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조각가 이재효

자연과 벗하면서 놀다 만든 작품들

이재효
1965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6년 예술의전당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민미술관, Cynthia-Reeves Contemporary(뉴욕), Albemarle Gallery(런던), Galeria Ethra(멕시코), Galerie Noordeinde(네덜란드), 성곡미술관 등에서 2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7년 한국일보청년작가 초대전 대상 수상, 1998년 문화관광부 제정 ‘98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미술 분야)’ 수상,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 조각 대상, 2000년 김세중청년조각상 수상, 2002년 우드랜드 조각상, 2005년 일본 효고국제회화공모전 우수상 수상, 2008년 베이징올림픽 환경조각 작품전 우수상 수상. 이재효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오사카현대문화예술센터(Japan), 효고현립미술관(Japan), W-Seoul Walker-hill Hotel, Cornell University Herbert F. Johnson Museum(USA), Grand Hyatt Hotel(Taiwan), Park Hyatt Hotel Washington D.C(USA), Industrial Bank(Taiwan) 등 국내외 주요 기관과 단체에 소장되어 있다.
조각가 이재효를 만난 날은 비가 내렸다. 양평 작업실에서 내려다보는, 봄이 오는 들녘은 고즈넉하고 평온했다. 자꾸 마음을 빼앗아가는 풍경이었다.

“첫 개인전 무렵인 1996년 봄이 한창 물이 오를 때, 딱 이맘때 놀러왔다가 그만 반해서 정착하게 되었죠.”

양평 생활 16년 사이 그에게는 총합 2650㎡(800여 평)에 이르는 큰 작업실과 갤러리가 생겼다. 웬만한 미술관을 능가하는 갤러리에는 그의 대형 작품들이 장관을 이루며 도열해 있다. 그는 손수 이 작업실과 갤러리를 설계했다.

“처음에는 595㎡(180평)로 설계를 시작했다가 매일 밤 설계가 바뀌어서 총 1653㎡(500여 평)이 되었죠. 설계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

0121-1110=1080815_ Stone, 2008, 151×530×285cm
자연에 둘러싸인 작업실은 품 안에 자연을 또 품고 있어서 이재효다웠다. 그의 지기인 화가 한생곤이 “재효의 작업 방식은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아이처럼 단순하고 직접적”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재효의 작업은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무표정한 도시인 서울 도처에서 자연에 대한 우리의 향수를 달래주며 서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W호텔에 설치된 나무 작품들이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식물처럼 여러 작품이 하나의 볼거리를 만드는 그의 작품은 나무의 느낌과 현대적인 세련된 조형미를 함께 전해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서양의 격언은 예술작품을 불변의 영원한 것으로 보는 서양식 사고를 보여준다. 예술이 긴 이유는 상대적으로 인생이 짧기 때문이다. 이 격언에는 유한한 인간이, 자기가 만든 인공물에 기대어 필멸에서 벗어나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런 열망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결국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동양사상은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무위자연’이라는 더 큰 사유의 장을 열었다. 이재효의 작품은 이런 무위자연의 순리를 작품으로 끌어안는다.

0121-1110=101031_ Snow, 2001, Vermont Redmill Studio
“어디서든 주워서 작업을 한다”는 그의 말대로 조각가 이재효에게 자연의 모든 것은 작품의 재료가 된다. 흙이, 나뭇가지가, 돌멩이가, 낙엽이, 눈이, 고드름이, 못이 이재효의 손을 거치면서 작품이 되었다. 낙엽을 곶감 말리듯이 꿰어서 커튼처럼 늘어뜨린 작품, 이파리를 돌돌 말아 말려서 캔버스에 빼곡히 붙여나간 작품은 자연을 벗하며 놀다가 만든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작품이다. 고충환은 이러한 이유에서 이재효의 작업을 “생태미술”이라고 불렀다.

