 편지, 베토벤이 알고 지낸 사람들이 했던 말들 등 찾을 수 있는 자료를 모조리 찾아서 공부했죠. 저 자신보다 베토벤을 더 잘 알게 됐어요. 베토벤과 함께 사는 것 같다니까요. 베토벤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자지도 못할 것 같았어요.”

이 겁 없는 25세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대한 리뷰를 보면 그의 이런 자신감이 그저 한 음악가에 대한 미칠 듯한 열정에서 비롯된 자아도취는 아닌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지적인 분석과 감정적 몰입이 매우 신선하고 강력했다”고 했으며, 영국의 피아니스트 제임스 로즈는 〈텔레그라프〉지에 “음악을 위한 비아그라(Musical Viagra)-죽어가던 베토벤에 대한 나의 사랑을 되살려준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라며 “대부분의 아시아계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들이 그저 ‘피아노 로봇’처럼 연주만 잘한다는 편견을 임현정은 산산조각 내버렸다. 임현정의 이번 데뷔 앨범은 세계 클래식 음반시장을 구원해줄 작품이 될 것이다. 앨범 20장을 사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고 평했다.

임현정은 피아노 연습 시간 못지않게 작곡가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어쩌면 연습 시간보다 연구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작곡가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은 물론, 심리학・철학・역사・정치까지 공부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피아노 연습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만 한다. 의무적으로 연습하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임현정은 ‘왕벌의 비행’ 유투브 연주 동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그래서 ‘유투브가 발굴한 클래식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이 수식어를 자못 억울해했다.

“벨기에에서 쇼팽과 라벨의 곡으로 리사이틀을 마치고 앙코르 곡으로 ‘왕벌의 비행’을 연주했는데, 카메라 감독님이 찍어서 유투브에 올린 거예요. 그것 때문에 갑자기 뜬 건 아니거든요. 하하하. EMI에서도 유투브 때문이 아니라 제가 리스본에서 라벨과 스크랴빈 연주하는 것을 보고 계약하자고 한 거예요.”

EMI 측에서 “리스본에서 연주한 것처럼만 라벨과 스크랴빈을 연주해달라”고 했을 때 이 당돌한 신예 피아니스트는 “안 된다. 나는 지금 베토벤에 빠져 있으니 베토벤 음반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EMI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베토벤을 냈고, 베토벤에 이어 2집 라벨과 스크랴빈 녹음을 끝낸 상태다. 그는 베토벤 음반을 내면서 프로듀서, 작품 해설까지 했다. 그는 “모든 작업이 베토벤의 일생을 피아노로 다시 살아보는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흔히 베토벤을 정통 있는 작곡가, 고전주의파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런 말을 베토벤이 듣는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거예요. 왜냐하면 베토벤은 그 시대에 엄청 혁명적인 사람이었거든요. 그 시대의 전통과 관습, 구태의연한 형식을 다 깨뜨리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만들었잖아요. 그 시대 베토벤이 지녔던 혁명적인 영감을 되살리는 게 연주자로서 숙제예요. 만약 베토벤이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그런 사람과는 못살 것 같아요. 어휴, 그러니까 독신이었지. 그런 혁명적인 사람과 살다가는 큰일 나지. 하하하하.”

임현정은 만 세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면 왼손을 많이 사용하게 돼서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촌언니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임씨를 피아노학원에 등록시킨 것. 집안에는 음악가 DNA가 한 명도 없다. 어린 임현정의 별명은 ‘임꺽정’이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데다 따르는 친구들이 많아 생긴 별명이다. 임현정의 꿈은 컸다. 장래희망을 물으면 초등학생 임현정은 “세계의 빛이 될래요”라고 말했다. 임현정은 피아노뿐 아니라 발레와 미술에도 소질이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발레를 접었다. 피아노보다 발레를 좋아했지만 “너는 손도 크고 발도 크니 발레리나의 체형이 아닌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그러면 발레는 다음 생애에 할게요”라며 피아노에 올인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임현정은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3남 1녀의 귀한 막내딸 임현정이 지인 한 명 없는 파리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그의 단식투쟁에 못 이겨 결국 허락했다.

“파리음악원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파리음악원은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음악 전문기관인 데다 드뷔시・라벨 같은 음악가들이 다녔고 포레가 교장 선생님을 한 곳이잖아요. 파리에서 혼자 생활하기요? 어휴, 말도 마세요. 다시 하라면 못할 거예요.”

파리로 날아간 그는 콤피엔음악원, 루앙국립음악원을 거쳐 16세에 마침내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했다. 파리음악원에서 만난 스승 앙리 바르다는 “너는 나한테 온 선물”이라며 레슨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파리음악원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최연소 입학한 그는 3년 만에 최연소로 수석 졸업했다. 동석한 어머니 이계남씨는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얘는 내 손 간 데가 하나도 없어요. ‘공부해라, 연습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만날 ‘그만 좀 해라. 하지 마라’는 말만 했지. 알아서 잘해서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그런데도 이 못난 엄마를 너무 예쁘다며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같이 찍자네요.” 이 말에 임씨는 “엄마가 왜 해준 게 없어요? 가장 큰 걸 해줬잖아요. 엄마가 저한테 주신 믿음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믿어주는데 무서운 게 어딨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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