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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57) 여태천 〈국외자(局外者) 1〉

누구의 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이의 것인 외로움에 관하여

그는 아주 멀리 떠나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해가 뜨지 않는 곳에서 그는 회벽처럼 말랐고
아무 곳이나 들러 물건을 훔쳤다고 씌어져 있다

가자 가자, 이곳만 아니라면
노래 같은 것 부르지 않고, 마음 같은 것 훔치지 않을 것이다

한적한 주점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내내 어두웠던 2백 년의 골목이
흔들렸다

이 겨울을 보내면 그래서 또 한 시절을 견디면
오늘처럼 또 해가 뜨지 않아도
차가워진 술은 다 팔릴 것이다
그때서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편지라도 띄워봐야지

띄엄띄엄 내뱉은 말을 받아 적는다면
두고두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될지도

노래는 소문처럼 녹이 슬어 들을 수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해를 보고도
온몸의 뼈가 시렸다



여태천의 시 〈국외자 1〉은 아주 멀리 떠나서 생을 마감한 어떤 사람의 쓸쓸한 전기(傳記)를 들려준다. 그의 삶은 궁핍하다. 그래서 그는 “회벽처럼 말랐고”, “아무 곳이나 들러 물건을 훔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삶은 점점 더 황폐해진다. “가자 가자, 이곳만 아니라면/노래 같은 것 부르지 않고, 마음 같은 것 훔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따르면 그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주점에서 제 노래를 팔아 밥을 사고 술을 샀을 것이다. 온 세계를 유배지로 삼은 그는 이 삶에 진절머리를 치며 다른 삶을 꿈꾸었다.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끝없이 망가지는 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의 삶을! 그 꿈은 여전히 지체되고 유예된다. 그를 망친 것은 가망 없는 다른 삶에의 기다림이다. “기다림 속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기다림의 불가능일 수밖에 없는 시간의 부재가 군림한다.”(모리스 블랑쇼) 너무 많은 시간들, 그 시간의 과잉 속에서, 정작 시간은 시간에 대해 항상 부족하다. 이 모순이 기다림의 숙명적 조건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 시간의 부재 속에서 자신과 기다림을 분리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다. 기다림의 본질은 기다림의 불가능을 견디는 것이고, 기다리는 자는 그런 불가능 속에 방치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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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천의 시의 화자는 혼자고, 혼자여서 외롭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외로움’과 ‘혼자’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울프 포샤르트는 ‘혼자’는 다른 사람을 향한 채 제 삶을 꾸리는 사람에게 속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속하는 개념이다. ‘혼자’는 원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고, ‘외로움’은 자유롭기 위해 사회적 관계망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떼어낸 사람이다. 이 시를 읽으며 에릭 사티(1866~1925)를 떠올렸다. 가장 독창적인 현대 음악가로 평가받는 그는 자발적으로 가난과 고립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웅크리고 평생을 보낸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고, 누에와 같은 ‘고독한 벌레’로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좁은 아파트를 제 고치 삼아 살았다. 그가 죽기 전까지 그 아파트를 들어가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의 고치 속에 들이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처음으로 아파트 내부가 공개되었을 때 쓰레기더미로 덮인 그곳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에릭 사티와 같이 외로운 이들은 외톨박이거나 국외자로 자폐적 성향을 지닌다. 외로움은 ‘고독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사회에 대한 적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고독이라는 고치 속에 자신을 웅크린다. 여태천의 〈국외자〉는 에릭 사티와 같은 고독한 국외자의 삶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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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외자”는 항상 여행하면서 동시에 머무는 사람이다. 그는 이곳과 저곳의 경계, 문턱, 중간, 그 치외법권의 지대에 머문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만의 노래를 만들고자 한다. “두고두고 부를 수 있는 노래”, 외로운 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는 그런 노래. 그러나 그 꿈은 외로움 속에서 항상 무한히 흩어진다. 시의 화자는 외로울 뿐만 아니라 피로하기조차 하다. 이때 외로움과 피로는 닮았다. 둘 다 질병이다. 피로는 놀이가 배제된 수고의 결과이고, 소모의 되풀이를 통해 오는 근육에 비축된 에너지의 고갈이다. 그것은 고갈된 몸으로 와서 정신의 위축과 마비, 느슨해짐,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질병학적 현실로 인정하기에 피로는 너무 잦은 현상이다. 대개의 피로는 휴식과 숙면을 통해 쉽게 사라진다. 아울러 피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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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피로가 “종말의 무한한 과정”(롤랑 바르트, 《중립》)이라고 말한다. 피로는 주체의 내부에서 비활동성을 증가시키는, 존재됨의 지연(遲延)이다. 나는 끊임없이 보람을 맺지 못하는 수고 위로 미끄러진다. 그때 피로는 보람 없는 수고에 대한 존재의 항의이자 자기주장이다. 피로는 엄연한 심리적 실재고, 피로에서 오는 만성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만 피로는 질병으로 코드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로는 생명체의 가능성을 갉아먹고 그 생존 기간을 단축시키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피로는 의학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철학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진다. 피로를 철학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는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다. 레비나스는 ‘피로에서 나오며 피로 위로 다시 곤두박질’ 치는 수고가 유죄판결인 것처럼 피로 역시 존재에게 내려지는 유죄판결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탈구(脫臼)되어 나온 존재의 고독’에서 모면할 수 없는 피로 현상을 발견한다. 피로를 느끼는 존재는 자기에게서 자아가 탈구되기 때문에 순간 속에서 자기와 하나로 융합되지 못한 채 표류한다. “피로해지는 것, 그것은 존재에 대해 피로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피로는 구체적으로 충만한 피로이며, 그럼으로 해서 모든 해석에 선행하는 피로이다. 그 단순성, 단일성, 불명료성 속에서 피로는 존재함에 대한 존재자의 지연되어 있음 같은 것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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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천의 시 〈국외자 1〉은 외로움의 시며, “온몸의 뼈”가 시릴 정도로 외로운 자의 내면을 더듬는 시다. 여기서 외로움은 외롭다는 사실 말고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는 불가해한 실존의 조건이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주어진 이것을 견디며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과 싸운다. 외로움은 외로움에 의해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동력은 잉여의 시간들이고, 잉여의 시간들은 외로움을 끊임없이 자아낸다. 그래서 외로움은 끝이 없다. 피로와 마찬가지로 외로움 역시 너무 흔하고 일상적 현실인 까닭에 질병학적 현실로 규정되지 않는다. 외로움은 존재의 순간들을 사로잡지만 살아가는 데 거의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을뿐더러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외로움이 초래하는 육체의 상해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외로움은 행복과 충만의 무한 지체(遲滯)이거나 좌절이고, 지속적인 현상이 아니라 단속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외로움은 시간이나 장소와 상관없이 주체를 덮친다. 외로움은 본질에서 버려짐이고, 가벼운 불행이며, 덜 치명적인 자기 처벌이다. 자주 정신적 체감으로 경험되어지는 것이고, 삶의 일부로 귀속되는 정서적 강렬함의 한 양태다. 오래되고 뿌리 깊은 외로움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대개의 외로움은 재채기와 마찬가지로 후유증을 특정할 수 없이 가볍게 지나간다. 분류할 수 없고, 코드화할 수 없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디에서나 이미 “국민병”이다.(울프 포샤르트, 《외로움의 즐거움》) 외로움이란 극히 적은 부류의 사람들이 갖는 정서 상태가 아니라 인류 대부분이 맞은 새로운 도덕적 기반이며 생태 환경이다.


