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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51) 김요일 〈무인도〉

애초에 없는 당신에게…

거기 계세요, 제가 갈게요
당신은 바다에서 가장 높은 산
시장에서 제법 쓸쓸해 보이는 나무들도 샀구요,
당신과 어울릴 만한 음악도 골랐어요

붉은 꽃으로 치장한 통통배 타고 가장 높이 계신 당신께 오를 거예요
깃발도 달고, 꽹과리도 두드리며
멀리 계신 당신 쉽게 손 흔들 수 있도록
시끌벅적 밀물 타고 갈 거예요

당신의 연안(沿岸)은 모두의 피난처
안달 난 새들은 같은 방향의 화살표로 날아들겠지요
당신 치맛자락엔 검으나 부드러운 몽돌을 내려놓을 거구요,
차고 단 샘물도 넣어 드릴게요

가만가만 거기에만 계세요
교회 종 떼어 당신 목에 걸어 둘래요
꿈 밖으로 떠밀려 가도 알아챌 수 있도록
색색의 부표로 당신을 휘감겠어요

거기 계세요
태양과 바람의 경계에서 가장 상처 깊은 뿌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彼岸)의 장르인
당신



시의 화자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떠난다. 더러는 소풍이고, 더러는 밀항이다. 환멸과 비애가 촉발시킨 게 분명한 그 떠남들은 여러 목적지를 갖는다. 그중에 한 곳이 무인도다. 자, 이제 그 시를 제대로 읽어보자. 그는 돌연 ‘무인도’를 다정한 이인칭으로 호명한다. ‘당신’은 무엇인가. 일인칭의 형식 속에서 발화하는 ‘나’ ‘현재’ ‘여기’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다. ‘나’의 부재, ‘현재’의 부재, ‘여기’의 부재로서만 제 존재를 드러내는 그 무엇이다.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彼岸)의 장르”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없고, 차라리 없기 때문에 의미의 광휘를 거느리고 떠오른다. 없음의 거대한 입 속으로 차안(此岸)의 ‘있음’들이 삼켜졌다가 다시 토해내진다. 그래도 살아 있음이 지옥일 리는 없다. 왜냐하면 “애당초 천국이란 건 없었으니/이곳이 지옥일 리 없죠”(〈근황〉).

‘당신’은 없다. 없으니 오고 싶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러니 “거기 계세요, 제가 갈게요”는 독백이다. 들을 수 없는 자를 향해 발화되는 일인칭의 독백. 이 독백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다. 왜 독백을 하는 걸까. 다른 시편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자. “산다는 건 진지한 코미디/공원의 비둘기처럼 꾸벅거리기만 하는 수긍의 삶은 재미없어”(〈순례의 노래〉). 그렇다. 공원의 비둘기들은 아무 숭고함도 품지 않은 채 오로지 먹이를 찾는 삶만 산다. 먼지와 때에 전 깃은 더럽다. 어리석은 반복으로 이루어진 ‘공원의 비둘기들’이 살아내는 세속 삶이 재미있을 턱이 없다. 재미가 없으니 판을 떠나든지 뒤집든지 해야 판을 바꿀 수가 있다. 시의 화자가 선택한 것은 판에서 떠남이다. 그 떠남에의 욕망은 얼마나 사나웠던가! 시인은 “어디로든 가고 싶었을 게다/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것이다”(〈묶인 배〉)라고 적었다.

그 목적지는 ‘무인도’다.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없는 섬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없는 당신”이다. 당연히 “붉은 꽃으로 치장한 통통배 타고 가장 높이 계신 당신께 오를 거예요”는 빈말, 즉 허사(虛辭)다. 이런 허사는 시의 화자의 쓸쓸함을 위로하는 데 꼭 필요하다. “깃발도 달고, 꽹과리도 두드리며/멀리 계신 당신 쉽게 손 흔들 수 있도록/시끌벅적 밀물 타고 갈 거예요”라는 구절 역시 허사다. 없는 당신은 자잘하고 지리멸렬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없는 당신을 향해 이따위 빈말을 남발하는 것밖에 없다. 오죽하면 서양의 한 키 작은 철학자는 “사람은 무익한 열정의 덩어리” 그 자체라고 했을까.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루는 길고 지루하다. 아마도 시란, 혹은 예술이란 그 길고 지루함에 대한 보상행위가 아니었을까. 〈무인도〉는 시인의 갈망이 만든 꿈의 내역을 보여주는 시다. ‘무인도’는 주체 안의 ‘비어 있음’이고, 그 비어 있음 속에서 피어난 ‘당신’이란 꽃이고, 없는 이상향이다. ‘당신’은 수고와 노동으로 이루어진 차안의 삶을 받아준다. “당신의 연안(沿岸)은 모두의 피난처”다. 당연하다. ‘무인도’는 유토피아니까. 본디 유토피아의 뜻이 ‘없는 장소’가 아닌가! 아마도 시인은 오늘밤에도 어디선가 “세속적으로, 세속적으로/빠르게 독주를 들이”(〈은경이네〉)켜고 있을 것이다. 독주가 불러일으킨 취기 속에서만 그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인 ‘무인도’에 가 닿을 수 있을 테니까.



김요일(1965~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0년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나는 그의 소년시절을 안다. 중학생이던 그는 방학 동안에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출판사에 나와 잡일을 거들곤 했다. 당시 그 출판사에 드나들던 한 청년이 소년인 그를 얼핏 보았다. 청년은 중년이 되고 그는 낭만청년으로 성장한다. 어느 날 그는 시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밤의 시인이었다. 젊은 시인들을 거느리고 신촌이나 인사동의 술집 거리를 방황하곤 했다. 그가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었다. 그는 인생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밤의 가객(歌客), 밤의 방랑자였다. 더러는 스스로를 체 게바라로 여기는 듯싶었다. “찾지마 잊지도 마/이곳에서의 이름은 이방인 K,/아직 담배는 끊지 못했어”(〈체 게바라에게〉)라고, 그가 사랑도, 꿈도, 혁명도 실패해 버린 듯한 표정을 지을 때 그 표정에는 세계의 끝까지 가버린 자의 깊이가 서린다. 허망이란 헤아릴 수 없는 깊이. 더는 깊이가 있을 수 없는 깊이. 그래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것. 그러나 삶의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허망은 섬멸시킬 수 없는 것. 그렇다면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수밖에 없다. 어느덧 소년을 중년으로 바꿔버린 세월과 허망을 끌어안은 그가 돌연 우리 앞에 《애초의 당신》이란 시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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