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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죽도록 달린다’ 연출가 서재형, 극작가 한아름 부부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받는 ‘환상의 콤비’

가을밤, 서울의 궁궐에서 궁을 무대로 한 뮤지컬이 펼쳐지고 있다. 극단 ‘죽도록 달린다’가 9월 1일부터 21일까지 공연하고 있는 〈왕세자 실종사건〉. ‘2011 하이서울페스티벌 고궁 뮤지컬 선정작’인 이 작품의 무대는 경희궁 숭정전 앞마당이다. 관객은 숭정전 ‘왕의 자리’에 설치된 객석에 앉아 앞마당의 공연을 내려다보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죽도록 달린다’는 매번 실험성 짙은 작품으로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극단.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더 코러스 ; 오이디푸스〉는 1000여 석의 객석을 통째로 비운 채 무대 위에 300석의 간이 좌석을 만들어 관객이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더 가깝게 느끼며 참여하게 했는데, 첫 공연을 본 관객들의 호평으로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죽도록 달린다’가 항상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창단 이래 〈죽도록 달린다〉 〈왕세자 실종사건〉 〈릴-레-이〉 〈호야(好夜)〉 〈청춘 18대 1〉 〈토너먼트〉 〈더 코러스 ; 오이디푸스〉 등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만들어온 연출가 서재형씨와 극작가 한아름씨를 서울 대학로 연습실 앞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남양주시에 살면서 출퇴근을 함께하는 부부이기도 하다.

연극계에서 ‘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면 믿을만하다’는 평을 듣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처음부터 ‘환상의 콤비’였을까.

“처음에는 엄청나게 싸웠어요. 대본을 집어던지는 것은 예사였고, 버스에서 싸우다 운전기사로부터 ‘거기 두 사람, 내리라’는 소리까지 들었죠. 예술의전당 주차장 2층부터 4층까지 쫓겨 다니면서 싸운 적도 있고요.”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
두 사람은 성격도, 하고 싶은 작품의 형식도 완전히 달랐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극단 ‘물리’에서였다. 서재형씨는 조연출, 한아름씨는 입봉을 준비하는 예비 극작가로 각각 서른넷, 스물일곱 살 때였다. 서재형씨의 첫인상에 대해 한아름씨는 “정말 부지런하고 청소를 너무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저도 선배들 커피 타드리고 컵 닦고 했는데, 어느 날 연출님이 부르더니 ‘손잡이 달린 컵은 15도 각도로 틀어서 놓아둬라. 그래야 곧장 잡을 수 있다. 분장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배우들이 최적의 상태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는 거예요. 처음 들을 때는 기분이 나빴는데, 맞는 말이었어요.”

음악극 〈더코러스 ; 오이디푸스〉
서씨가 처음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할 때 한씨는 “내가 극본을 쓰겠다”고 했다. 2004년 무대에 올린 〈죽도록 달린다〉는 이렇게 두 사람 모두의 입봉작이 되었다. 서재형씨는 오랫동안 연극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한아름씨는 프랑스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돌아왔지만 ‘첫 작품’은 두 사람 모두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처음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용돈을 아껴 뮤지컬과 연극을 관람하며 배우를 꿈꾸던 한아름씨. 방향을 바꿔 서울예대 극작과를 나온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로버트 윌슨의 이미지극에 빠져들었다.

“논리적 설명 없이 이미지와 음악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무대를 보면서 개안(開眼)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석사학위 논문도 그의 이미지극에 관한 것이었고, 한국 무대에서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서면서 연극의 매력에 이끌린 서재형씨.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서울예대에 다시 들어가 졸업한 후 극단에서 현장감각을 익혔다. 그에게 익숙한 것은 리얼리즘 연극. 그러니 한아름씨가 써오는 극본을 보고 “이게 뭐냐?”고 집어던졌다. 한참을 싸우다 한씨가 그동안 공부했던 책과 비디오를 가지고 와 “난 이런 걸 공부했고, 이걸 시도하고 싶다”고 했고, 서씨도 “내가 작가에게 원하는 것은 이거다” 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극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 연출에게 한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 묻자 “남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엉뚱한 발상과 상상력, 창의력”이라고 말한다. 연극 〈죽도록 달린다〉도 그렇게 시작됐다. 한 작가가 먼저 “왜 무대에서 뛰면 안 돼요?”라고 했다.

대사를 전달해야 하는 배우가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은 이제껏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 서 연출은 한 작가의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대사를 잇기 어렵지만, 한번 해보지”라며 연구했다.

“서양의 이미지극은 잔상이 남도록 느리게 진행됩니다. 급한 성격의 한국 관객에게는 졸리기 십상이지요. ‘그림책을 손가락으로 타다닥 넘기듯 빨리 진행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장면과 장면 사이 배우들이 뛰게 하면서 호흡을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활동 이미지극으로 바꾼 거지요.”


