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시인의 마음을 지닌 생물학자

라일락 인턴기자(이화여대 3)
최재천 교수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윈이론 분야 세계적 권위를 가진 ‘진화생물학자’, 동물의 행동학·생태학·진화생물학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행동생태학자’,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면서 통섭이론을 펼치는 학자…. 그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시인의 마음을 지닌 과학자’.

최 교수를 그가 근무하는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가 내미는 명함을 보니 긴팔원숭이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 개미와 까치도 보인다. 요즈음 그가 연구하는 동물들이다.

그의 학문적 호기심은 방대하다. 생물학은 물론 문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종교학까지 아우른다. 이 전방위 지식의 뿌리는 생물학이다. 생물학에서 뻗어나간 다양한 사고체계와 이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 구석구석에 닿아 있다. 최근 들어 왜 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지, <나는 가수다>의 경합 방식이 왜 성공했는지,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대학 체계가 왜 문제인지 등을 생물학적 논리로 풀어낸다.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그는 쉼 없이 책을 써왔다. 최근 6개월 동안 무려 네 권의 책을 냈다. 변화된 지식 생태계에 필요한 다윈의 지혜를 피력한 《다윈 지능》,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자전적 에세이 《과학자의 서재》, 장르의 구분 없이 읽은 다양한 책을 소개한 《통섭의 식탁》,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한 《호모 심비우스》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이미 30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출간된 지 10년 넘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16만 부 이상 팔리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는 “우리는 생물학의 세기를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 추진했던 일 중 하나가 아이패드에 교과서를 넣는 것이었어요. 얼마 전 생물학 교과서가 발표됐는데, 제 은사님인 에드워드 윌슨 박사(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아프리카 초원에 서서 이런 말을 해요. ‘이 기막힌 자연과 생명을 보라. 우리를 이해하는 데 뿌리가 되는 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가히 생물학의 세기를 살고 있다’고요. 지금 생물학은 선진국에서 최고 학문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DNA・줄기세포 등 첨단과학이 생물학의 영역이죠. 외국의 명문대학은 웬만해서 학과 이름을 잘 바꾸지 않는데, 몇 년 전 하버드대학에서 화학과 이름을 바꿨습니다. 화학 및 화학생물학과로 말이죠.”

최재천 교수는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개념을 들여온 학자다. 에드워드 윌슨의 방대한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을 의미하는 ‘consilience’를 ‘통섭’이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 그는 이 단어를 찾기 위해 1년 반 동안 고심했다.

“통합・융합・합일・정합・통일 등 어떤 단어를 넣어도 ‘consilience’의 의미를 다 담지 못했어요. 시간 날 때마다 국어사전을 뒤지다 어느 날 ‘통섭’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죠. ‘통할 통(通)’자에 ‘건널 섭(涉)’이었어요. 하지만 이 또한 미진했습니다. 서로 통했으면 그것들을 엮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아야 하거든요. 건널 섭 대신 ‘쥘 섭(攝)’을 넣어 신조어를 만들었어요. 한양대 정민 교수에게 ‘무슨 뜻인 것 같습니까’ 물었더니 ‘큰 줄기로 잡는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라고 해요. 됐다 싶어서 ‘통섭(通攝)’으로 번역했죠. 그런데 나중에 봤더니 이미 존재하는 단어였어요.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 선생이 즐겨 썼고, 원효대사가 화쟁사상을 설명할 때에도 썼어요. 그분들과 통한 거죠.(웃음)”

그는 생물학 자체가 태생적으로 통섭적인 학문이라고 말한다. 생명이라는 복잡하고 오묘한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물리학・화학・심리학・사회학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을 쪼개고 쪼개 물리학과 화학의 도움을 받아서 세포 안을 들여다본 후 그것을 다시 조합하지 않으면 생물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요. 부분과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물리와 화학의 힘을 빌려 분석해야 하죠. 개미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개체 하나하나가 어떤 개성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는지를 봐야 하니까 사회학도 알아야 하고, 그들 하나하나의 행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도 배워야 합니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생태학부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 생물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시건대학에서 부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지냈다. 이쯤 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른바 엄친아 스펙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반전 인생이 있다. 그의 청춘은 롤러코스터 같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습작노트를 끼고 살았고, 서울에 살면서도 방학이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강원도 강릉에 내려가 자연에 묻혀 지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서울에서는 틈만 나면 남산에 올라 온갖 동물을 관찰하는 게 낙이었다. 고3 때에는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조각가를 꿈꾸었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대 의예과를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재수시절에도 공부는 안 하고 당구장, 음악다방 등을 전전하다 또 낙방했다. 담임 선생님이 2지망으로 쓴 서울대 동물학과에 얼떨결에 입학한 그는 열등감에 싸여 대학생활을 했다. 공부는 여전히 뒷전이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당시 유명 아나운서였던 봉두완씨를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고, 외교관이 되고 싶어 주한 외국인 대사들을 종일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자크 모노가 쓴 《우연과 필연》이라는 얇은 영어 원서였어요. 손에 잡는 순간 놓을 수가 없었죠. 세상과 자연의 원리를 ‘우연’과 ‘필연’이라는 두 가지로 설명했는데, 감동 그 자체였어요. ‘자크 모노는 생물학자인데, 책은 완전히 철학책이잖아.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었어요. 생물학에 몸 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준 책이죠.”

