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작가 최제훈

독자를 이야기의 폐쇄미로 속에 꽁꽁 가두는 소설가

올해 동인문학상에는 한 작가의 두 작품이 모두 1차 관문을 통과하는 문학적 사건이 있었다. 《퀴르발 남작의 성》과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쓴 최제훈 작가다. 그중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최종심까지 올랐다. 그가 화제가 되는 것은 신인 작가의 두 작품이 모두 주목을 받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서른 넘어 데뷔한 늦깎이 작가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른이 다 되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이후 4년간 대학교 교직원 생활을 하던 그는 그마저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가 됐다. 경영학도를 뒤늦게 소설가의 길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난 날 아침, 하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결정됐다는 기사가 났다.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니 내심 서운하지 않을까. “오는 길에 어머니한테 전화 받고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며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다. 그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좀 뭣해서 인터뷰나 특강 요청을 될 수 있으면 거절한다”면서도 “부모님이 (매체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것을) 좋아하셔서 이렇게 가끔 한다”며 또 웃었다.

그의 소설은 기기묘묘하고 이상야릇하다. 이토록 생경한 한국 소설은 처음이다. 드라큘라,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 등은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뒤틀리고 엉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고, 연쇄살인에 관심 많은 동호인 카페 운영자에 의해 산장에 초대받아 하나씩 죽어나가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여섯 번째 꿈〉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주인공은 이 소설집의 다른 작품에 다시 등장해 제3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말하자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네 개의 작품이 모여 완성되는 연작소설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피 튀기며 이미 죽은 사람이 뒤의 이야기에서 그 캐릭터 그대로 다시 나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네 개의 이야기가 조금씩 틈을 가지고 연결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선형적인 연결이 아니라 틈이 있으면서 끝없이 뻗어나가는. 글쓰기의 욕망으로 읽힐 수도 있고,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고, 무의미의 질주일 수도 있겠죠.”

서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의 연쇄고리는 치밀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독자를 이야기의 폐쇄미로 속에 꽁꽁 가두는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미로에 갇힌 독자는 흡입력 있는 네버 엔딩 스토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의 이야기는 무정형의 생명체 같아서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π〉) 자생력을 가지고 꿈틀대면서 뻗어나가는 듯하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 대해 소설가 박성원은 “장르와 경계를 무너뜨린 이 소설은, 벼락처럼 찾아온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이 소설에 완전히 중독되고 말았다. 이토록 재미있으면서도 문제적인 한국소설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라고 평했다.

최제훈은 소설에서 꿈과 현실, 환상과 실제, 죽음과 삶 등 친숙한 개념들을 무화시켜버린다. 그의 소설에서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슬픔이나 이별, 마지막 등의 감정이 거세된, 그저 ‘생명의 다함’일 뿐이다. 그는 “동물에게 죽음은 자연소멸의 과정이잖아요. 인간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종교, 내세, 문학 같은 것을 만드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책을 덮고 나면 기존 관념을 뒤흔드는 낯섦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그는 소설의 역할에 대해, 자신이 창조한 소설적 세계에 대해 규정짓기를 거부한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다든지,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든지 하는 포부를 밝히는 데에도 신중하다. 아니, 의도적으로 피한다.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어요. ‘소설을 내 안의 가장 자유로운 영역으로 남겨두자’고요. 소설이 뭔지, 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그저 한발 더 나아가고 싶어요. 아포리즘 같은 표현을 피하는 편이에요. 작가가 멋진 말로 결론을 내려주기보다는 상황을 던져주고 독자에게 판단의 여지를 주고 싶거든요. 공감을 주는 문학이 있고, 영감을 주는 문학이 있죠. 보편적인 정서로 위안을 주는 ‘공감을 주는 문학’보다는 굳어 있는 체계를 뒤흔드는 ‘영감을 주는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 92학번이다. 경영학도가 어떻게 문학도가 됐을까. 그의 제2의 인생 디자인은 군대에서 이루어졌다. 뚜렷한 꿈이 없던 그는 고등학교 때 ‘밥 벌어먹고 살려면 문과보다는 경영학이 낫겠다’ 싶어 경영학과를 택했다. 군대에서 인생의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글쓰기에 관심이 갔다. 대학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소설을 쓰면서 쾌감을 느꼈던 것이 생각났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군대에서 1차 목표를 정했다. 책 100권 읽기.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등 유명 작가의 책까지 103권을 읽어치웠다.

“졸업 후 인생을 상상해봤는데, 경영학 전공을 살려서 살고 싶진 않더라고요. 군대에 다녀오면 현실적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어요. 이전에는 내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남들의 기준대로 살다가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 거죠. 다른 면에서는 우유부단한 편인데, 이 길을 선택할 때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판단의 기준은 단순했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였거든요. 사람은 현재를 미래에 침식당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지금이고, 지금이 쌓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은 듯해요.”

그는 공상가다. 어려서부터 잠들기 전에 하루 일을 회상하면서 머릿속으로 소설을 썼다. ‘만약 내가 이 길이 아니라 저 길로 갔다면’이라고 상황을 바꾸고 그 이후의 사건을 상상하며 밤을 보냈다. 잠들기 전 공상하는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루 한두 시간 공상은 기본이다. 그의 작품 역시 공상의 산물이다. 머릿속에서 온갖 공상을 한 후 이야기가 완결구조를 가진 후에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얼핏 보면 이야기 스스로 자생력을 가진 듯한 그의 소설은 사실 처음부터 완벽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 키드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시절 주말마다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본 다양한 영화는 그의 소설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그가 소설가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믿을 수 없어 했다. 친구들은 “네가 왜?” 하는 반응이었다. 그는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예술가의 DNA는 없다고 한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네가 과연 최치원의 후손이구나. 그 피가 34대가 지난 후에야 나오는구나!”라며 농을 했다고 한다.

20대 후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입학한 그는 졸업 후 숙명여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했다. 틈틈이 글쓰기를 했다. 그러다 망막박리 증세가 나타났다. 겸업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도의 꿈을 꾼 게 아니다 보니 문학 자체나 한국문학에 대해서나 짓눌린 게 없어 쓰고 싶은대로 썼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문학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제 소설이 낯선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노력도 많이 했다.

“창작에 대해 많이 배우지 않아서 문장에 자신감이 없어요. 퇴고를 많이 하죠. 지칠 때까지, 토 나와서 못할 때까지 해요(웃음). 어휘 공부도 많이 했어요. 내가 아는 작가의 어휘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소설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문장을 적고, 단어를 적으면서 공부했죠. 그렇게 쓴 노트가 몇 권이에요. 독특한 어휘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어휘도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단어를 정확하게 쓰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독자와의대화에서 한 독자가 그에게 물었다. “작품을 보면서 변태 같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변태 맞나요?”라고. 죽음과 살인 등의 소재를 낯선 방식으로 다루는 그의 뇌구조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한 질문이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변태라는 말은 사전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달라진 상태, 또 하나는 정상이 아닌 상태로 달라짐. 두 가지 의미 다 좋아해요. 정상이라는 건 사회에서 다수가 정해놓은 틀이잖아요. 소설은 그것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변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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