9월 1일부터 경희궁 숭정전에서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공연

연극 〈죽도록 달린다〉
〈죽도록 달린다〉는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올해의 예술상 등을 받으며 단번에 화제작이 됐다. 〈왕세자 실종사건〉은 2005년 연극으로 먼저 만들었던 작품.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한 작가가 “대통령의 아들이 유괴되는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요?”라고 한 말이 발단이 됐다.

“대통령은 온 국민을 용의자로 보게 되지요. 경호실장도 못 믿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김모씨도 의심이 가는. 그걸 통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불안한 심리를 그리려 했어요.”

서 연출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자칫 식상한 내용이 되기 싶다”고 해 조선시대로 배경을 옮기기로 했다. 배경을 궁으로 좁힌 후 ‘왕세자가 실종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건이 터지면서 왕세자 실종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리는 기묘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일상에 치여 본질을 잊고 사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는 메시지였다. 왕세자가 사라지기 전 몇 시간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궁녀와 내시의 사랑과 여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왕과 왕비, 상궁의 복잡한 심리. 과거로 돌아가 추리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은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역모션을 취했다. 이 작품이 지난해 10월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져 ‘더 뮤지컬 어워즈 소극장 창작뮤지컬상’을 받았고, 올해 다시 고궁 뮤지컬로 부활한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뮤지컬에 도전하기 전, 한 작가는 뮤지컬 〈영웅〉의 극본을 쓰고 서 연출은 〈댄스뮤지컬 15분 23초〉를 연출하면서 각각 뮤지컬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 작가는 “연극에서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대사도 뮤지컬에서는 노래로 표현할 수 있어 좋더라”고 말한다. 〈왕세자 실종사건〉도 연극은 대사가 절제되어 시적인 표현이 많았는데, 뮤지컬에서는 궁녀와 내시의 사랑이 강조되면서 훨씬 서정적으로 바뀌었다. ‘죽도록 달린다’는 지난 7~8월 신촌연극제에서 〈청춘 18대 1〉을 다시 공연했다.

연극 〈호야〉
이 연극을 필자는 고등학생 딸과 함께 관람했는데, 딸이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이유를 물으니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고 마는 여주인공 모습에서 나를 보는 듯했다”고 했다. 연극은 시종일관 관객을 울렸다 웃겼다 감정선을 자극하는데도 억지스러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한 작가는 “그전까지 작품은 형식의 새로움으로 연출가가 주로 주목을 받았어요. 나도 관객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쓴 작품이 〈호야〉와 〈청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서조차 대사가 넘치지는 않는다. 장면전환과 전개가 빠르고, 대사보다는 배우의 동작과 눈빛, 뉘앙스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압축하고 압축해 엑기스만 남긴 대사는 인고의 산물이다.

“〈죽도록 달린다〉는 80번 퇴고 끝에 올린 작품이에요. 보통 극본을 쓴 후 배우들이 리딩을 하고, 연습을 하면서 끊임없이 대사를 줄여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저도 힘들지만, 매번 다시 대사를 외워야 하는 배우들도 죽을 맛이겠지요. 그러나 무대에서 배우들이 말하지 않는 대사를 몸으로, 뉘앙스로 표현하면서 더 진정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징그럽게도 싸웠다는 두 사람은 어떻게 부부가 되었을까. 밤샘 작업 때문에 한 작가 집을 드나들던서 연출이 한 작가의 아버지께 “사귀어보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야, 이 새끼야! 우리 딸이 뭐가 모자라 사귀고 말고야. 사귀어보다 별로면 그만둘 거야?”라고 호통 쳐 곧장 결혼하게 됐다 한다.

“나달나달 낡은 신발 밑창에 징을 박아 다니는 것을 보고 ‘되게 열심히 사는구나’ 생각하셨대요. 저보고 ‘그 사람이 왜 좋으냐?’ 물으셔서 ‘몸이 재고 부지런하다’ 했더니 ‘남자는 그거 하나면 된다’ 하셨어요.”

장인어른이 본 대로 서 연출은 요즘도 ‘죽도록 달리고’ 있다. 연습 후 곧장 집으로 가 새벽 두세 시까지 ‘뭘 보완해야 할지’ 정리하고, 다시 예닐곱 시면 일어나 공부하고 연구한다. 단원들에게 “직장인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지 않느냐? 연극쟁이가 안이해져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공연 기간이나 연습할 때는 술 마시는 것도 금지다. 대신 배우가 포스터를 붙이거나 잡일을 하지 않고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게끔 최대한 환경을 만든다. 정리정돈을 싫어하는 B형 여자와 섬세하고 예민하고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트리플 A형 남자가 만나 처음에는 ‘결혼 잘못했구나’ 생각도 했다는 두 사람. 그러나 이제, 서로 이해하고 채워가면서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99.9%는 연극이에요. 부부라기보다는 동지, 전우(戰友)라고 생각하지요. 풍요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고 때론 사람들의 반응에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극밖에 하고 싶은게 없는 걸 보면 ‘숙명’인가 봐요.”

사진 : 안영민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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