여태천(1971 ~ )은 외로움의 감식가라 할 만한 시인이다. 그는 집요하게 ‘국외’로 방출된 사람들의 정서와 의식을 추적한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온 국외자는 회벽처럼 마른 채 세월을 견뎌내는 사람이다. 국외자란 더불어 있는 사람과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말로 말한다. 그들은 문밖에 있는 사람이고(〈문밖에 서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붉은색 버스를 탈 때 혼자 녹색 버스를 타는 사람이다.(〈월요일에서 월요일까지〉) 〈국외자 1〉에서 시의 화자는 퇴화된 꼬리뼈와 같은 외로움의 흔적을 드러낸다. 국외자들은 타자와의 다름을 신체에 각인하고 소통의 부재를 감당한다. “붉게 달아오른 해를 보고도/온몸의 뼈가 시”린 것은 외로움 때문이다. 시의 화자들이 혼자 있는 공간에서 독백의 발화를 할 때 유독 여태천의 시들은 깊은 우수를 하나의 깊이로 각인한다. 〈익숙해지는 법〉에서 시의 화자는 혼자 술을 마신다. 밖에서는 누군가 느리게 유행가를 부르고, 시의 화자는 꽃무늬 벽지가 있는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무슨 상관이야 있겠는가/지금 나는 취하는 중이고/겨울이란 여전히 추운 계절인데”라는 구절은 ‘나’의 현존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심리를 무심하게 노출한다. 시의 화자는 천천히 취하는 중이고, 겨울은 깊어간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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