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에서의 하룻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을

마을 건너편에 있는 절벽 부용대에서 바라본 마을. 뱃사공이 강을 건네준다.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600여 년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온 안동 하회마을.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이 마을을 찾는 방문객은 하루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른다.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일본어와 중국어・영어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런데도 여느 관광지 같은 떠들썩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평화롭고 고즈넉했다.

하회마을로 들어서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주민 외에는 차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갈 수 없어 입구에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 마을 안에는 술집은커녕 식당도 따로 없다. 밥을 사먹으려면 마을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하회장터’까지 걸어가거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수백 년째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집들뿐 아니라 연잎으로 가득 찬 마을 입구의 연못과 푸르른 논, 천연기념물인 강변의 솔숲 만송정, 강가의 습지식물 등 자연환경도 사람이 손댄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빽빽이 들어찬 콘크리트 건물들, 에어컨 실외기가 뿜어내는 텁텁한 열기로 숨막히는 도시에서 벗어나 이 마을로 들어서자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꽂혔지만, 강둑 양옆으로 늘어선 벚나무 그늘이나 솔숲에 들어가면 금방 서늘해진다. 지즐대는 새소리와 속살거리는 물소리…. 자연이 내는 소리조차 요란스럽지 않다. 바람에 몸을 부딪는 나뭇잎들만이 ‘쏴~쏴~’ 청량한 소리를 만든다.


하회마을에는 현재 125세대 230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중 70% 가까이가 풍산 류씨. 양반의 후예답게 말투가 점잖은 데다 경망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채와 사랑채・문간채・별당・사당 등 사대부 가옥의 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와집들과 기와집을 둘러싸고 있는 초가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집집마다 놓인 장독대는 살뜰한 손길 덕에 반들반들 윤이 났다. 주민들이 실제 살림을 사는 이 마을을 ‘보이기용’으로 만들어놓은 민속촌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 사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둘러보고 나와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 으레 있을 만한 위락시설 하나 없는 ‘심심한’ 이곳에서 ‘심심하게’ 머물고 싶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낙향한 후 서재로 쓰려고 지은 원지정사. 2층 누각에 오르면 잘생긴 부용대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사람들이 집을 크고 호사스럽게 지어서가 아니라, 집에 자연 풍경을 담뿍 담아냄으로써 마음껏 풍류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위압적이지 않다.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해서 붙여진 이름인 하회(河回). 마을을 둘러싸고 강이 구불구불 흐르고,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쳤다. 강 건너편엔 절벽인 부용대가 있는데, 이 역시 높지 않다. 뱃사공이 건네주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5분이나 10분쯤 올라가면 꼭대기다. 부용대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길지 중 길지라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상)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때 관광객이 하나 둘 떠나자 하회마을은 더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주위는 더욱 고요해지고,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마을이라 사위가 깜깜한데,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따뜻하다.


나루터 앞에 있는 초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한옥부티크호텔인 ‘락고재’. 그런데 이 초가, 예사롭지가 않다. 겉에서 보면 여느 초가와 다를 바 없는데, 안에 들어서니 반전이다. 우선 화장실. 요즘 고택(古宅) 체험이 유행인 데다 독특한 정취가 매력적일 것 같아 ‘옛집에서 묵어볼까?’ 생각했다가도 꺼려지는 게 화장실이나 이부자리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은 그런 걱정을 불식시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지로 도배한 깨끗한 방인데, 욕실이 딸려 있다. 그것도 편백나무로 만든 고급 욕조가 놓인. 한옥의 묘미는 이것저것 놓아두지 않는 간결함에 있다. 앤티크 가구 몇 점뿐 극히 간결한 방의 벽장 문을 여니 텔레비전에 금고까지 나타난다. 생활의 편리는 모두 갖춰놓되 그걸 숨겨 한옥이 가진 특성을 해치지 않았다. 벽장을 깊이 만들어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만들어놓은 점은 일반 주택에도 훔쳐오고 싶은 아이디어였다. 방문 앞 댓돌에는 손님용 검정 고무신이 놓여 있다. 겨울에는 털신으로 바뀐다. 문간채에는 찜질방을 만들어놓았다. 원래 초가가 있던 자리에 3년 전, ‘형태는 초가, 시설과 서비스는 특급호텔’로 다시 지었다 한다.


