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권순철

슬프고 아름다운 한국인의 초상

권순철
1944년 경남 창원 출생. 1971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9년 도불하여 파리에서 소나무회를 조직,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국내 중요한 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아트 파리, 베이징 비엔날레, 아트 프랑크푸르트, FIAC 등 주요 해외 전시에 참여했다. 1992년 제4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전업 작가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60x130cm짜리 두툼한 한지에 먹으로 33명의 얼굴을 그린 먹 드로잉 작품들이 숲 속의 나무처럼 연이어 있다. 장대한 크기에 강한 필치, 도열하고 있는 그림들이 강력한 힘을 내뿜는다. 그림 속 인물들은 내면에 침잠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작품의 숲 속을 천천히 걸으니, 단테 《신곡》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천국에도 가지 못하고 지옥에도 가지 못한 채, 멈춰버린 시간 속에 유폐된 연옥의 영혼들은 아직도 진행 중인 자기의 운명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해 계속 반추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이런 느낌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한 관람객이 저도 모르게 내뱉는 말소리가 들린다. “한국판 파우스트를 보는 것 같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전시장에서 만나는 깊은 인생론이다.

1989년 화가 권순철은 파리로 떠났다. 개인전을 여러 차례 가진 마흔 다섯의 중견 작가였다. 더 늦기 전에 유럽의 현장에 부딪히면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몇 년 정도만 있으려고 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23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만 있으면 아무래도 어른스럽게 되고, 실험정신도, 긴장감도 떨어진다. 파리는 다른 곳보다 현대미술시장은 약할지 몰라도 언제나 활발한 예술적인 분위기로 넘치는 곳이다. 작가는 시장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과 전시를 보고 사는 것이다.”

얼굴_ 162×130cm, Oil on canvas, 2000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자신을 끊임없이 긴장의 경계에 세우는 화가 권순철은 천생 예술가다. 3월 4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있었던 24번째 개인전은 8년 만에 한국에서 갖는 개인전이었다. 전시는 2월 초 시작되었지만, 작가가 참여하는 개인전 오프닝은 2월 29일에야 있었다. 전시회 오프닝을 앞두고 평생의 반려인 아내가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슬픔을 가눌 겨를도 없이 장례를 치르고, 오프닝 파티를 위해 귀국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화가 권순철의 아내이자, 도예가인 김순남의 조촐한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연이어 여러 행사가 이어졌지만,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들_ 65×90.5cm, Oil on canvas, 1997
미술비평가이자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인 김윤수는 한 평문에서 “권순철을 처음 만난 196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다. 언제, 어디서나 스케치북과 한두 권의 책을 그것도 겨울철에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들고 다니는가 하면, 표정은 늘 잔잔하고 말이 없다. 1960년대 혹은 1970년대 현대미술의 그 요란했던 와중에서 그리고 1980년대 초 저 변혁의 열기 속에서 결코 떠나 있지 않으면서도 그는 늘 변함없이 산을 그리고 얼굴을 그리고 넋을 그리고 있다”고 썼다. 40여 년 지난 지금도 사람의 느낌과 그림의 느낌이 김윤수의 당시 소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 때부터 한국적인 것을 찾았다. 그것은 얼굴이고, 넋이고, 산이었다. 스타일이나 주제를 바꾸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주제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주제가 더 강해지고, 힘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토르소_ 162×130cm, Oil on canvas, 2002
한국 사람의 얼굴을 찾아서 그는 동대문시장, 서울역, 고속터미널, 병원 대합실 등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스케치했다. 힘 있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서러움 많았던 민초들의 얼굴을 그는 그렸다. 그는 ‘좋은 얼굴’이 있다고 말한다. 그 얼굴들은 요즘 유행하는 성형이나 보톡스 시술로 진실성을 잃은 얼굴과는 거리가 멀다.

