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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사소설의 개척자 김별아

자신의 욕망에 당당했던 역사 속 인물에게 끌립니다

바야흐로 한국 역사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다. 최근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국내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무려 9권의 한국 역사소설이 진입해 있다. 드라마화된 《해를 품은 달》 《뿌리 깊은 나무》를 비롯해 김진명의 《고구려》 《천년의 금서》 《황태자비 납치사건》, 김훈의 《흑산》과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난설헌》 《덕혜옹주》 《채홍》까지. 이 후끈한 역사소설 열기의 한켠에 김별아가 있다. 김별아는 남성 인물 위주의 역사소설 분야에서 《미실》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소설의 불씨를 당겼다. 신경숙의 《리진》, 김탁환의 《리심》, 권비영의 《덕혜옹주》, 최문희의 《난설헌》 등 여성 주인공의 역사소설이 줄줄이 나온 건 김별아 이후다.
김별아가 이번에 내놓은 소설 《채홍》의 소재는 파격적이다. 조선시대 유일한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인,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둘째 빈인 순빈 봉씨의 이야기다. 무지개를 뜻하는 소설의 제목 ‘채홍’은 중의적이다. 왕이라는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과 질투 등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라는 의미와 성적 소수자라는 의미를 담았다.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한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

이 짤막한 역사적 기록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순빈 봉씨는 작가에게 숱한 물음표를 남겼다. ‘집안끼리의 정혼이 아닌 모든 사랑이 죄가 되던 시대, 순빈 봉씨는 왜 여종과 잠자리를 하게 됐을까. 욕망의 통로를 봉쇄당한 상태에서 택한 한 사랑지상주의자의 극단적인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그는 온갖 자료와 족보를 뒤져가며 순빈 봉씨의 삶을 추적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고증에 근거해 순빈 봉씨의 삶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부활한 순빈 봉씨(봉빈)의 삶은 처연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 자신의 욕망과 운명 앞에 당당하고 솔직한 삶을 살아낸 봉빈은 결국 폐비되어 궁에서 쫓겨나고,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죽임을 당한다. 역사소설가로서의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역사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수단이기 때문에 흥미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그는 “역사적 사실을 훼손시키면 안 된다”고 단언한다. 봉빈이 둘째 오빠의 손에 죽게 되는 결말은 팩트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작가가 택한 결말이다. 순빈 봉씨의 족보를 뒤져보니 두 명의 오빠가 있었다. 큰오빠에 대한 기록은 있었으나 작은 오빠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료에 없는 둘째 오빠를 불러내어 상상력을 덧입혔다.

《논개》를 쓸 때, 작가는 이름 가진 자 47명을 포함해 6만 명을 죽이고 나서 위장장애와 불면증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채홍》에서 봉빈을 죽인 후에는 오히려 덤덤했다 한다. 그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봉빈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운명을 살아냈잖아요. 죽음까지 각오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끝까지 가보자 하면서 썼고요.” 시대의 도덕과 윤리에 짓눌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욕망 앞에 당당했던 봉빈. 김별아는 소설 속 주인공인 봉빈의 목소리를 빌려 역사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아니, 애초에 못 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각자의 기억으로, 제각각 다른 빛깔로….”

《채홍》은 그의 일곱 번째 역사소설이다. 등단 10년 만에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미실》로 자신의 본령을 찾은 그는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 인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임진왜란 때 적장을 품고 자살한 《논개》, 조선 청년과 일본 여인의 사랑을 다룬 《열애》, 1940년대 방탕한 모던 청년을 다룬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구의 생애를 다룬 《백범》, 정순왕후의 삶을 다룬 《영영이별 영이별》 등 그는 실제의 인물을 다루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되살린다. 1인칭으로 기술되는 주인공의 내면 풍경은 하도 생생해 “김별아가 인물에 빙의된 것 같다”는 독자도 많다.

김별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시대의 비극성을 대변한다. 인물 하나하나는 개별적인 삶을 살아내지만 그 개별적 삶의 비극은 시대의 비극에서 비롯된다. 그 비극을 풀어가는 방식은 사랑과 죽음이지만, 이때의 사랑은 비단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 파티’,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역사 인물 중에는 자기 시대의 논리와 윤리를 넘어서 자기 운명 전체를 살아내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 끌려요. 현대 인물을 내세운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는 비겁자들의 시대이기 때문이에요. 죽음도 불사하고 자기 운명을 당당하게 살아낸 역사 속 인물의 삶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우리의 비겁한 삶을 환기하는 거죠.”

그의 역사소설 속 문장은 정아하다. 역사 속 인물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의 고어를 풍부하게 되살렸다. 그렇게 벼리고 갈아서 만든 문장은 운율이 분명하다. 이런 문장을 쓰기 위해 들인 공이 놀랍다. 그는 컴퓨터 화면에 서너 개의 사전을 띄워놓고 글을 쓴다. 한 문장을 쓴 후 수십 번, 수백 번 읽고, 문맥에 딱 맞는 고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끊임없이 뒤적인다. 과작할 수밖에 없다. 하루 7~8시간 동안 꼬박 앉아서 쓰는 분량이 원고지 15매를 넘기지 못한다.