2001년 미국의 버몬트 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는 겨울 눈 덮인 스튜디오의 정원이 작품이 되었다. 그는 눈 위를 걸어 다니면서 모양을 만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눈들은 거대한 수련이 떠 있는 듯 둥글둥글한 원 모양이 되었고, 그의 발자국은 어른거리는 물결처럼 보인다. 듬성듬성한 나무와 더불어 그것은 한 폭의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냈다. 다른 작품은 건물의 처마 밑에 줄을 매달아 고드름이 열리도록 한 작품이다. 줄줄이 매달린 고드름은 실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연스레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눈과 고드름은 녹아버리고, 이 아름다운 작품도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0121-1110=102101_ Sculpture in Woodland Ireland, 2002
2002년 아일랜드 우드랜드의 조각상을 받았던 작품은 그 숲의 나무를 모아서 구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여전히 살아 있는 나무숲에서 자연과 인공의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냈다. 못・철근 같은 인공적인 것을 소재로 취할 때도 “자연물에 가까워진 것, 인간에 가까워진 것”을 채택한다. 그래서 일부러 녹슨 것들을 취한다. 나무에 못과 나사를 박고, 표면을 갈아서 부드러운 선만 남기고 나무는 불태워 숯으로 만든다. 검게 타버린 나무와 날카로운 공격성을 잃은 못은 검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이 되어 작품이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자연발생적인 산불처럼 어쩌면 탄생은 죽음 뒤에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남 합천 출신인 이재효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예술의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98년 일본의 오사카 트리엔날레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6년간 28번의 개인전을 했으니 그 작업량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담은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10개의 외국화랑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20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는, 거대한 공방을 가진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2003년 네 번째 개인전을 할 때까지 그는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했다. 20년간 작업을 했지만, 작품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 5년간이다.

“팔 생각도 없었고, 팔릴 것 같지 않았다.”

Exhibition of Simply Beauty Centre Pasqu Art Biel Switzerland, 2006
돈이 필요하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러나 그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다. 그리고 오늘의 이재효가 되었다. 나무를 만지는 사람 특유의 정직성과 올곧음이 그에게는 있다.

“아마도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힘이 없다. 단지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녹슬고 휜 못이라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그는 언제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질감을 느끼고 거기서 떠오르는 형상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녹슨 철근을 자른 토막들이 교차로 쌓여 있는 것은 장작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고,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은 것은 새 둥지 모양을 연상시킨다. 나무토막들을 이어서 둥글게 모양을 낸 작품은 곡선에 따라 나무의 나이테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최소한의 조작으로 자연의 내부 구조의 속살을 드러내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럽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정형으로 보인다. 자연에 숨어 있는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0121-1110=104071_ W Seoul Walker-Hill Hotel Korea, 2004
“작품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빼고 돌멩이의 이야기만 전달하는 겁니다. 누가 보아도 모두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원했지요.”

즉 그의 작업은 작가라는 변수를 뺀, 영원한 질서인 상수만을 남기는 과정이다. 그것은 치우침 없는 완벽한 도형인 원이 되었다. 그가 바라본 자연의 질서는 순환의 상징이자, 가장 완벽한 도형인 원이었고 입체미술인 조각이 되었을 때 그것은 구가 되었다. 그의 말대로, 혹은 자연이라는 말이 ‘스스로 그러하듯이’라는 뜻 그대로 무엇인가가 의식적으로 되고자 하지 않는다. 못을 하나하나 박으면서 묵묵히 작업하는 날들이 쌓여간다. 그의 작품은 이런 작업과정을 반영하듯이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되는 축적적인 구조를 이룬다.

0121-1110=108114_ Stainless steel & bolts, nails Wood, 2008
그의 작품은 대형공간 설치작업부터 테이블처럼 실제 가구로 쓸 수도 있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어떤 계획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무거워서 벽에 걸 수 없으니까 바닥에 내려놓고, 그러다 보니까 위에 유리를 깔고 테이블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묵묵한 자연스러움이 한국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콘셉트 없는 것이 제 콘셉트입니다. 서양미술에서는 개념을 드러내는 게 최우선이지만 동양 작가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서양에서는 늘 ‘나’가 있고, 동양에서는 모두 ‘우리’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나’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이에는 이심전심의 어떤 느낌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작업하는 토종 한국 작가 이재효의 말이다.

특정 관념에 지배당하지 않고 묵묵한 작업의 축적과 반복은 한국미술의 최고 아름다움이라고 그는 상찬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마흔여덟의 그에게는 지나온 20년보다 더 중요한 20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는 투명한 눈과 의지가 아마 그의 중요한 등댓불이 될 것 같다. 5월 27일까지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이어지는 개인전에는 이런 이재효의 뜻을 담은 많은 조각작품을 볼 수 있다.

사진 : 이성원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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