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개념미술가 배영환

미술도 유행가처럼 위로와 치유의 도구 되어야

배영환
969년 서울생. 홍익대학교 졸업. 1997년부터 2012년까지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PKM갤러리, 삼성미술관 플라토 등에서 9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아트뮤지엄, 제3회 대만 아시아 아트비엔날레, 상하이 민생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뉴욕의 뉴 뮤지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립순수예술미술관, 소마미술관, 다름쉬타트 쿤스트할레,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제4회・5회 광주비엔날레, 제2회 부산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초빙되어 작품을 선보였다. 경기도미술관에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 등 다양하고 독특한 그만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작품은 도쿄 모리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상, 2004년 오늘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누구나 기억하는 낯익은 유행가. 이런 노래를 웅얼거리며 아픔을 달랬던 시간들. 유행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위안물이다. 작가 배영환은 알약·약솜 때로는 깨진 술병 조각 같은 치유의 재료들로 유행가 가사들을 쭉 써내려갔다. 〈유행가〉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배영환이 세 번에 걸쳐 가진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5월 20일까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진행되는 개인전의 제목은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베토벤의 원곡보다 쓰레기 수거차량이 후진할 때 나오는 음악으로 우리에게는 더 익숙해진 상황을 풍자하듯이 영어 제목은 〈Bae Young-whan Song for Nobody〉이다. ‘노바디’라고 통칭되어도 무관할, 익명의 무수한 우리를 위한 전시회다.

“미술이 유행가처럼 위로와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세상과 관련이 있다. 누구나 그 세상이 더 좋기를 바랄 터이고, 불행한 사람이 없기를 바랄 것이다. 이게 상식이고 내 작품은 그런 상식에 관한 이야기다.”

1997년 첫 개인전 이후 지난 15년간 그는 자기 말에 충실해온 것 같다. 모두가 욕망에 사로잡혀 한 방향으로 질주할 때, 우리를 멈춰 세우고 우리의 ‘몰상식한’ 상식에 딴지를 걸고 생각을 촉구하는 배영환은 ‘개념미술가’다.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진지하게 작품을 보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많은 사람이 배영환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의 이력은 간단하게 정리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2002년 제2회 부산비엔날레와 제4회 광주비엔날레,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 2005년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2007년 에르메스코리아상 후보작가전, 2008년과 2009년까지 칠레 등 6개국을 순회한 한국대표작가전, 2010년 상하이 민생미술관 전시, 2011년 제3회 대만 아시아 아트비엔날레 등 국내외 중요 전시에 한국 대표 작가로 꾸준히 참여해왔다. 올해 5월 시작되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의 기획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이 꾸준한 지지를 받는 것은 그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세계적 담론에 너무 열중해서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작가들, 반대로 골방으로 몸을 숨긴 탐미주의적인 작가들 틈에서 배영환은 굳건히 사회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사람에 대한 애정, 관심이 선행할 때 실천도 나오고 연민도 나오고 연대도 생긴다. 작품은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가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 Golden Ring - A Beautiful Hell
2012, Gold painton wood and steel, 350×350×150cm
작품의 영감, 소재, 형식 모두가 우리의 삶,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우리 헛된 욕망과 서글픈 낭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진지한 생각을 보여주는 형식은 기발하기만 하다. 검은 청동으로 된 로댕의 〈지옥의 문〉 앞에 배영환의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이 색채적인 대비효과를 내면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링은 텅 비어 있지만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다음 대결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매번 혈투의 결과 복서들은 명멸하고, 링만은 점점 부유해진다. 치열한 경쟁을 권장하는 사회현실을 요약 정리해주고 있다. 헛된 욕망으로 들끓는 현대생활의 우울과 불안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바로 〈불면증〉이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지만, 가까이서 보면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 조각 같은 거친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주 럭셔리하고도 궁상맞은’ 이 작업은 어둠 속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체는 그렇지 못한 서울의 야경과 닮았다. 욕망의 신열 속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삶이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것을 모르는 현대인의 초상화다. 불면증 시리즈의 작품 중 하나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의 소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불면증 - 디오니소스의 노래, Song of Dionysus
2008, Shards of wine and liquor bottles, steel, LED lights, epoxy, 270×270cm
배영환은 환상 없이 삶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연민과 위로는 깊다. 그는 〈유행가〉처럼 소리와 볼거리를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남자의 길〉은 버려진 자개장이나 판자들을 이용해서 만든 기타들이어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때 젊음과 저항의 상징이었던 통기타는 출세와 성공, 가부장적인 의무를 요구하는 ‘남자의 길’에서, 소리를 잃어버리고 무늬만 기타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기타로 표현된 남자들의 도열은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낸다. 〈남자의 길〉이 청각 없이 시각만 남겼다면,〈걱정-서울 5시 30분〉은 시각 없이 청각만 남겼다. 이 작품은 종없이 종소리만 들려준다. 서울 근교 열두 곳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들을 섞은 것인데,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치는 종소리는 세상의 가여운 중생을 위로하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듣지도 못하고 이러한 물건 자체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종이 보이지 않을 때 더 간절히 찾지 않겠냐”고 작가는 말한다.