“세월이 쌓인 노인들의 얼굴이 좋다. 그 얼굴들은 고난을 겪고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가 다 들어 있는 얼굴들이다. 그들은 좋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절망을 이겨낸 선한 얼굴들이다. 이런 좋은 얼굴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누드_ 130×162cm, Oil on canvas, 2001
수줍은 성격의 그는 사람들 바로 앞에서 그리지 못하고 멀리 숨어서 요점만 표현했다. 이렇게 모아진 얼굴들은 오랫동안 그의 내부에 머물렀다가 대형 드로잉이 되거나 유화로 옮겨진다.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렇게 곰삭아 그려진 얼굴들이다. 마치 렘브란트의 인물화처럼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침묵을 소통의 수단으로 택하고 있었다. 침묵은 더 깊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인물들의 얼굴에 쌓여 있는 물감들처럼 그 이야기는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조심스럽게 층을 이루어 쌓이면서 삶의 고통과 위안을 이야기한다.

해운대_ 59×120cm, Oil on canvas, 1998
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서정택은 “권순철의 〈얼굴〉은 우리 일상의 얼굴이 하나의 역사로 전이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슬프고 아름다운 한국인의 이 초상 앞에서 우리는 외침과 전쟁과 분단과 억압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권순철의 개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부친은 좌익활동을 하다 6·25전쟁 당시 사망했다. 그는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내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다. 그는 잔혹한 역사 속에서 상처받았으나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 ‘발언하는 대신 침묵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냈다. 그의 거칠고 투박한 얼굴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유다.

얼굴에서 조금 더 추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넋’ 시리즈다. 여기서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겪은 역사의 아픔, 한”을 묘사하고자 한다. 고통으로 뒤틀린 몸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물감은 튀어 오르고, 불꽃처럼 육신을 불태운다. 그가 자주 그리는 다른 테마는 산이다. 이 또한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의 연장이다. 꾸불꾸불 물결치는 산맥은 그가 그린 얼굴과도 닮아 있다. 그가 그리는 산들 역시 대단한 산들이 아니다. 인왕산・수락산・관악산・용마산・혹은 동네의 야산이다. 산들은 얼굴만큼 깊은 굴곡이 있지만 풍경화에는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초월감이 함께 있다. 추상화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고 거칠게 그려진 그림은 모든 경계를 초월한 그의 마음 같다.

Jesus_ 130×194.5cm, Oil on canvas
그가 그린 얼굴들은 어쩐지 그를 닮았다. 연민과 익숙함으로 자신의 고통을 응시하는 시선이다. “자화상은 내가 힘들 때, 뭔가 해결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린다. 자화상을 그리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그러니까 이 거칠고 투박한 얼굴들은 상처에 대한 치유였던 것이다. 〈뮤제아르(Museart)〉 편집장 프랑소와즈 모냉이 권순철에 대해 “지극히도 한국적인 불멸의 얼굴을 만들어냈으며, 거기에서 주술적인 춤을 발견한다. 그것은 샤머니즘적인 동작, 즉 퇴마의 차원이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상처받은 얼굴들은 그림이 됨으로써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고, 우리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아픈 역사를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예술적인 성과는 1992년 제4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으로 인정을 받는다.

얼굴_ 124×89cm, Oil on canvas, 2004
그는 작품을 오래 그린다. 그에게는 세잔처럼 몇 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그리면서 주제를 숙성시키고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완성작이어야만 사인을 하는데, 십수년 전에 시작해놓고 아직도 사인하지 않은 작품들이 그의 아틀리에에 있다. 원하는 조형의 완성에 도달할 때까지, 주제는 그의 내부에서 곰삭는다. 그는 언젠가 “오직 아름다움과 진리만이 담긴 얼굴을 그리겠다”는 소망을 표명한 적이 있는데, 계속 찾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의 기본적인 미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아름다움을 빨리 찾아주어야 한다.” 요즘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체다. 한국 사람의 아름다움을 얼굴에서뿐 아니라 몸에서도 찾고 싶다고 한다. 그 몸은 요즘 사람들이 선망하는 팔등신은 아닐 것이다. 그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그 몸은 이 땅에 살아 있으며, 고통을 겪고 또 이겨낸 역사를 가진 진실된 몸일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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