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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스키 다큐영화 〈겨울냄새〉 만든 전화성 감독

저예산 독립영화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

2주간 짧게 상영했지만 국내 최초의 스키 다큐영화 <겨울냄새>는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물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키 데몬스트레이터, 아무런 지원 없이 묵묵히 우리나라 스키 기술 발전에 헌신하고 있는 그들의 고단한 삶은 영화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카이스트 석사 출신으로 직원 700명의 소프트웨어 업체를 이끌고 있는 전화성 감독이다. <겨울냄새>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스키 데몬스트레이터(ski demonstrator·이하 ‘스키 데몬’)란 스피드를 겨루는 알파인 스키와 달리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스키어를 가리킨다. 대부분 국가대표를 역임한 ‘스키의 달인’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선수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는 25명의 데몬이 있다. 〈겨울냄새〉에는 양성철 스키 데몬 국가대표 감독과 김준형 스키 데몬(2011년 인터스키 대회 1위)이 실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양성철 감독은 스키어 사이에서는 유명한 국내 최고의 스키 선수. 1998년 국내 최초로,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캐나다 CSIA(Canadian Ski Instructor Association) 레벨4를 취득한 바 있다.

한국 스키 데몬들의 실력은 세계에서도 수준급으로 통한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위상과 달리 국내에서는 철저히 소외된 종목이다. 생활도 불안정하다. 스키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연중 겨울 한철, 스키 시즌에 강습을 통해 번 돈으로 1년간 생활한다. 부유층 자제의 운동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강원도 출신의 생계형 스키어가 더 많다. 이들은 겨울에 스키를 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구한다 해도 정규직은 꿈도 꾸지 못한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회에 나갈 때조차 특별한 지원이 없다.

세계 각국의 데몬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인터스키대회는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스포츠 대회로 꼽힌다. 지난 2007년에는 평창에서 열렸다. 스포츠 관계자, 언론의 외면 속에서 우리나라 스키 데몬들은 외롭게 경기를 치렀다. 전화성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좀 충격이었어요. 인터스키대회는 세계 스키 지도자들이 새로운 기술과 교수법을 선보이고 비교·연구하는 자리거든요. 37개 회원국이 참가하는 스키어들의 최대 축제이기도 하지요. 그런 중요한 대회를 스포츠뉴스에서조차 다루지 않더라고요. 대회에 참가했던 해외선수들이 오히려 ‘한국엔 스키 인구가 많다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을 정도였죠. 그러니 아무리 실력이 좋은 데몬이라도 결국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어요. 스키 동호인으로서 그런 상황이 참 안타까웠죠. 마침 양성철 감독을 알게 돼 그들의 어려움을 좀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고, 실제 데몬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지난해 10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스키 영화 촬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들의 대회 장면을 찍느라 한국-오스트리아-캐나다로 이어지는 3개국 로케이션을 해야 했고, 겨우내 강원도 산꼭대기 스키장에서 추위와 싸웠다.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 작업도 혼자 하다시피 하며 만드는 동안 ‘이쯤에서 그만둘까’라는 갈등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만 만들면 되는 줄 알았더니 개봉관을 못 잡아서 또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어요. 다큐영화라는 한계에 낯선 소재를 다루었으니 받아주는 데가 없었죠. 다행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면서 몇몇 극장에서 <겨울냄새>에 관심을 보여 다큐영화로는 이례적으로 CGV 대학로 다큐전용관, 청주·부산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원주 등 4개의 개봉관에 걸렸어요. 관객의 반응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스키 데몬들에게 ‘우리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죠.”

그는 “겨울올림픽 15개 종목 84개의 메달 가운데 38개가 스키 종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도 설상(雪上) 종목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데몬들이 생계 걱정 없이 스키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한국 스키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 제작비는 사비로 충당, 주말이나 휴가 이용해 촬영

전화성 감독은 올 3월, 스물아홉 비정규직의 사랑과 희망을 다룬 영화 <스물아홉 살>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영화 보기를 즐겼던 그에게 영화감독은 그저 가슴속에만 품고 있던 꿈이었다. 하지만 수시로 꿈틀대는 꿈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해 <스물아홉 살> <겨울냄새> 이전에도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이처럼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는 전업 감독은 아니다. 그의 공식 직함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씨엔티테크의 대표이사. 씨엔티테크는 우리나라 외식 분야 아웃소싱 콜센터로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치킨, 보쌈, 피자 등 대표전화로 주문이 가능한 46개 외식 브랜드 중 43개 업체의 주문전화가 이곳에서 처리된다. 업체별로 분류된 콜센터에서는 각 브랜드 담당자들이 쉴 새 없이 전화를 받는다. 그의 첫 작품 <스물아홉 살>의 배경이 된 곳도 바로 이곳, 실제 콜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상담원들이 영화에 출연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직원 수 700명에 이르는 규모로 키운 유능한 CEO이면서도 그는 사업과 영화는 별개라며 선을 그었다. 영화 제작비는 모두 사비로 충당하고,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영화를 찍는다는 것. “돈이 모이면 한 편 찍고, 또 모아서 한 편 찍는 식으로 진행한다”며 웃었다.

“앞으로도 상업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저예산 영화를 만들 겁니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색깔이 확실한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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