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49) 서정춘 〈사과깎기〉

사과를 깎다가 포착한 성적인 은유!

사과를 깎는 일만 능사가 아니다
이것 봐라 이것 봐라
니켈 나이프를 번쩍번쩍 핥으며
즐거운 노래가 기어나오고 있어
과향을 풀어 주는 눈먼 꽃뱀 한 마리

과육을 갈라 보면
꽃뱀의 눈깔이
씨방 속에 처박힌다

파 버릴까
말까
향스러운
치사량(致死量)



〈사과깎기〉는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죽편》에 실린 시편 중에서 긴 편에 속한다. 대개는 시 한 편이 한쪽을 넘지 않는다. 〈사과깎기〉는 사과를 깎는 범상한 경험에서 시작한다. 니켈 나이프로 사과를 깎는다. 나이프가 지나가면 껍질이 벗겨진다. 철저한 피동(被動)이다. 피동일 수밖에 없는 사과 껍질이 피동에 머물지 않는다. 사과 껍질이 식욕이 동한 듯 니켈 나이프를 “번쩍번쩍” 핥는다. 피동이 능동으로 전환하는 찰나다. 힘없이 널브러진 사과 껍질에 능동의 힘을 부여하고 나니 끊어지지 않고 구불구불 곡선으로 이어진 이게 살아서 기어간다. 사과 껍질이 외부화하면서 흐름과 운동성을 갖추고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시인은 “즐거운 노래가 기어나”온다고 적는다.

시인은 소리 없는 것에서 맑은 소리를 듣는다. 이 과피(果皮)는 식물의 성분을 버리고 동물로 변신한다. 돌연 “눈먼 꽃뱀”으로 기어가는 것이다. 서정주의 〈화사(花蛇)〉에 나오는 “꽃다님보담도 아름다운 빛”을 가졌다는 꽃뱀에 견줄 만한 뱀의 탄생이다. 뱀은 신화학에서 제 꼬리를 물고 원의 형상을 취한다. 바로 우로보로스다. 우로보로스는 제 몸을 집어삼키고 죽음으로 삶을 이어간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죽음과 재생의 놀라운 상징이다. 사과와 뱀은 창조의 신화 속에 함께 나온다. 뱀은 최초의 여자를 유혹해서 금단의 열매인 사과를 따게 하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죄를 짓는다. 제 짝인 최초의 남자에게도 이 금단의 열매를 먹도록 한다. 그 죄에 대한 벌로써 여자와 남자는 낙원에서 추방된 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따르고, 남자에게는 땀 흘리고 수고하는 노역이 주어진다. 어쨌든 식물적인 것에 속하는, 그냥 놔두면 시들고 말 사과 껍질은 뱀으로 생명력을 얻어 움직인다. 이 꽃뱀은 기어가면서 천지간에 향기로운 과향을 풀어낸다. 저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한 식물에게 동물적 변신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시인의 역동적 상상력이다. 꽃뱀은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남성의 성적 심상이기도 하다. 꽃뱀이 남성이라면 사과는 여성이다. 이 홀연한 꽃뱀은 모든 내부에 대하여 외부로 존재한다. 꽃뱀이 양의 기운을 가진 것의 상징이라면 사과는 음의 기운을 가진 것의 상징이다.

사과에는 이브의 사과가 있고, 뉴턴의 사과도 있다. 이브는 뱀의 유혹에 따라 사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알았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에 착안해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사과 과육을 반으로 잘라내니, 씨방이 나타난다. 아, 눈먼 꽃뱀의 눈깔이다. 사과를 깎던 손이 주춤한다. 이 씨방을 파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다. 당연히 파버려야겠지만, 이게 꽃뱀의 눈깔이라고 하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씨방은 생명의 정수를 담은 신성한 그릇이다. 식물이 가진 씨방은 동물의 정낭(精囊)에 견줄 만하다. 사과 껍질을 벗겨낸 니켈 나이프에서는 사과 향이 풀풀난다. 치사량인 듯 지독하다. 누가 이 맛있는 사과 속에 눈먼 뱀이 있고, 과육 한가운데 눈먼 뱀의 눈깔이 박혀 있는 줄 알았겠는가! 이게 우주의 비밀이다. 오로지 시인만이 그 비밀을 알아채고 누설한다.