방에 들어서자 하회마을 락고재를 관리하고 있는 최욱 씨가 냉오미자차를 나무 쟁반에 받쳐 내온다. 빛깔이 곱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하회장터까지 왕복 4km를 오갔다. 그런데 그 길이 지루하지 않다. 강가, 그리고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자연을 만끽하면서 가는 길이어서다. 강가에는 띄엄띄엄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눈물 나게 아름답지만 압도하지는 않으면서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다음날 아침, 방 앞 마루에 아침상이 놓였다. 메뉴는 안동의 유명한 헛제삿밥과 간고등어구이. 하회마을 락고재에 머무는 손님에게는 이렇게 매일 조식이 제공된다. 하회마을의 락고재는 최근 발간된 미슐랭 가이드 한국 편에도 소개됐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 입구 전수관에서 매주 수-토-일요일 오후 2시에 관람할 수 있다. 하회장터 앞의 하회세계탈박물관도 방문객이 빼놓지 않고 찾는 장소. 가을에는 안동세계탈축제가 열린다.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을 등지고 자리 잡은 병산서원도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조화되는 아름다움으로 ‘한국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곳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옥의 정수 체험하게 할 것
  안영환 락고재 대표


누가 오래된 마을 초가에 고급호텔 서비스를 접목할 생각을 했을까. ‘락고재’ 대표인 안영환 씨를 서울 북촌의 락고재에서 만났다. 안영환 대표가 한옥에 꽂힌 것은 우연히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옥을 수리해 음식점을 하면서였다. 미국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한 후 10년간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아버지 호출로 귀국해 아버지와 함께 부동산개발업을 하던 중이었다.

“한옥을 헐고 빌라를 지으려고 한다면서 자문을 해달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빌라 지을 자리는 아닌 것 같아 ‘수리해서 한정식집을 하는 게 낫겠다’고 했더니 저보고 해보라는 거예요. 1950년대 지어진 한옥인데,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무 골조만 남기니 얼마나 아름답던지. 거기에 반했죠.”

①만송정 ②부용대 ③화산(327m) ④병산서원 ⑤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 ⑥오솔길 ⑦하회세계탈박물관 ⑧하회장터
우연히 한옥을 맡아 음식점까지 하게 된 그. 제주도에서 그날그날 비행기로 고등어와 갈치를 공수해와 파는 아이디어로 히트를 쳤다. 그리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택-전통문화 체험여행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사업하는 친구들이 외국 바이어를 접대하면서 제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중국은 스케일이 크고 일본은 섬세한데, 한국문화의 정체성은 뭐냐?’고 물으면 자존심이 상했죠. 우리 문화는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직접 체험해야지. 한옥이 하드웨어라면 국악 등 풍류가 소프트웨어예요. 이걸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동과 경주 등을 여행하는 1박2일, 2박3일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친화적으로 만든 한옥에서 우리 고유의 풍류를 느끼게 하는.”

원지정사 2층 누각에 오르면 부용대와 만송정,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초가가 하회마을 락고재다.


하회마을 락고재 전경.
고택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는 이불과 방짜유기 그릇, 골동품 가구까지 싸들고 다녔다. 현대식 장롱에 플라스틱 식기를 쓰는 고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옥이 가진 아름다움과 정취를 제대로 보여주려면 ‘내 집’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진단학회가 쓰던 130여 년 된 한옥을 사들였다.

“해체 복원하려 했는데, 원래 자재 중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20%밖에 되지 않았어요. 무식이 용감이라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일을 벌였지요. 지었다 부수었다를 반복하느라 목수 2명이 도망갔습니다. 한옥은 주인 안목이 80%라고 하는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안목이 길러진 셈이지요.”




서울 종로구 계동 뒷골목에 있는 락고재에는 방 네 칸에 정자가 놓여 있고, 집 한가운데에 잘생긴 소나무가 정취를 더한다. 복닥복닥한 서울 한복판인데도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딴 세상이다. 북촌의 락고재는 몇 달씩 예약이 차 있을 정도로 인기. 일본인 등 외국 손님이 주로 찾는데, 모둠전・간장게장・옥돔구이・된장찌개 등이 나오는 한정식 저녁에 아침까지 제공돼 ‘한국의 맛’까지 느낄 수 있다. 한옥문화를 전파하려는 그의 계획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회마을 근처에 손님들이 직접 장작을 태우면서 온돌문화를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한옥 호텔을 짓고, 회원제로 이용하는 한옥 콘도도 지을 계획. 서울 근교에 한옥 동호인 주택단지도 만들 생각이다. 한옥을 지을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기술을 익히는 ‘한옥학교’도 안동에 열었다.

그는 “한옥의 건축공정을 모듈화하면 건축단가를 낮출 수 있다”며 한옥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미래를 그리고 있다.

사진 : 김동욱·장진영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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