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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전문기업 ‘공드린 월요일’ 유주현 대표

공간에 ‘공들인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고운 색들이 부딪혀 섞이고 휘몰아치면, 쉼 없는 붓질 속에 모든 것이 녹아들고
서늘하고 차갑던 벽은 어느새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해진다.
나에게, 너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다.
하늘과 땅에 대해서.”
- <하늘만큼 땅만큼>展 작가의 말 중에서
투박한 벽에 꽃 한 송이만 그려 넣어도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듯, 벽화는 평범한 벽에 아주 특별한 숨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벽화는 아직 ‘낙후된 공간을 개선하기 위한 그림’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이 또한 벽화 전문 아티스트가 아닌 회화 작가나 미술을 전공한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벽화 아티스트 유주현 씨는 이러한 현실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2008년 벽화 전문기업 ‘공드린 월요일’을 세웠다.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벽화를 그리고, 자원봉사가 아닌 예술로서의 벽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학교 뒷벽에서 ‘예술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라는 문구를 봤어요. 저도 하고 싶은 예술을 하면서 돈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디자이너들은 주로 제품을 만들고,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잖아요? 저는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에 예술가로서 제 이야기를 담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드린 월요일’은 유주현씨의 1인 기업이다. 잠재력은 있지만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서울디자인창작지원센터 내 유일한 벽화 전문기업이다. ‘공들이다’와 ‘월(wall)’요일을 결합한 이름 ‘공드린 월요일’은 한땀 한땀 수놓듯 공들여 작업하는 날들을 의미한다.

‘공드린 월요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웨어펀 그룹의 청담 사옥 벽화는 청담 사거리의 명물이 됐다. 노루의 뿔에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린 이 벽화는 거대하고 아름다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노루의 뿔은 하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의미를, 만개한 꽃은 문화산업이 아름답게 꽃피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또한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벽화 공모에 당선돼 석고와 레고 블록을 활용한 입체 벽화를 선보였고, 어린이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제작한 <하늘만큼 땅만큼> 전시회의 벽화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활용해 기발하고 완성도가 높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엔제리너스, 디 초콜릿 커피 등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음식점, 병원, 여러 회사 사옥의 내벽 곳곳에서도 유주현씨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제가 벽화를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벽화 붐이 일지는 않았어요. 제가 그 붐에 일조했다고 생각해요”라며 웃는다.


유주현씨는 판화를 전공했다. 벽화에 관심을 가진 건 홍익대 재학 시절, 벽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다. 삼성동에 있는 아파트 내부 벽에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그림 하나로 벽면이 가득 채워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3박4일간 학과 선배와 함께라면 끓여 먹고, 창문도 없는 38층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재밌었다”고 한다.

“판화가 내 이야기를 표현하는 거라면, 벽화는 그 집에 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잖아요? 벽화는 고객의 얘기를 듣고 나의 감정과 종합해서 그린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순수예술을 하던 사람으로서 ‘내 그림을 돈을 내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구나’ 하는 점에서 쾌감도 있었고요.”

그는 대학 졸업 후 학과 동기와 함께 홍익대 근처에 작은 방을 하나 마련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벽화 연구에 매진했다. 색감 좋은 외국의 페인트도 써보고, 작은 캔버스에 그릴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붓 터치 방법도 익혔다. 경험이 차츰 쌓이다 보니 붓이라는 고전적인 재료뿐 아니라 실생활에 쓰이는 것에도 눈이 갔다. 그는 “철물점에만 가도 빗자루부터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요(웃음)”라고 말했다.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벽에 입체감을 주는 작업방식은 유주현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반 벽화에서는 보기 힘든 부조와 조각은 물론,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벽화 작업을 할 때는 레고 블록을 사용했다. 더하고 뺄 수 있는 레고 블록의 특성에서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모토 중 하나인 ‘나눔’을 형상화한 것이다. 가든 파이브에서 열린 <하늘만큼 땅만큼> 전시회 벽화에는 컴퓨터의 메인보드를 썼다. 땅의 복잡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도시의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을 표현할 만한 재료를 고민하다 메인보드가 떠올랐어요. 메인보드를 수집해 만든 복잡한 도시를 유니콘이라는 상징적인 소재가 끌고 가는 거죠.”

유주현씨 벽화는 작품마다 스토리가 있다. 그는 작업 전 공간을 둘러보고 고객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상상력을 발휘해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성북예술창작센터의 벽화는 주인공이 ‘치유・나눔・소통’의 테마가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하늘만큼 땅만큼> 전시회의 벽화는 하늘에 사는 ‘말랑이’와 ‘또랑이’, 그리고 땅에 사는 ‘호랑이’의 이야기다. “작품들이 동화 같고 순수하다”고 하자, 그는 “성향 자체도 그렇지만 아이들과 작업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린이들과의 작업을 즐기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다는 그는 최근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 놓일 의자를 제작하는 ‘내 이야기가 담긴 의자’ 전시에 참여했다. 매주 일요일 아이들과 서울디자인창작지원센터에 모여 5주간 워크숍을 진행한 결과다. 톱니바퀴와 태엽을 활용한 ‘뒤룩뒤룩 로보트’ 의자, 제트기처럼 날개가 달린 ‘날아라 굴러라 제트기야’ 의자 등 독특하고 재미있는 의자들이 완성됐다.


“처음부터 ‘의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것을 그려보자’고 했어요. 아이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내놓으면 저희가 일주일 동안 드로잉해서 보여줘요. 아이들의 생각은 매우 훌륭해요. 그림도 잘 그리고요.”

자신이 그린 그림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바랄까. 그는 “재미도 느꼈으면 좋겠고, 그 안에서 휴식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회사의 내부 벽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복도도 비좁고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어요.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계속 일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게 공간에 청량한 바다를 그리고 다이빙하는 여인을 그렸죠.”

유주현씨는 최근 벽화가 범람하지만 기초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손상된 벽화가 많고, 보수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목표는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공공에 좋은 작품, 나아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제가 벽화를 함으로써 이미 공공의 영역에 들어왔거든요. 우리나라는 벽화 하면 낙후된 공간을 보수한다는 인식이 많은데, 저는 그런 개념에서 더 나아가고 싶어요. 하나의 작품, 하나의 예술로서 벽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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