누구나 사과를 깎지만 그 사과의 몸통에서 분리되어 나온 껍질을 뱀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직 시인만이 그렇게 본다. 사과 껍질이 눈먼 뱀이 되어 기는데, 사과 과육을 잘랐더니 그 안에 뱀의 검은 눈깔이 박혀 있다. 이렇듯 시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보통사람과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내고, 달빛은 연못을 뚫는다. 그러나 섬돌에 먼지는 그대로요, 연못엔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옛사람은 이걸 묘오(妙 悟)의 경지라고 일렀다.

서정춘의 시는 솜씨 좋은 장인이 마간석(馬肝石)을 깎고 다듬어 만든 상품(上品) 벼루 같다.
단단하다.
그러니 과작일 수밖에 없겠다.


나는 서정춘에 대해 이렇게 적기도 했다. “서정춘은 살아 있는 한국의 시인들 중에서 파워브랜드다. 그 파워는 자린고비같이 언어를 아껴 쓰는 지독한 인색함에서 나온다. 서정춘의 시들은 말보다 침묵에 더 근친적인 애정을 가진 것 같다. 언어에 기대되 언어를 벗어나려는 시의 숙명을 엿듣는 동물적 감각을 가진 시인이다. 그 앞에 박용래가 있었고, 김종삼이 있었다. 헌데 서정춘 뒤에 아무도 없다. 이게 한국시의 미래다.” 다행인 것은 서정춘이 첫 시집 《죽편》 이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집 《봄, 파르티잔》(2001), 《귀》(2005), 《물방울은 즐겁다》(2010)가 연이어 나온다. 스물여덟 해 만에 단 서른다섯 편의 시를 겨우 채워 첫 시집을 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놀라운 다산(多産)이다! 그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독한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을 테다. “하늘은 가끔씩 신의 음성에겐 듯 하얗게 귀를 기울이는 낮달을 두시었다”(〈귀〉). 이렇듯 서정춘의 시는 가끔 한 줄로 끝난다. 그가 여전히 언어 내핍의 괴로움을 꿋꿋하게 견디고 있다는 증거다. “내 몸의 잎사귀 / 뒤 귀때기 / 빗소리 얻으러 귀동냥 가고 있다 / 귓속으로 귓속으로 / 귀동냥 가고 있다”(〈우중(雨中)〉)와 같은 시에서 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이들이라면 환호작약할 만한 일이다.


서정춘(1941~ )은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이다.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가난했다. 신문 배달, 군청 급사, 서점 점원, 신문 수금사원 등을 하며 고향의 매산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영랑과 소월의 시집을 밤새 필사하며 독학으로 시 공부를 했다. 시가 그렇게 좋은 것임을 그때 알았다. 가난과 독학의 외로움을 견뎌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 쓰기를 이어오다가 마침내 1968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예부터 시인은 영달함이 적고 궁함은 늘 풍족했다. 그 뒤로도 과작이었다. 이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다. 등단한 지 스물여덟 해가 지난 1996년에 시 35편을 모아 시집 《죽편》을 내놓았다. 한 해 겨우 한 편꼴이다. 서정춘의 시들은 짧다. 언어의 내핍이 대단하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 그곳이 고향이란다”(〈30년 전〉) 이게 전문이다. 말을 깎고 버려서 시를 얻는다. 그렇게 얻은 단 넉 줄에 30년 가난으로 뼈에 사무친 신고(辛苦)를 압축한다. 기려초야(羈旅草野)에서 건진 궁고수사(窮苦愁思)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 넘쳐나는 말의 시대에 그의 시는 말을 버리고 버린 뒤에 겨우 침묵에 닿은 몇 마디 말을 추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말이 적으니 말과 말 사이에 깊은 적막이 흐른다. 이 적막함은 뼈에 가깝다. 시를 이룬 말들 하나하나가 살가죽을 뚫고 나올 듯 야무진 결기로 삼엄하다. 그가 말을 아끼는 것은 시가 우주의 압축 파일이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시인이 작년에 칠순을 맞았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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