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전수연

초등학교 제자들과 함께 음악 만드는 피아니스트 선생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겸 초등학교 교사. 전수연씨를 설명하는 타이틀은 길다. 2005년 1집 이후 1년에 한 번꼴로 꾸준히 앨범을 발표한 그녀는 지난해 5집 발매에 이어 올해도 5곡의 디지털 싱글을 선보였다. 그녀의 피아노 소리는 맑으면서도 꾸밈이 없다. 음 하나하나가 구슬처럼 똑똑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다. TV, 인터넷을 통해서도 그녀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3집 수록곡 ‘바람결에 민들레가…’와 ‘Perhaps Love’는 모두 광고 삽입곡으로 쓰였다. 이 중 ‘Perhaps Love’가 싸이월드 뉴에이지 차트 4주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며, 그녀는 대표적인 뉴에이지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 여리여리하게 마른 몸. 오산 운천초등학교 음악실에서 만난 그녀는 연주를 들으며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 명의 아이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엿듣고는 잘못 들은 게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가 아이들을 향해 “으흐흐, 선생님 귀신 같지” 하며 키득키득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자지러졌다. 봄 햇살이 비치는 오후, 교실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제가 얌전한 줄 알았다고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하하하하하” 그녀가 꺼낸 첫 마디였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연주곡 같았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다가 이내 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목소리 톤도 자유자재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연주에는 가사가 없지만,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집 수록곡 ‘Smile Smile Smile’에는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4집 수록곡 ‘소풍 가는 날’에는 소풍 가방을 메고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피아노 건반으로만 말을 걸던 그녀가 2007년 발매된 3집부터는 달라졌다. 직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노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노래 한번 불러봐도 될까요?’ 하면서 흥얼거렸는데, 제 목소리를 듣고는 녹음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기교 없이 청량한 그녀만의 음색이 돋보이는 곡 ‘Perhaps Love’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디지털 싱글을 통해 널리 알려진 팝과 가요를 그녀만의 연주와 보컬로 재해석해 부르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녀에게 아이들은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다. 음악시간, 지휘봉 대신 과자봉지를 든 선생님은 아이들이 노래를 크게 부를 때마다 “아이고, 예뻐라”를 연발하며 과자를 나눠준다. 수업 이야기를 하다 삼천포로 빠져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재밌는 일이 많아요. 그때 느끼는 감정들이 영감이 되어 곡을 쓰죠.”

하지만 아이들만큼 날카로운 비평가는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작곡을 하면 아이들에게 먼저 들려줘요.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죠. ‘이거 어디서 들어봤어요’부터 ‘그건 꽤 괜찮은 것 같네요’까지.” 아이들이 곡의 제목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5집 수록곡 ‘고양이의 하루’가 그렇다. “곡을 들려주고 ‘선생님이 고양이를 보고 지었는데, 어떤 제목이 좋을까?’ 하고 물어서 나온 대답들을 추려보니 ‘고양이의 하루’가 됐어요.”

작곡과 연주에도 아이들이 참여한다. 4집 수록곡 ‘화풍병(花,風,病)’은 초등학교 3학년 꼬마가 만든 곡이다. “피아노를 못 치는 아이인데 ‘선생님, 제가 곡 만들었어요. 들어보실래요?’ 하더니 검지로 건반을 하나씩 짚더라고요. 그 멜로디에 반주를 넣어 곡 하나가 나왔죠.” 이 곡에서 슬프고 서정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오카리나는 당시 담임을 맡은 반 아이가 연주했다. 5집 수록곡 ‘그댄 나의 단 하나의 별이지요’에는 그녀의 연주와 함께 세 아이들의 목소리가 흐른다. 세 아이가 선발된 이유는 단 한 가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아이들 스케줄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교사와 피아니스트로서 ‘투잡’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짧은 시간에 많은 곡을 만들어내는 비법은 ‘머릿속에서 곡 만들기’다. 그녀의 작곡 노트에는 듬성듬성 보이는 음표와 함께 알 수 없는 기호와 글씨들이 띄엄띄엄 쓰여 있다. “알아보기 힘드시죠? 곡 전체가 기록돼 있지 않으니까요. 일부만 적어놓고 나머지는 머릿속으로 생각해요.” ‘Smile Smile Smile’은 단 1분 만에 만든 곡이다. “아이들과 웃고 떠들면서 마음 가는 대로 썼어요. ‘이 부분은 여기, 저 부분은 저기 들어가면 되겠다’ 생각하면서요.”

그녀가 피아노를 안 건 일곱 살 때였다. 그러나 그땐 피아노가 싫었다. 하루 종일 ‘도레도레’만 하고 있으려니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단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2년 후, 친구의 피아노 연주회에 참석하고 나서 승부욕이 발동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선생님을 졸라 하루에 일곱 곡씩 배우다 보니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고, 이내 재미를 붙여 중학교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예고로 진학할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같은 곡을 수천 번 연주할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떠나 있었다. 대신 한국화를 그리고 연극부 활동도 했다. 고3 때부터 공부에 매진했고,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교대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모님 몰래 재수학원에 다니기도 했던 그녀. 그러나 교생실습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교사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 한명 한명이 다 천사인 거예요. ‘이 맛에 교사를 하는구나’ 싶었죠.”

교사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틈틈이 쓴 곡을 모아 1집을 냈고, 좋아서 하던 취미활동은 또 하나의 직업이 됐다. 그러자 좋은 곡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고, 피아노가 다시 싫어졌다.

“2집을 내고 나서 6개월 동안은 피아노 뚜껑을 한 번도 열지 않았어요. 사람들을 위로해주려고 음악을 만들었는데, 정작 제 마음이 힘드니까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작곡이 하고 싶어졌다.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열었고, 1주일 동안 피아노에 푹 빠져 작곡한 곡들을 모아 3집을 냈다. 피아노와 ‘밀당’하는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린다. “저는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 치고, 치기 싫을 땐 안 쳐요. 안 그러면 질려서 오랫동안 칠 수가 없어요.” 그녀는 피아노를 책상처럼 쓴다. 피아노 주변에 이것저것 쌓아두기도 하고, 작은 쪽지들도 덕지덕지 붙여놨다. “피아노 주변에 제 생활을 이루는 모든 게 다 있어요. 피아노 바로 옆엔 침대가 있어서 피아노를 치다가 벌렁 드러누워 잠들기도 하죠.”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한지 물었다.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동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그녀의 반주에 맞춰 ‘종달새의 하루’를 열창하고 있다.

“엄청 크게 부르죠? 삐약삐약하는 병아리처럼. 이럴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제가 가르친 걸 예쁘게 부르잖아요.”

‘긴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바뀌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좋다는 그녀에게 피아노와 아이들은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진 : 하지영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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