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앨범 〈A Decade〉 낸 레게힙합 그룹 부가킹즈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힙합 그룹

바비킴이 부가킹즈로 돌아왔다. 그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출연 이후 인기가 치솟으면서 18년 가수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세를 몰아 솔로 가수로서의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레게힙합 그룹 부가킹즈의 리더로 돌아온 그는 부가킹즈의 지난 10년간의 여정을 담은 앨범 〈A Decade〉를 냈다. “바비킴의 부가킹즈가 아니라 부가킹즈의 바비킴”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서 부가킹즈는 절대적이다. <나가수>에서 ‘물레방아 인생’을 불러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을 때, 무대 위 그의 곁에는 부가킹즈의 멤버(간디, 주비 트레인)가 있었다. 10여 년간 동고동락하면서 다져온 팀워크가 빛을 발한 결과였다.
네 번째 앨범을 내고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부가킹즈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은 “인기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며 행복해했다. 부가킹즈는 힙합 그룹 사이에서 신화 같은 존재다. 혈기가 들끓고 반항기가 이글거리는 10대, 20대 때 힙합에 빠졌다가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올해 마흔인 ‘40대 힙합 가수’ 바비킴의 심경은 그래서 남다르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감격스럽죠. 당시에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어필한 단계가 아니어서 소수자 입장이었거든요. 최근엔 힙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저는 달라진 게 없어요. 무대에 설 때의 열정, 자신감, 힙합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거든요.”(바비킴)

“에잇, 형! 점프할 때 높이가 달라졌잖아. 훨씬 낮아졌지.(일동 웃음) 저희가 팀을 결성할 당시, 국내에서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개나 소나 다 랩하고 힙합한다고 달려들었는데 그때 멤버들은 거의 다 사라졌죠. 우리 셋은 살아 남았잖아요. 힙합이라는 장르를 정착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서 자랑스러워요.”(주비 트레인)

“공연장에 오시는 팬들의 연령층이 다양해졌어요. 40대, 50대 팬도 꽤 있죠.”(간디)

“아, 확실히 변한 게 있어요. 1집에서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사랑 없인 못 살아’ 하거든요.(웃음)”(바비킴)

부가킹즈의 힙합은 색다른 매력을 지녔다. ‘힙합’ 하면 흔히 떠오르는 사회비판적 가사, 반항적 이미지, 선정적 분위기 등이 빠져 있다. ‘흥겨움의 제왕’이라는 뜻을 지닌 그룹 이름답게 흥겨우면서도 이면에는 묘한 비애가 흐른다. 인생의 쓴맛・단맛을 다 알아버린 쓸쓸함과 ‘인생 뭐 별거냐’ 며 한판 놀아보자는 신명이 어울려 있다. ‘힙합 할아버지’ ‘솔의 대부’로 불리는 바비킴의 담백하면서도 쓸쓸한 음색 탓도 있지만, 리듬과 가사의 영향이 더 크다. 쿵짝거리는 복고풍 리듬에 인생을 알아가면서 깨우치는 생활 밀착형 가사들. “돈 없을 때는 선배가 넘버원 / 배 아플 땐 엄마 약손이 넘버원 / 속상할 때는 소주가 넘버원 / 사랑할 땐 바로 지금이 넘버원”(<넘버원> 중)이나 “짧은 우리의 인생에 뭐가 그리 우울해 / 우리 다 함께 웃어보자 Ah ha Ah ha”(<다 함께 부르는 노래> 중) 등만 봐도 그렇다.

“힙합 붐이 일기 시작할 당시, 힙합은 무조건 사회를 비판해야 하고, 갱스터처럼 공격적인 태도여야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런 표정으로 노래해야 하고, (주비를 가리키며) 얘처럼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니었죠. 그때도 지금의 부가킹즈처럼 가사에 흥겨움을 담아서 춤추고 노래했어요. ‘그게 무슨 힙합이냐’는 비난도 받았죠. 힙합은 ‘이런 거다, 저런 거다’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즐기는 거죠.”(바비킴)

“리듬을 타면서 비트 위에 저희만의 솔직한 느낌을 담는 것, 그게 힙합의 매력이에요. 저희 노래에는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애환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팬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주비 트레인)

2001년 결성된 부가킹즈의 세 멤버는 3인 3색이다. 맏형이자 리더인 바비킴은 예민한 프랑스 배우 이미지고, 세 살 아래인 간디는 화보에서 툭 튀어나온 모델 같다. 살집 좋은 막내 주비 트레인은 개구쟁이 악동 같다. 바비킴은 힙합 대부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다크서클이 있는 간디는 간이 안 좋아 보여서 ‘간이 디(D)급’이라는 의미로, 주비 트레인은 소년(juvenile)에 기차(train)처럼 거침없이 달려간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셋은 각각 애칭처럼 ‘바비’, ‘간디’, ‘주비’로 불린다. 세 사람은 함께 노래를 만든다. 바비킴이 주로 작곡을 하고, 나머지 둘은 작사를 맡는다.


바비킴은 ‘바비스토리’라는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농반진반 말했다. 그만큼 그의 인생담은 드라마틱하다. 두 살 때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간 그는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유일한 탈출구가 음악이었다. 스무 살 무렵 귀국해 음악에 인생을 걸었지만 10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냈다.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비슷하고 마음이 맞았던 간디, 주비와 힙합 그룹 ‘부가킹즈’를 결성해 야심차게 활동을 이어갔지만 무명은 계속됐다. 배고팠다. “숙소 생활하면서 1주일에 한 번 장을 봤는데, 얹혀 사는 배고픈 음악인들이 많아서 사흘이면 식량이 떨어졌다”고 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원치 않는 가수의 랩도 하고, 영어회화 테이프 녹음도 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에서 괴물 역 성우도 했고, 사극 드라마에서 프랑스 군인 역할의 엑스트라도 했다. 그러다 솔로 앨범 〈고래의 꿈〉을 내면서 인생이 역전됐다. ‘힙합 할아버지’ ‘솔의 대부’라는 호칭이 생긴 건 이 무렵이다. 솔로 가수와 부가킹즈를 오가며 활동해온 바비킴. 돌이켜보면 그는 솔로 가수로 활동할 때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부가킹즈 멤버에게 속상하지 않은지 물었다.

“속상하긴요, 바비 형의 첫 단독 콘서트 때 많이 울었어요. 힘든 시절을 함께 겪었잖아요. 형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저 기쁘고 감격스럽죠.”(간디)

“셋 다 바보 같았어요. 다른 생각은 안 하고 음악만 바라보고 전진했죠. ‘이런 식으로 무명생활을 하다 보면 빈털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우리만의 색깔을 고수하면서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서로를 다독여왔어요.”(바비)

멤버들은 외모도,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추구하는 음악세계는 비슷하다. 부가킹즈를 보면 ‘너무 즐거워, 행복해, 같이 놀고 싶어’ 이런 마음이 드는 팀이 되고 싶다는 것. 바비는 말했다. “주비, 할아버지가 되면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주비 트레인’이 아니라 ‘주비 지팡이’로.” 다 함께 웃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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