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이광호

내 그림은 세상과 눈 맞추기

이광호
1967년 충북 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판화 전공). 1996년부터 현재까지 국제갤러리와 조현갤러리 등에서 8회 개인전, 프라하 비엔날레, 자하미술관, 예술의전당, Domus Artium 2002(DA2, 스페인), 국립현대미술관, 성곡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카스텔론 뮤지엄, 금호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세종문화회관미술관 등에서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6년 스페인에서 개최하는 제3회 Castellon 국제회화공모전 후보자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중앙미술대전 우수상과 인기작가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Posco 등 주요 기관과 개인들에게 소장되어 있다.
뾰족한 가시들이 엉클어져 있는 선인장 그림 앞에서 화가 이광호의 설명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 한 가지 일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가는 것이며, 인생의 최대 목표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적・촉각적인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화가 이광호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 되기’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작은 식물인 선인장은 그의 화면에서 거대하게 자리를 잡았다. “선인장은 촉각적인 그림이다. 그것은 나에게 애무의 대상이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지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되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림 속 선인장은 남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연상케도 하면서 두려움과 유혹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날카로운 가시들 때문에 선인장은 다양한 형태론적인 흥미를 유발할 뿐 아니라 접근하기 용이치 않음, 그럼으로써 더 고조되는 매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수히 많은 붓질과 나이프의 흔적, 문지르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한 다양한 작가의 작업의 흔적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언어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고백하는 일도 서툴렀다. 언변이 부족하다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그림은 말로 못 하는 것을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Cactus No.57, Oil on Canvas, 189.5×190cm, 2011
5년 동안의 긴 짝사랑을 후일담처럼 말하게 된 것도 그림을 다 그린 후 발표하는 전시장에서였다. 화가 이광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것”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아나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과 눈 맞추기였다. 2005년 이전까지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 그려진 사적인 독백이자, 세상과의 눈 맞추기 과정이다. 친구, 아내 등 그의 지인들이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재연-어머니로부터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겼을 말들〉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재연’은 그의 친구다. 당시 그는 영화와 소설 등에서 많은 자양분을 흡수했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 속에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특히 《경마장 가는 길》을 쓴 소설가 하일지의 소설을 좋아했다. 후에 소설가 하일지는 그의 작품 평을 써주기도 하였다.

머리깎기, Oil on Canvas, 130×193cm, 2001
1997년 결혼한 그의 아내는 그림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고 마주 보고 관찰했다. 아내를 처음 그린 그림에서 그는 손을 꼭 잡고 마주 보고 있다. 마주 보는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2001년작 〈머리깎기〉는 힘겨웠던 아내(푸른 옷을 입은 여인으로 그려져 있음)의 첫 임신과 젊은 남편 이광호의 이야기가 전기 르네상스 작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라는 작품의 틀을 빌려서 표현하고 있다. 손녀의 태몽을 꾼 어머니도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회화의 확장〉 표제 하에서 해마다 이루어지는 스페인 카스테롤 회화 공모전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상을 계기로 그의 작품의 국제적인 가능성을 알아본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이 작품은 Domus Artium 2002라는 스페인 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기도 했다.

재연-어머니로부터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겼을 말들, Oil on Canvas, 193×130cm, 2001
그가 세상과 본격적으로 눈을 맞추고 자신감 있게 마주 본 흔적은 2005년 창동 스튜디오에서 머물면서 1년간 75점을 그린 초상화들이다. 이 작품들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델을 직접 선정할 것, 그림의 모델에게는 초상화를 팔지 말 것, 누구든 정해진 의자에 앉아서 포즈를 취할 것, 어떤 모델이건 같은 크기의 그림으로 그릴 것 등 초상화를 그리는 데 그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림이 마무리될 때쯤 편안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함께 전시했다. 처음에는 20명 정도만 해야지, 했던 작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100명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2005년 한 해만 75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국제갤러리 on Painting 전시 광경, 2007
수줍음 많던 그는 화가가 되어서 마침내 수많은 사람과 마주 보게되었다.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동료 작가, 친구 등 다양한 사람이 그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주 봄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관계에서 화가가 갖는 우월적인 지위가 아니라 ‘사랑’의 시선이었다. 그는 대상을 눈으로 어루만지고 그 느낌을 잡아내서 빠르게 그려나갔다. 그리는 방식도, 표현 방식도 누구를 그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그렸다. 너무 사랑해도 그림은 뜻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집착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기술도 그는 배워나갔을 것이다. 딸아이의 초상화는 네 번을 그렸다. 그림속에는 딸 윤서가 자라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김여운2, Oil on Canvas, 80.3×60.6cm, 2006
후에 사람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그 인물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과 병치하는 작품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선인장으로 상징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초상화를 거쳐 온 선인장 그림이기에 이 선인장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 인간을 의태하고 인간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관찰의 대상이지만, 선인장은 화가의 시선 앞에 굴복하지 않으며 그 장대한 내적인 힘을 자랑하는 존재가 된다. 눈 빠른 사람은 이미 초창기 인물화를 그리던 시절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으며, 선인장 그림은 그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주었고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Cactus No.69, Oil on Canvas, 162.1×130.3cm, 2011


Cactus No.59, Oil on Canvas, 259.1×170cm, 2011


Cactus No.58, Oil on Canvas, 150×150cm, 2011


Cactus No.72, Oil on Canvas, 179.5×120cm, 2011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0월 2일 부산 조현화랑에서 있었던 개인전을 포함해 최근의 몇몇 전시에서 풍경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 풍경화를 설명할 충분한 틀이 자신의 안에 마련되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미 선인장 그림 속에 풍경화로 나갈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고 있었다.

Sobaeksan, Oil on Canvas, 120×100cm, 2010

선인장 그림 중에서 하나의 중심점이 있는 구성을 가진 그림이 아니라, 〈선인장 No.57〉처럼 선인장이 만개해서 무한히 펼쳐나가는 장면은 풍경화로 더 나아가 추상화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주 중산을 지나다 본 무심히 방치된 덤불더미, 서산의 야산 풍경 등은 중앙집중적인 구도를 갖춘 상식적인 풍경화가 아니다. 무심히 던져진 풍경 위에 스쳐 지나간 시선의 흔적을 그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초기의 〈동물원〉이라는 그림에서 그는 다양한 시선의 움직임 자체를 작품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 결론은 “타자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나의 시선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대상에, 다른 사람에 보내던 시선을 다시 자기로 되돌리는 것은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한 단계를 의미한다. 나는 유심히 그의 풍경화를 바라본다. 화가 이광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간절함이 있으면 영감이 스쳐 지나간다. 그림이 되려면 모든 우연이 필연이 된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그림 속에서 바라본 그 필연의 장면은 무엇일까. 다음 전시가 우리에게 답을 줄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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