또 하나, 그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사람이 있다. 유타대학 곤충학과 조지 에드먼즈 교수. 곤충 유충알 채집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그와 동행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봤다. 길을 가다가 개울만 보이면 차를 세우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는 에드먼즈 교수의 모습은 그가 꿈꾸던 삶이었다. 어려서부터 시골 개울물에서 첨벙거리며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그의 눈에 에드먼즈 교수는 그의 기준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밥 벌어먹는 사람’이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방황을 접고 생물학에 올인했다. 이런 방황의 경험은 그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지식인이 되는 데 풍부한 자양분이 돼주었다.

그의 저서는 술술 읽힌다. 어렵고 복잡한 과학의 세계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시인의 마음으로 쓴 과학서적은 정확한 정보를 담되, 문장이 아름답고 감수성이 살아 있다. 시인을 꿈꾸면서 소설과 시집에 심취하고, 대학 시절에는 학도호국단 문예부장을 맡는 등 기본기가 탄탄히 다져진 데다 매번 수십 번 퇴고를 거듭하는 결과다.

“제 책상에는 사전이 네 권 있어요. 우리말큰사전, 영어사전, 속담사전, 동의어사전. 글을 쓸 때 수시로 사전을 뒤적여요. 한 출판사 사장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최 선생은 그냥 쉽게 쓰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좋아. 그냥 쉽게 쓰면 문화가 타락하지. 알아듣기 쉽게 쓰되, 어휘는 늘려줬으면 좋겠네’라고요.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글을 써 놓고 무진장 많이 고쳐요. 평소에 자주 쓰던 단어도 ‘뭐 새로운 단어 없을까’ 고민하면서 동의어사전, 우리말큰사전에서 찾아 바꿔 쓰기를 해봐요.”

최재천 교수는 바쁘다. 모임이나 강연에 초청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분 중 한 분’으로 소개되기 일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는 늘 여유가 넘쳐 보인다. “도대체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버드대학에 있을 때 돈을 벌기 위해 7년 동안 기숙사 사감을 했어요. 그 7년 동안 하버드생들로부터 시간관리법을 배웠습니다. 하버드생은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운동, 수업, 실험, 학생회 활동, 오케스트라, 봉사 등 하루에도 열 가지가 넘는 다양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합니다.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다가 발견한 게 있어요. 바로 ‘미리 하기’입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터득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저 역시 예전에는 늘 시간에 쫓겨 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하기’를 실천하면서 삶이 달라졌죠. 처음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연습하면 됩니다. 한번 해보세요.”

최재천 교수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닥스훈트 열 마리와 함께 산다.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식물・동물과 어울려 살면서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꼭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춤꾼이 되고 싶어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유롭게 살지 못했거든요. 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배워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양말의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자주 나요. 신발 속에서 혼자 춤추고 있는 거예요.(웃음)”

사진 : 김동욱

▣ 최재천 교수의 주요 저서 및 역서

《개미제국의 발견》
사이언스북스, 1999년 刊
개미들의 사회적 삶을 관찰한 책. 개미들의 사회를 인간 사회처럼 정치·경제·문화 등으로 분류해 그들의 삶을 소개했다. 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에서 이 책의 영문판이 출판될 예정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001년 刊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동물들의 세계를 써내려간 책. 이혼과 갈등, 동료애와 부성애 등 다양한 감정과 사건이 살아 숨 쉬는 동물의 세계를 엿보았다.

《과학자의 서재》
명진출판사, 2011년 刊
시인을 꿈꾸던 그가 자연과학자가 되기까지 성장기를 담은 자전적 책. 엄한 군인 아버지와 교육열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겪은 온갖 방황을 진솔하게 담았다.

《통섭의 식탁》(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명진출판사, 2011년 刊
제목 그대로 자연과학에서부터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맛깔나게 아우르는 책이다. 각 분야 책들을 코스 요리에 빗대어 소개하면서 통섭적 책읽기의 표본을 제시한다.

《다윈지능》(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윤호섭 그림, 사이언스북스, 2012년 刊
대표적인 다윈학자인 저자는 진화론을 통해 인류에게 닥친 다양한 문제를 설명한다.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과 ‘진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이를 인간의 현재적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통섭》(지식의 대통합)
에드워드 윌슨 저, 최재천·장재익 역, 사이언스북스, 2005년 刊
최재천 교수의 스승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한 책. ‘통섭’이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계기가 된 책이다. 세분화를 거듭하는 환원주의적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흩어진 지식을 한데 모으는 ‘통섭’의 원리를 제시했다.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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