유행가 - 크레이지 러브, Pop Song - Crazy Love
2006, Soju and beer bottles, enamel on wooden panel, 112×200cm
어쩌면 그의 말대로 해답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토누미나〉, 즉 “스스로 성스러운(auto-numina)”이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붙인 작품은 해답의 모색이다. 이 개념을 풀어내는 과정은 과연 배영환답게 재치가 있다. 그는 자신의 뇌파를 측정하고 그 그래프의 모습을 따라 점토를 손으로 주물러서 산의 형상을 빚어냈다. 뇌파가 산의 모양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선함과 완전함의 표상으로 여겨져온 산의 모습과 일치하는 신성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큰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 위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속에서 찾아”내는 법이니까. 이러한 자기 긍정이야말로 타인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후쿠시마의 바람, The Sigh of Fukushima
2012, Three-channel video with sound, 9min 30sec
“요즘은 불편한 소설도 안 읽고, 심각한 이야기도 싫어한다. 대화의 단절이 심각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대화의 ‘꺼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소통의 방법론이 바로 〈추상동사〉라는 개념이다. 추상명사처럼 어떤 동작이나 행위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의미를 읽어내자는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방문을 잠그고 들어갔다고 하자. 이 행동의 진정한 의미는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다. 어떤 행동에 담겨 있는 진짜 의미를 보자는 것이다. 구호가 아니라 행위이며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예술에 대한 개념 정리다. 진정한 내용이 빠진 예술은 공허하다.”

오토누미나, Autonumina
2010, Variable dimensions, CNC-milled and hand-finished oak, 87.5×159.5×70.8cm
실제로 그는 행동했다. 도서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도서관을 지어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미술작가가 간이도서관을 지어서 기증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기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아서 결국 예술가가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작년 8월에는 원전의 공포가 생생하던 후쿠시마에 다녀왔고 그에 대한 후일담을 나누는 작품 〈후쿠시마의 바람〉을 발표했다.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문제이기도 한 일본 원전사고 앞에서 그는 우리가 얼마나 타인에 고통에 대해 무감한지, 우리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사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예술가의 의무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개념미술가로서 배영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나눔이다.

추상동사 - 댄스 포 고스트 댄스, Abstract Verb - A Dance for Ghost Dance
2012, Two-channel video, 4min 53sec
“나는 상식적인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의아해한다. 상식이 의아하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짜 세계에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게 내 전시가 보여주는 것이다.”

입구에 있던 황금의 링이 진정한 황금의 영원함과 영광을 가지려면 그것이 경쟁과 대결의 장이 아니라, 대화의 장이어야 할 것이다. 모든 상처 입은 마음들이 위안을 얻는 그 순간까지 종소리들은 쉴 사이 없이 울리며 유행가도 계속 불릴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있고, 그 곁에 배영환의 작품이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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