“캐나다에 3년간 있을 때 《논개》를 썼는데, 그때 모국어를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어요. 닮고 싶은 작가요? 벽초 홍명희요. 소설 《임꺽정》은 이제껏 제가 본 소설 중 최고예요. 홍명희는 진짜 천재예요. 이광수・최남선과 함께 3대 천재로 거론되는데, 제가 보기엔 홍명희가 최고 같아요. 이광수의 소설은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임꺽정》은 읽을 때마다 감탄하죠. 물론 소재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홍명희는 한학자였잖아요. 《임꺽정》을 쓰기 위해 《승정원일기》를 읽었다니 말 다 했죠.”

김별아에게 역사 공부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작년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선시대 양반문학을 배웠다. 그는 최연소 수료생이었다. “풍수, 지방 양반, 혼례 등 파트로 나누어 배우는데, 강좌를 듣고 나면 공부할 게 좍 생긴다”며 요즘은 조선시대 여덟 부류로 나뉜 천민 계급의 이야기 《조선팔천》에 빠져 있다고 했다.


문학이 나를 구원했다

김별아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꿈꾼 적이 없다. 단 하루, 대학(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했다가 반나절 만에 ‘내 길이 아니구나’ 절감하고 그만둔 게 ‘외도’의 전부다. 문학을 결심한 계기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그는 소아우울증을 앓았다. 기질적인 탓도 있고, 환경적인 탓도 있었다. 부부교사 부모님을 둔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자랐고, 어린 식모들은 그를 장롱 속에 가두고 놀러 나간 적도 있다. 자폐 성향에다 우울증까지 있던 그는 친구가 없었다. 책이 유일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생일선물로 받은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은 그에게 신세계였다. 몇 날 며칠을 꼬박 새워 다 읽어치웠다. 그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잠도 안 왔고, 배도 안 고팠다”고 회상했다.

완벽주의적 강박증이 있던 그는 ‘이중생활’을 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면서 모범생으로 지냈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집에서 푼 탓에 집에만 오면 폭군이 됐다. 그러다 고2 때 시인 출신 국어 선생님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 선생님이 빌려준 다양한 소설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됐다. 그는 “분열돼 있던 삶이 문학으로 합쳐졌다”고 말한다.

문학을 하면서 세상을 알게 된 그는 주저 없이 국문학과를 택했다. 하지만 시대가 흉흉했다. 대학에서는 4년 내내 학생운동을 했다. 그에게 도서관은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철야 농성하러 가는 곳이었다. 그 즈음 명지대생 치사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과 대치하다 쇠파이프에 맞아죽은 학생, 그 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던 누나, 그 전단지를 무심하게 밟고 지나는 사람들. 그 광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은 이 장면을 기억하지만 언젠가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서서히 잊히겠지. 그래! 역사를 쓰자.’ 그는 그때부터 문명사와 역사 공부에 빠져들었다. 《미실》을 쓰기 전, 그는 10년간 무명작가였다. 그 10년간 문단이나 평론가들과 별 교류 없이 지내면서 얻은 게 있다.

“문학은 어느 누가 봉쇄할 수도 없고, 봉쇄되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딘가 눈 밝은 독자만 있으면 된다는 신념으로 10년간 공부했죠. 처음부터 청탁받아 썼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썼겠지만, 아무도 청탁을 안 하니까 혼자 쓰고, 혼자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했죠. 그 과정에서 독자가 원하는 역사소설의 공식을 얻었어요. 멜로 라인이 있을 것, 비참한 이야기보다는 화려한 왕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혁명적인 사건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읽은 것, 또 하나는 아들을 낳은 것, 그리고 백두대간을 종주한 것.

그에게 아들은 인생의 크나큰 전환점이다. 그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이던 나에게 내가 아니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가 생기면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존재가 생기면서 인생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백두대간 종주는 ‘내 마음의 적’과의 전면전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피하고 꺼리던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등산이었거든요. 아들과 함께 오르면서 ‘내가 미쳤지, 미쳤어’ 하며 수십 번 후회했어요. 그런데 처음 갈 땐 길이 안 보이더니 두 번째는 길이 보였어요. 굉장히 힘든 걸 겪다 보니 작은 행복을 알게 됐어요. 산을 오르면 단순해져요. 결국 삶도 산과 같더군요.”

문학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문학을 통해 소통을 배우면서 세상으로 나왔다는 그는 “문학이 나를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좀 삐딱해요.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가지 말라는 길은 더 가고 싶어요. 그게 문학에서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문학은 ‘세계가 이런 거야’ 하면서 다독거려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계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해요. 모두 다 알고 있는 도덕, 제도, 삶의 패턴이나 죽음의 패턴 등에 대해 ‘그게 아닐 수도 있거든?’ 하면서요.”

‘별난 아이’ 같던 김별아. 본명이고, 한글 이름이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생의 비의(秘意)와 참맛을 알아간다는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역사 속 인물로 굳어진 체계를 교란시킬지 기대된다.

사진 : 장은주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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