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55) 유홍준 〈운동장을 가로질러간다는 것은〉

삶이란 운동장에 드리운 그림자 같지 않은가!

가로질러간다는 것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사람은, 길쭉한 사람이다 다리도 길고 목도 길고
뒤통수도 긴 사람이다

어깨 축 처진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다
제 삶이 어떤 건지 미리 한번 중간 점검해보는 사람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 서보는 사람은

차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 흙먼지를 오지게 한번 뒤집어써보는 사람이다 어디 피할 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다 마치 고문당하는 사람이고 마치 숙청당하는 사람이다 모름지기 인간의 그림자가 이렇게 길고 이렇게 홀쭉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사람이다

가로질러간다는 것은 스스로 고개를 꺾는 것이다

그림자 중에 가장 긴 그림자는
운동장에 드리운 그림자다



〈운동장을 가로질러간다는 것은〉이란 시는 쉽다. 모름지기 시는 읽기가 쉬워야 한다. 좋은 시들은 대개 어렵지 않다. 운동장에 드리운 누군가의 그림자에 대해 쓴 시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것을 보니 때는 해가 기우는 시각이다. 운동장이 하나의 세계라면, 우리 모두는 그 세계를 가로질러가는 사람이다. 한 생을 산다는 것은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인의 시적 숙고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시인은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사람보다 그가 드리운 그림자에 더 주목한다. 그림자 사람은 길쭉한 사람이다. 뭐든 길게 늘어난다. 다리도, 목도, 뒤통수도. 시인은 그 그림자 사람을 통해 삶의 안쪽에 누적된 비애를 끌어낸다. 시인의 상상 속에서 그림자 사람은 “흙먼지를 오지게 뒤집어”쓴 적이 있고, “고문”을 당한 적도 있고, “숙청”당한 경험도 있다.

그림자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어깨 축 처진 검정 옷을 입”고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중이다. 일몰의 시각에 왜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림자 사람은 구조조정으로 실직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제 삶이 어떤 건지 미리 한번 중간 점검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생기 약동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니까 그림자 사람은 생기 약동을 다 방전한 사람의 다른 이름이구나! 그림자 사람은 “삶이 내게 고통이라는 양식을 퍼먹일 때/나는 약 안 먹으려는 아이처럼 자지러졌고/발버둥을 쳤고/발악을 했다”(〈숟가락은 말한다〉)라고, 생 앞에서 발버둥치고 발악을 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그림자 사람은 한 생을 살아낸다는 게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깨달은 사람이다. 마침내 운동장에 드리운 그림자 사람은 “모름지기 인간의 그림자가 이렇게 길고 이렇게 홀쭉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림자 사람은 실직한 사람, 온갖 수난의 흔적을 제 몸에 지닌 사람, 가엾고 슬픈 사람이기 이전에 욕망을 벗고 해탈한 사람, 가벼워진 몸으로 이승 바깥까지 곧장 걸어갈 태세인 세속 성자다! 그게 누굴까? 바로 시인 자신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저녁의 슬하》에 발문을 쓴 진주 시인 김언희의 말에 따르면 유홍준은 상하좌우로 “직방인(直放人)”이다. 아니, “직방”은 시인 자신이 발명해낸 말이다. “그렇다 얼마나 간절히 직방을 원했던지/오늘 낮에 나는 하마터면 자동차 핸들을 꺾지 않아/직방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뻔 했다”(〈직방〉). 그는 40여 년 동안 직방으로 뛰어내리는 중이다. 자고로, 미친 사람만이 직방으로 뛰어간다! 시인과 세계 사이에 문자가 가로놓여 있다. 문자는 문자 너머로 나아가는 데 거치적대는 방해물이다. 시인은 문자의 힘을 빌려 시를 쓰되 거침없이 문자 너머로 직방으로 넘어간다. 문자 너머는 초월적 깨달음의 경지도, 신성(神聖)의 경지도 아니다. 추상기호에 지나지 않는 문자를 버리고 세계 그 자체, 그 있음의 직접성과 한몸이 되는 경지, 참나와 세계가 한몸으로 융합을 이루려는 사람이 직방인이다. 직방인은 “짚을 만졌던 느낌은/뱀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차갑지가 않지 매끄럽지가 않지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하지”(〈짚을 만졌던 느낌〉)같이, 물(物)과 물(物)이 직접으로 맞부딪치며 사물 인지와 직접적 촉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세계에서 산다.


유홍준(1962~ )은 경상남도 산청 사람이다. 1998년에 한 시잡지의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시집으로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등이 있다. 얼마 전 세 번째 시집 《저녁의 슬하》를 내놨다. 그는 젊었을 때 산판에서 벌목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진주에 주거를 두고 제지공장 근로자로 살았다. “24시간 연중무휴 제지기계가/고속으로 돌아가는 종이공장”(〈소음은, 나의 노래〉)에서 귀가 먹먹한 기계 속에서 일하는 동안 “소음중독자”가 되었다. 고향을 다니러 갔다가 소음이 없는 고향의 적막감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 하룻밤도 못 자고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는 “매음굴보다 더 지독한 / 나의 정든 소음굴”, 혹은 “너 없이는 못 살아 정든 소음아”라고 쓴다. 이런 반어법이 펄펄 살아 뛰는 그의 시를 읽을 때 내 마음은 아프다. 그가 구조조정을 당해 제지공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2003년 한국시인협회의 부산 행사 때 누군가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다. ‘시협’ 사무총장이란 직을 맡아 행사 전반을 지휘하는 입장이라 몸과 마음이 두루 황망한 와중에 말쑥한 신사복 정장 차림의 눈썹이 숯검댕이처럼 짙은 그를 보았다. 곧이어 ‘시협’에서 제정한 젊은시인상 제1회 수상자로 그가 결정되었다. 그 수상 소식을 전화로 알렸는데, 야근을 하고 돌아와 자다가 수상 소식을 들은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주에 놀러 오라고. 그는 남해안 섬으로의 1박2일 여행을 제안했다. 나는 남해에 꼭 가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유홍준은 질박하고 소탈하다. 선과 악의 분별이 뚜렷하지 않은 무분별의 경계에서 노닌다. 그는 어설프게 착한 척하거나 점잖음을 떨지도 않는다. 동생네 식구들과 깻잎을 따서 들깻잎 다발을 묶으며 “이것이 돈이라면 좋겄제 아우야”(〈들깻잎을 묶으며〉)라거나, 일흔네 살의 어머니가 자궁을 들어내고 젊은 의사가 그걸 냉면 그릇 같은 데 담아 들고 와서 보여주었을 때, “마음이 참, 지랄 같았다”(〈어머니의 자궁을 보다〉)고 직설한다.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보고 부레와 쓸개와 창자를 헤쳐보며 물고기의 생각이 어디 있는지, 물고기의 뇌는 어디 있는지를 찾아보고,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새를 보고 “다음번에 새 대가리를 쪼개 찾아봐야지 울음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지”(〈새는 왜 우는지〉)라고 한다. 그의 시는 책상물림들의 시와는 분명히 다른 세계와 맞다대기해서 얻은 생물이다. 그런 스스로를 시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몽상가, 나는 연못가 벤치에 누워 있는 천치(天痴)”(〈연잎 위에 아기를,〉)라고도 한다.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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